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세 시인 시바타 도요처럼 약해지지 않고 당당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이 있을까? 신월3동 주민센터에서는 어르신의 행복한 노년을 위해 아름답던 지난날 이야기를 함께 공유하는 ‘사진으로 쓰는 자서전 교실’을 열었다. 글을 쓴다는 것. 더구나 어르신이 자서전을 집필할 것을 생각이나 해 봤을까. 그러나 사진 한 장 있으면 표현력이 약해도 문장실력이 없어도 쓸 수 있는 것이 ‘사진으로 쓰는 자서전’의 장점이다. 자서전은 자칫 공허하고 쓸쓸해지기 쉬운 어르신들의 삶에 활력을 선물한다. 사진을 보며 지난날을 회상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에 행복한 미소가 번지는데…. 그 수업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보자.
빛바랜 사진 한 장으로 지난날을 돌아보다
수요일 오후 2시, 신월3동 주민센터의 전형옥 계장과 직원들이 바빠진다. 어르신들을 위해 준비한 신월3동 특화사업인 ‘사진으로 쓰는 자서전 교실’이 열리는 3층까지 오르락내리락 하기를 몇 번, 27명의 어르신들이 등록한 수업 준비가 끝났다. 2시가 되기도 전, 어르신들은 각자가 뽑아온 사진을 들고 강의실을 들어선다. 이번 수업은 배움에 대한 열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열리는 ‘장수문화대학’을 이어 무미건조한 어르신들의 삶속에서 인생 최상의 시기를 사진을 보며 회상하고 공유하는 시간을 마련코자 신월3동 주민센터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프로그램이다.
강의는 감성커뮤니케이션연구소 김흥수 소장이 맡았다. 김 소장은 “후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즉 생전 유언으로 자서전을 만들면서 자식들이 부모가 떠났을 때 ‘우리 부모님은 이런 분이었구나’ 하는 추억으로 갖게 할 것”이라며 “이 시간을 통해 어르신들이 노년을 더 당당하게 보낼 수 있는 비결을 알려드린다”고 덧붙인다.
자서전을 쓰기 위한 첫 시간, 어린 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훑어보면서 자신에 대해 기초조사를 하는 시간을 갖는다. 두 번째 시간에는 생애그래프를 그려가며 기뻤던 일, 슬펐던 일을 점수화 시켜 곡선을 따라 이으니 어느새 파도치는 인생이 펼쳐지기도 한다. 한평생 살면서 해보고 싶었던 일, 가보고 싶었던 곳도 생각해보고 나서 자신에게 의미가 있었던 사진을 가지고 와 자서전을 쓴다. 이 때 사진에 나오는 배경은 어디이고 누구와 언제 왜 가게 되었는지 회상하면서 태어나서 결혼하고 아이 낳고 현재까지 삶을 정리해본다.
리포터가 찾아간 날은 두 번째 수업이 열리는 날. 첫 번째 시간에 이어 ‘20~30대에 가지 않은 길은 무엇’이고 ‘지금은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미래에 나는 무엇을 이루리라 마음먹었던가’, ‘나의 삶에서 지금도 기억하는 획기적인 사건은 무엇’인지에 대해 미리 숙제를 내준 모양이다. 김흥수 소장은 아이들 교실 수업마냥 숙제를 해온 사람은 손을 들어 보라고 요청한다.
이 때 용감하게 숙제를 했다고 손을 드는 이는 최원식 어르신. 25살 청년시절로 다시 돌아가 도둑으로 오해 받아 자살까지 하게 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내가 25살 때 가게 점원으로 일 했는데 곱추인 주인집 아들의 모함으로 돈을 훔친 것으로 오해를 받고 견딜 수가 없어 술을 잔뜩 먹고 택시에 뛰어 들었다가 겨우 8일 만에 깨어났어요. 양심을 따라 살 수 있느냐 없느냐는 선택이 지금도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이고 자살 기도 후 두 번 태어난 인생 더 열심히 살려고 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봉사왕으로 익히 양천구에서는 인정받고 있는 이의봉 어르신은 6남매 중 장남으로 평안도에서 태어나 전주로 내려온 이야기, 6.25 때 자원입대해 131명이 전사하고 39명만 살아남은 이야기, 월남에 갔다 온 경험, 16번의 수술을 하며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남아 봉사왕이 되기까지 실타래를 풀어낸다. “봉사한지 38년, 암을 이긴 힘은 오로지 봉사”라며 “남은 인생 봉사하면서 살 것”을 권하기도 한다.
내 인생의 톱뉴스를 이야기 하는 시간. 윤정순 할머니는 “피난길에서 6촌 언니가 폭탄에 맞아 죽어 가는데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야 했다”며 “길거리에 시체들이 즐비한데 그걸 밟고 죽지 않기 위해 남으로 갔다”고 회상하며 아직도 그 때 기억이 생생하다고 한다. 최정순 할머니의 생애그래프는 결혼했을 때 기뻤고 자식을 낳아 행복했고 사별해서 슬펐고 등 인생의 생사고락에 대한 이야기를 엮으니 어느새 파도치는 인생이 펼쳐진다.
죽기 전에 해 보고 싶은 일이나 가보고 싶은 일을 이야기 할 때 최원석(76) 어르신은 세계 순회를 해보고 싶단다. 또한 남은 인생은 남을 위해서 살고 싶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이효일(73) 어르신은 “완도에 배타고 들어가면 경치가 좋다는 들었는데 죽기 전에 가보고 싶다”며 “수업시간이 재미있긴 한데 머리가 영 안돌아간다”고 아쉬워하기도 한다.
옛날 사진을 수북이 가지고 온 백순례(78) 할머니는 “여기는 우리 시아버지, 여기는 우리 친정아버지, 이거는 우리 아들, 빛바랜 흑백사진을 꺼내 들고 일일이 설명을 해주다 보니 지난 날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듯하다. “35살 때 남편과 사별 후 이제껏 어렵게 살았다”며 “남은 인생 동창하고 외국여행을 가고 싶다”고 덧붙인다.
이청자 할머니는 자식들하고 여행을 떠나고 싶단다. “여행가서 사진을 많이 찍고 그 사진을 보며 추억을 떠올려 보고 싶다”고. “지금 어려운 일이 있는데 정리가 되면 집도 정리하고 자식들이랑 꼭 여행가야지”하며 다짐하는 듯하다.
노년을 더 당당하게, 내일을 건강하게
잠시 브레이크 타임으로 간식을 나누며 수업 시간에 못 풀어낸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어르신들. 사진으로 인생연대기를 작성하며 인생회고를 하고, 빛바랜 앨범 속에 묵혀있던 나의 과거를 끄집어내어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어느새 인생의 끝자락에 서 있는 듯한 아쉬움이 남는 듯 보인다.
김흥수 강사는 “사진 속에 있는 나는 언제, 어디서, 사진속의 인물인 누구와 당시 어떤 의미있는 상황에 있었던 것인지 한 줄 한 줄 이어가다 보면 어느새 자서전이 완성된다”며 “문장 실력이 없어도 표현력이 약해도 한글만 알면 빛바랜 사진으로 자서전이 된다”고 밝힌다.
사진으로 자서전을 써 내려가다 보니 어르신들은 어느새 젊었을 때 활기찬 모습을 회상하며 당당해져 내일에 대한 기대와 남은 노년을 더 행복하게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송정순 리포터 ilovesjsmor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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