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맛에 산다 황진이밴드
화려한 중년의 반란이 시작됐다
여성 4인조 직장인밴드…음악에 대한 열정은 ‘프로급’
지난 5월 10일 오후 5시. 흥덕구 사직동 병무청 부근 목련주유소 2층 건물로 40~50대 여성들이 한 두명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양손엔 도넛이며 떡이며 간식을 사들고 오는 이들의 얼굴은 그야말로 ‘행복’, 그 자체다. 함박웃음을 띤 얼굴엔 갱년기 여성의 우울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직장에서 하루 일과를 마친 시간이지만 피곤한 기색하나 없이 활기가 넘쳤다.
음악에 대한 열정은 ‘프로급’
청주에 여성으로만 구성돼 있는 직장인밴드가 있다. 초등학교 교사, 대형버스 운전기사, 가게 운영자 등 하는 일은 모두 다르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만큼은 한결같다. 바로 ‘황진이밴드’ 얘기다.
4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의 연령대로 이뤄진 이들은 드럼, 베이스 기타, 신디사이저, 보컬 등 그 역할을 나눠 매일 오후 5시면 목련주유소 건물 2층에 모여 저녁식사도 잊은 채 맹연습을 한다. 지금의 실력은 비록 미약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은 프로급인 것이다.
드럼을 맡고 있는 송유리(51) 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음악을 하는 게 꿈이었다”며 “이제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돼 너무 행복하고 좋다”고 활짝 웃었다. 또 이수나(베이스기타 51) 씨는 “예전부터 드럼을 배우고 싶었는데 밴드로 활동할 수 있게 돼 너무 만족스럽다”고 강조했다.
보컬을 담당하고 있는 김연승(45) 씨도 음악과 인연이 깊다. 2006년 당시 TV 프로그램 ‘주부가요열창’에 출연해 대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다수의 가요제에서 수상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 다 되는 황진이밴드
황진이밴드는 지난 10월 ‘춘자밴드’ 김용식 대표의 도움으로 만들어졌다. 춘자밴드는 청주지역 남녀혼성 직장인 밴드다. 황진이밴드 구성원들은 모두 춘자밴드의 공연을 보고 ‘음악을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무작정’ 김용식 대표를 찾아왔다고 한다. 음악에 대한 열정 하나로 밴드를 만든 셈이다.
이들은 ‘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 모두 황진이처럼 다재다능하고 실력 있는 밴드가 되길 희망하는 마음에서 황진이밴드로 이름을 짓고 본격적인 연습을 하고 있다.
김용식 대표는 “밴드는 다른 모임과는 달리 한사람만 빠져도 팀웍이 깨지게 마련인데 황진이밴드 구성원들은 팀웍이 너무 좋고 모두 열심히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년여성들에게 음악은 보약과도 같다”며 “음악을 하고 싶고 열심히 할 생각만 있다면 누구라도 환영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김 대표는 “남성만을 위한 밴드, 일명 ‘돌쇠밴드’도 만들 계획”이라고 전했다.
황진이밴드 멤버들이 연습 중 한자리에 모였다. 앞줄 왼쪽부터 송유리(드럼)·김미경(신디사이저)·김연승(보컬)씨. 뒷줄에 서있는 이는 이수나(베이스기타)씨다.
“황진이가 있어 행복해요~”
“뻥 뚫린 내 가슴에~ 서러움의 물~ 흐르면~ 떠나버린 너에게~ 사랑노래 부른다~~” 한번쯤 눈을 감고 흥얼거렸을 법한 노래. 황진이밴드가 연주하는 노래를 듣고 있자니 절로 눈이 감기고 옛 추억에 빠져드는 느낌이다.
황진이밴드는 주로 중년여성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7080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김연승 씨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음악을 하다 보니 사는 것이 행복하다”며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도 음악을 좋아하고 장래희망도 음악과 관련된 직업으로 찾고 있다”고 말했다.
또 신디사이저 연주를 담당하고 있는 김미경(47) 씨는 “예전에는 퇴근 후 집에 가면 TV나 보고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로 힘들어 했었는데 지금은 생활의 활기가 생기고 오히려 집안일도 더 잘하고 있다”고 웃었다.
이수나 씨는 “황진이밴드에서 음악을 하고 나면 모든 스트레스가 다 풀리는 느낌”이라며 “앞으로 실력을 더 쌓아 단순히 우리끼리만 즐기고 끝내는 밴드가 아니라 봉사활동이나 공연 등 음악을 통해 의미 있는 일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황진이밴드를 앞으로 무대에서 자주 볼 수 있게 되길 기대해본다.
최현주 리포터 chjkb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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