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숲으로 떠나는 ‘힐링열차’

“일상으로 돌아가는 지금,… 두려움 사라지고 ‘희망’으로 가득”

친형 같은 멘토와 대화…‘참는 게 이기는 것’ 깨달아

지역내일 2013-06-23 (수정 2013-06-23 오후 8:17:37)





“학교생활에 대한 두려움이 싹 사라졌다. 한줄기 희망으로 빛나는 나의 미래와 일상을 떠올리며 이제는 즐겁게 살아갈 것이다” 이종원(탄방중)군이 돌아오는 기차안에서 힐링열차 1박2일을 마친 소감문에 ‘희망’을 적었다.


힐링이라는 단어가 낯설고 무슨 도움이 될까 걱정했다는 이 군은 “학교에 가면 의욕이 없고 자주 졸았는데, 새벽에 잠을 깨면서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을 느꼈다”며 “친구들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걸고 장난치고 함께 먹고 자고…. 평소에 꿈꿨던 일들이 하룻밤에 이루어졌고, 돌아가는 기차에서의 소중한 기억을 평생 간직하고 싶다”고 말했다.


4회차 힐링열차는 지난 15일 오전 9시 서대전역을 출발해 전남 장성의 방장산자연휴양림으로 출발했다. 이번 힐링열차는 학교폭력의 중심에 선 중학교 2학년생 47명을 싣고 ‘치유와 쉼’을 위해 숲으로 향했다. 일상에 지친 아이들은 각자 어떤 짐들을 내려놓고 일상으로 돌아왔을까. 



◆게임 안하고도 즐겁게 놀 수 있다는 것 깨달아 
휴양림에 도착한 아이들은 짐을 풀지도 않고 에코어드밴처 체험장으로 달려갔다. 체험장 규모는 작았지만 아이들의 열기를 식혀주기에 충분했다. 짚라인에 몸을 실은 아이들이 소리를 질러댔다. 처음엔 무섭다던 여학생이 한 번 체험을 하더니, 다시 짚라인을 타 두 번 체험을 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산속 오솔길을 삼삼오오 뛰어다녔고, 목공예 체험과 편백비누 만들기에 열의를 보였다.


대전지역 중학교에서 참석한 47명은 서로 모르는 사이라 서먹서먹했다. 하지만 조별 활동을 통해 어느새 마주보며 웃고 있었다. 

“출발하는 기차에선 처음 보는 아이들이라 어색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친해질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평소 게임을 많이 하는데 게임을 안하고도 즐겁게 놀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김민형(우송중)군이 소감문에 적은 내용이다. 명상치유나 숲해설가와 함께하는 숲 프로그램 이외에는 특별히 강제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저녁식사 후 한국뇌과학연구원에서 진행하는 요가를 하면서 달라졌다. 자세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몸을 움직였고, 머릿속 잡념을 비워 맑게 하는 일에 몰입했다. 이후 숲에서 뛰어놀거나 새로 사귄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중2만의 언어로 소통했다. 자유시간에는 조별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 다양한 놀이를 만들어냈다. 

◆상쾌한 아침, 학교생활 두려움 사라져
밤늦게까지 웃고 떠들던 아이들이 새벽부터 울어대는 뻐꾸기 소리에 잠을 깼다. 아침 5시 반에 잠을 깬 아이들 서너명이 밖으로 나왔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는데도 머리가 개운해 기분이 좋다며 웃었다.


아이들은 아침 식사 후 조별로 숲해설가를 따라 숲속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에게 숲속 이야기는 온통 신기했다. 물고기를 기절시킨다는 때죽나무 이야기. 벚꽃 나뭇잎 뒷면에 난 구멍이 ‘꽃샘’이라는 것을 처음 들었다. 빨갛게 익은 산딸기를 찾으려고 집중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개미와 벚나무의 공생관계, 사약으로 쓴다는 맹독성 풀 천남성 이야기에 눈빛이 반짝였다.


방장산 유아숲 체험 운영요원인 정숙희(46)씨는 10년째 활동 중인 베테랑 숲해설가다. 정씨는 “숲 생물에 대한 교육보다 숲을 통해 인간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깨닫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며 “숲속 생물의 상호관계를 이해하면 친구나 부모, 사회생활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차분한 성격의 우연경(중리중)양은 같은 조원인 송다윤(동방여중)양과 말없이 궂은일을 도맡아 했다. 화장실 청소부터 밥 짓고 설거지 하는 일까지. 다른 아이들처럼 쉬고 놀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에 “밥 짓고 설거지하는 것도 즐거웠다. 누가 해도 할 일인데 내가 하면 친구들이 편하잖아요”라고 말했다.


학교교사 권유와 자신이 선택해 참석했다는 우 양은 “열차에서 진로특강을 해주신 김진구 선생님과 나눈 진로상담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며 “오랜만에 기차여행을 하게 돼 정말 기분이 좋다”고 전했다. 우 양은 “좋은 기억들을 가슴에 담고 간다. 돌아가면 친구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선생님 고맙습니다’”라고 소감문에 밝혔다.  대전시교육청 나태순 학생생활안전과장은 “중학생들은 가장 인정받고 싶은 대상이 부모가 아닌 ‘친구’라고 답한다”며 “또래 친구들에게 인정받고 관심 받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왕따가 가장 힘든 고민인 것을 어른들이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사회가 사춘기 아이들을 기다려주고 이해하는 것에 인색하다”며 “힐링열차를 통해 학교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느끼고, 가슴속 답답한 응어리를 풀고 미래 진로 고민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장성. 글 사진 천미아 리포터 eppen-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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