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안도현 시인이 절필을 선언했다. 나는 안도현 시인과 그의 시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의 절필 선언은 못마땅하다. 그가 옆에 있다면 당장 그 선언을 철회하라고 호통을 치고 싶은 심정이다. 시인이 시적인 이유가 아닌, 정치적인 이유로 절필을 선언했다는 것도 못마땅하지만, 더 못마땅한 이유는 따로 있다. 국어논술 선생이 내 직업이라면, 시인은 그의 직업이다. 어떤 경우라도 업을 중단해서는 안 되는 것은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일하는 이의 당위이자 책임이다.
나는 시적인 방법으로 안 시인의 직업윤리와 책임을 일깨우고 싶다. 그것은 그의 시가 얼마나 훌륭한지를 밝혀보는 일이다. 그렇게 하면 안도현 시인은 그의 훌륭한 시를 기다리는 사람들 곁으로 돌아와 줄지도 모른다.
파꽃 안도현
이 세상 가장 서러운 곳에 별똥별 씨앗을 밀어 올리느라 다리가 퉁퉁 부은 어머니
마당 안에 극지(極地)가 아홉 평 있었으므로
아, 파꽃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나는 그냥 혼자 사무치자
먼 기차 대가리야, 흰나비 한 마리도 들이받지 말고 천천히 오너라
''이 세상 가장 서러운 곳''은 상징의 언어이지 실재의 언어는 아니다. 말로는 ''이 세상''에 있는 곳이라 하지만 ''가장 서러운 곳''이란 관념이지 실재일 수는 없다. 저건 인공 언어다.
별똥별 씨앗을 밀어 올리느라 다리가 퉁퉁 부은 어머니. 꽃을 인 파는 다리가 부운 것처럼 세로로 길게 불룩하다. 모딜리아니 그림 속 여인의 긴 목보다 더 길고 뱀의 몸피보다 더 불룩한, 타원이다.
퉁퉁 부은 파의 푸른 다리. 그것은 바로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다리다. 생에서 할 일을 다 한 어머니가 아홉 평의 극지를 채우고 있다. 아홉은 완성의 수다. 어머니는 별똥별의 씨앗들을 밀어 올렸고 그걸로 생은 꽃이 되었다. 그 꽃들은 이제 저 드넓은 밤하늘에 별들로 피어날 것이다. 그러나 우선 저, 다리가 퉁퉁 부운 어머니를 돌아보자.
''나''는 파꽃이 아홉 평을 다 채워서 더 들어설 자리가 없기도 하지만, 저 앞에서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래서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혼자 사무친다. 평생 꽃을 밀어올리느라 다리가 퉁퉁 부은 어머니 앞에서 자식이 혼자 사무치며 생각할 수 있는, 서러운 곳이 어디인가.
(다음호에 계속)
류달상 원장
소설가
류달상 국어논술 원장, 대전논술학원장 <논술 97~논술 2014>매년 발간
문화공간 대전문화 에스프리 공동대표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