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와 집을 시계추처럼 정확히 오가는 배미래양의 요즘 일상은 수도승의 삶처럼 군더더기가 없다. ‘하루에 10시간 공부하기’를 목표로 밤 11시30분까지 학교 자습실 붙박이로 책과 씨름한다.
“플래너에 매일매일 공부 시간, 분량을 구체적으로 써 놓고 하나씩 지워가면서 공부해요. 1일 목표치가 모두 지워지면 짜릿한 희열감을 느끼죠.” 배양이 차분히 설명한다.
그는 ‘자습실 절친들’과 함께 플래너를 쓰며 개인별 목표 달성을 못하면 벌금을 내도록 벌칙까지 만들었다. 벌금은 마음이 헤이해지지 않도록 다잡는 ‘채찍’인 동시에 돈이 모이면 함께 군것질하며 공부 스트레스를 푸는 ‘당근’도 되기 때문에 일석이조다.
‘진짜 실력’ 쌓기 위해 자기주도학습 선택
물론 ‘배미래표 자기주도학습법’을 터득하기 까지 시행착오도 많았다. “고1 때까지는 학원을 다녔어요. 습관적으로 학교-학원을 오가다 보니 문득 공부 효율에 의문이 들더군요.”
곧바로 특유의 치밀함, 꼼꼼함으로 학원주도형공부 vs 나 홀로 공부의 장단점을 따져보았다. “학원은 진도가 빨리 나가니까 공부 불안감이 덜하고 기출문제 분석, 신유형 문제 관련 최신 정보를 신속히 얻을 수 있어요. 반면에 혼자만의 복습시간이 없으면 실력으로 쌓이지않아요. 자기주도학습은 공부 후 뿌듯함은 확실히 커요. 하지만 진도가 더디고 입시 정보력에선 뒤처지죠. 고민 끝에 나 홀로 학습법을 택했어요.” 그 뒤로 배양은 장학금을 받을 만큼 최상위권 성적을 줄곧 유지하고 있다.
지독한 사춘기앓이, 그때 만난 귀인
‘침착함, 한결같음, 자존심, 끈기’ 그를 표현하는 키워드들이다. 또래보다 일찍 철인 든 건 중학교 시절 지독한 사춘기를 겪은 덕택이다. “늘 말이 없고 존재감이 없었어요. 공부는 곧잘 했지만 남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지요. 자존심은 셌지만 자신감은 없는 어두운 아이였어요.” 그러다 정신여고 다니던 언니를 통해 신양선 선생님을 만나면서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게 된다.
“중학생인 나를 신 선생님은 틈날 때마다 불러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돌이켜보면 선생님 눈에 당시의 내가 무척 위태로워 보였나 봐요(웃음). 덕분에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법을 터득했고 자신감도 조금씩 생겼어요. 친구도 사귀게 되었고요.”
진로탐색은 현재진행형
‘외딴방’에서 나온 그는 공부 뿐 아니라 ‘장래 꿈 찾기’에도 열성을 보였다. “취미가 신문 읽기일 만큼 늘 신문을 가까이 하면서 지냈어요. 수많은 기사 가운데서 유독 국제, 외교 문제에 눈길이 많이 가더군요. 자연스럽게 고1 때는 외교관이란 직업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정치외교연합동아리에 가입해 또래들과 주제를 정해 신나게 발표하고 토론했다. 전국 규모의 동아리라 4개월마다 80명가량 모여 모의UN회의를 개최하며 다양한 주제로 의견을 나누었다.
“전국에서 온 수재들을 보면서 자극을 받았어요. 하나의 주제를 놓고 다양한 시각에서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발표하면서 자연스럽게 토론 훈련이 됐어요. 1년간 재미있게 활동했어요.”
그는 특히 수요집회를 잊을 수 없는 경험으로 꼽는다. “추운 날씨에 일본대사관 앞에서 고령의 위안부 할머니들과 피켓 들고 항의 시위를 벌였어요. 오가는 사람들도, 일본 대사관측도 모두 무관심하더군요. 할머니들이 10대 시절 겪었던 참혹한 일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고 화가 났어요.” 이처럼 책 속의 지식을 현장에서 몸으로 익히며 삶의 방향성을 고민할 수 있었다.
문이과를 저울질하다 그는 수학 공부의 재미 때문에 결국 이과를 선택했고 외교관이란 꿈 대신에 어렸을 때부터 막연히 동경했던 의사로 진로를 수정했다. 그 뒤 한양대, 카이스트에서 진행하는 과학 캠프에 참여하며 교수, 연구조교들과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보여 이 분야를 차근차근 탐색했다.
“의학동아리에서 활동하던 중 종합병원을 방문해 의사에게 멘토링 받을 기회가 있었어요. 머릿속에 막연하게 ‘슈바이처 같은 의사상’이 현장을 둘러보면서 깨지더군요. 그 뒤 생명 앞에서 모든 걸 내던질 수 있는 ‘참의사’로 흔들림 없이 살아갈 수 있을지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었지요.”
고민 끝에 그는 의사의 꿈을 내려놓았다. 그 후로 기회 있을 때마다 대학 오픈캠퍼스에 참가해 수학, 생명공학 등 관심 있는 전공에 대해 차근차근 알아보며 진로를 고민하는 중이다.
“언니는 고교시절 내내 교사가 되겠다는 확고한 꿈을 가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대학생이 된 후 자신과 맞지 않는다며 접더군요. 그러면서 내게 ‘진로를 결정짓지 못한 걸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며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으려면 충분한 시간을 가지라’고 충고하더군요. 큰 힘이 됐어요.”
야무지게 말하는 배양은 자신의 삶의 비전을 당당하게 덧붙인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게 내 목표입니다. 지독한 사춘기를 겪으면서 주변의 도움을 받으며 이 비전만은 확실히 세웠습니다. 내 꿈에 걸맞는 직업을 찾기 위해 지금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탐색중입니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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