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으로서의 한의학
한의학에서의 정신과적 질환이나 이상징후들에 대한 묘사는 매우 생동감 있다. 예를 들자면 “등고이가(登高而歌)”란 표현이 있다. 높은 곳에 올라가서 노래한다는 얘기인데 요즘에는 보기 힘들지만 옛날에는 동네에 가끔씩 보이던 광인 즉 미친사람 에 대한 표현이다. 현대정신과적 표현으로 하자면 조울병 중 조병(躁病)에 해당한다 하겠다. 또 “여인장포지(如人將捕之)”란 표현도 발견된다. 마치 누군가가 나를 잡아 갈 것 같다는 의미인데 현대의학의 광장공포증이나 공황장애와 대응된다. 실제로 상담을 해보면 이러한 간단한 표현들이 실제의 환자들의 느낌과 매우 잘 맞아 들어감을 자주 발견한다.
한의학에서의 정신적 이상징후에 대한 치료는 전신에 걸친 거시적인 관찰에 따라 달라진다. 미칠것 같다는 사람들은 종종 사하제를 처방함으로써 좋아지기도 하고 무섬증이 드는 사람들은 소화기에 관계된 처방으로 좋아지기도 한다. 현대의학에서는 정신과 영역은 주로 뇌와 연결되어 뇌파검사나 뇌영상촬영, 호르몬 검사를 통해서 정상과 다른 사인을 찾아내 그것을 교정하려고 하는데 반해서 한의학에서는 뇌 이외의 다른 부분도 동등하게 진찰해야 한다고 본다.
비유하자면 사람을 컴퓨터로 보았을때 사람의 질병상태는 컴퓨터가 이상작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컴퓨터 기술자는 바이러스 체크를 하던지 데이터를 다 지우고 프로그램을 다시 깔던지 이런 일들을 해보다가 그래도 해결이 안되면 컴퓨터 메인보드의 각 부품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체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쉽지는 않겠지만 수많은 컴퓨터 회로의 전류가 적정량으로 흐르고 있는지도 체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의학은 문제가 하드웨어 수준에서 발견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개인의 질병은 현미경, 각종 정밀한 영상기기, 체액의 생화학적 조성 수준에서 규명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비해 한의학은 하드웨어의 이상이 꼭 있어야 질병이 생긴다고 보지 않는다. 질병은 각 부분의 소통이 정상적이지 않아서 일어날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위의 비유를 따르자면 컴퓨터 바이러스를 치료하거나 하드디스크를 포맷하는 등의 소프트웨어적인 접근방식이라 할 수 있다. 컴퓨터 바이러스를 아무리 메인보드에서 뒤져봐야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
정신과적인 이상징후는 정서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고 인간의 정서라는 측면은 특히 개개인의 다양한 속성들과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한의학의 통합적인 소프트웨어적인 접근방법이 정신의학에서 강점을 가진다 할 수 있다.
글 장생한의원 송필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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