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달상 국어논술 특강 연재 5

지문을 속속들이 지배하라.

지역내일 2013-06-23
대부분의 학생들은 과학기술 지문을 어려워 한다. 수학적 개념이나 연산과정이 등장하면, 그 자체가 스트레스인 학생들도 많다. 

지난 달 출간된 수능 연계교재인 EBS N제 134번도 그렇다. 내가 매주 만나는 특목고 학생들도 많이 틀린 문제다. 지문은 별까지의 거리를 재는 방법인 ''연주시차 측정법''을 설명한다. 연주시차를 알면 삼각함수를 이용해 별까지의 거리를 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정도 내용이 어려운가? 수능 국어를 가르치는 일부 선생님들에게는 삼각함수라는 개념이 옛 이야기 속 고난의 암벽처럼 여겨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당장 수학을 배우고 있는 학생들이 그렇게 반응하다니! 

임산부의 입덧이 육체의 문제가 아니고 심리적인 문제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입덧은 어떤지 정말 모르겠지만, 과학기술 지문에 대한 학생들의 높은 오답률에는 틀림없이 심리적인 트러블이 개입하는 것 같다. 

나는 심리상담에 능하지 않다. 나는 선생이지 의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트라우마에 대한 일반적 처방은 낼 수 있다. 나는 처방전의 첫 줄을 이렇게 쓰고 싶다. 과학기술 지문도 국어과목 시험에 등장하는 소재의 하나일 뿐이다! 

 EBS N제 134번은 연주시차나 삼각함수의 의미를 묻고 있지 않다. 국어 문제는 항상 개념과 개념들간의 상관관계에 주목한다. 법칙이나 계산 자체가 아니라 그것들이 지문 속에서 지시하는 심층적 의미들을 문제 삼는다. 오답률이 높은 문제에 나오는 오지선다형 발문은 지문의 내용을 단순 반복하지 않는다. 짧은 문장 하나도 닮은 데가 없다. 

평소 수학과 과학시간에 배운 기본 실력만으로도 충분하다. 막연히 어렵다는 심리적 부담을 벗어라. 문제는 그 다음이다. 표층에 명시되지 않는 지문 속 의미를 꿰뚫어야 한다. 그것은 지문의 속을 읽어서 지문과 소통하는 일이다.  200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도레스 레싱의 <황금노트북>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녀는 책상 앞에 앉아  글들이 빼곡히 적힌 노트들을 굽어 보았다. 그것은 마치 전쟁을 앞둔 지휘관이 수만의 대오를 굽어보는 것 같았다.''
 지문을 지배하자. 속속들이, 완벽하게.(계속)

 글 : 류달상 
소설가
류달상 국어논술 원장, 대전논술학원장 <논술 97~논술 2014>매년 발간
문화공간 대전문화 에스프리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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