좋은 집들은 많고, 돈만 있으면 쉽게 집을 짓는다. 원목 마루에 시스템 창호, 실크 벽지는 기본이고 월풀 욕조, 이태리제 타일, 사우나부스, 빌트인시스템 등 엄청나게 어려운 말들로 집안 곳곳을 도배한다. 드레스룸, 파우더실, 바룸 등 실내 공간 구성도 다양하다.
두말할 것 없이 이런 집들은 참으로 살기 편한 집, 효율적인 집일 것이다. 이렇게 편리하고 효율적인 집을 지으면서부터 가정에서 위엄의 공간, 정신적인 공간은 사라져 버렸다. 너무 효율성과 편리성, 경제성을 따진 집을 짓다 보니 가족의 정신과 사상이 무시되는 듯하다.
과거의 집에서는 아버지가 자식을 혼낼 때 사랑방으로 불러 매를 들었다. 장성한 아들의 진로를 말할 때도 사랑방으로 불러놓고 남자가 살아가야 하는 방법을 들려주었다. 두 칸짜리 초가집에서도 안방과 사랑방이 나뉘고 사랑방은 아버지의 공간, 위엄의 장소, 남자들이 드나들던 곳이었고 안방은 어머니의 공간, 따스함이 있는 곳, 여자들의 장소였다. 안방의 어머니는 시집가는 딸에게 반은 걱정으로 반은 흐뭇함으로 시집살이를 이야기했고, 눈물과 웃음으로 모녀는 서로 손을 잡았다.
아버지의 불호령을 받고 사랑방에 불려 가면 우선 기부터 죽어 감히 아버지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죄를 짓지 않았어도 사랑방에서는 아버지의 카리스마가 느껴졌고 앉아도 반듯하게, 걸어도 조심스럽게, 그래야 될 것 같은 곳이었다.
가풍이 높은 가문에서는 집을 지을 때 집보다 우선하여 본 채 동쪽에 사당을 지어놓고 큰 일이 있을 때나 좋은 일이 있을 때 그곳에 나가 고했다. 집 밖을 나갈 때나 돌아와서도 사당에 들어 조상님들 덕에 감사했다. 집안의 정신적인 지주였던 곳이다.
우리의 옛집은 그런 위엄이 있는 공간, 가족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카리스마의 공간, 교육의 공간, 정신적 지주가 되는 공간이 있었다. 요즘 짓는 집에서는 그런 공간을 찾아볼 수 없다.
만든다면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발상이며 효율적인 공간구성에도 많이 위배될 것이다. 집 한 평이면 돈이 얼마인데 그렇게 쓸데없는 공간에 헛돈을 쓰느냐며 호통 칠 분들도 있을 것다.
가풍이 사라지고 가장의 위엄이 사라지고 있는 요즘 가문에 유명하신 분이 있다면 그런 분의 글 하나 그림 하나를 걸어둘 수 있는 공간, 유명하지는 않더라도 부모님 사진이나 유품을 모셔놓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김경래 리포터 oksigol@oksig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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