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무참하게 서귀포를 죽일 수가 있습니까? 도대체 제주도 정책 당국자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요, 자기네 고향의 경관도 보호할 줄 모르니."
서울에 사는 지인 한 사람이 제주도가 고향인 나에게 분통을 터뜨렸다. 이 사람은 틈만 나면 서귀포로 여행을 갈 정도로 그곳의 자연경관은 물론 인문환경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가 왜 서귀포를 좋아하는지 나는 안다. 해발 2000미터를 바라보는 한라산 등성이가 태평양으로 쑥 빠져드는 그윽한 곡선의 스카이라인에 반한 것이다. 그가 분통을 터뜨리는 이유는 올봄 윤곽을 드러낸 서귀포 혁신도시가 서귀포의 아름다운 스카이라인을 철저히 무시하고 서울 변두리의 산동네에 무질서하게 들어선 것과 다를 바 없는 고층 아파트와 같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나도 얼마 전 혁신도시 건설 현장을 지나가다 본 적이 있는데, 비전문가의 눈에도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13층짜리 아파트가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게 여간 눈에 거슬리지 않았고, 인근 주택가에 사는 시민들도 반응은 비슷했다.
주변경관을 무시한 서귀포 혁신도시 현장을 보며 지난 5월 초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방문에 맞춰 뉴욕에서 벌어진 ''팰리세이드 스카이라인 보호'' 캠페인이 떠올랐다. 뉴욕과 뉴저지의 환경단체 연합체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나란히 세우고 그 밑에 "박근혜 대통령께 : 미국의 상징물이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담은 전면 광고를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에 실었다. 팰리세이드는 뉴욕의 허드슨강을 따라 뉴저지 쪽에 높고 낮은 절벽으로 형성된 유서 깊은 녹지 지역이다.
강을 사이에 두고 동쪽은 마천루가 하늘높이 치솟았지만 강 건너 서편을 바라보면 절벽과 숲으로 이뤄진 스카이라인을 자랑한다. 팰리세이드가 뉴욕과 같은 거대 도시를 끼고 있으면서도 자연경관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존 D.록펠러가 그 일대를 사들여 공원화했기 때문이다.
뉴욕 ''팰리세이드 보호운동''의 교훈
그런데 팰리세이드에 이웃한 소도시가 높이 43미터의 기업 건물 신축 허가를 내주었다. 이 건물이 완공되면 숲으로만 이뤄진 스카이라인을 뚫고 건물이 튀어나오게 설계되어 있다. 불행하게도 이 건물주가 LG전자 북미통합본부다. 허가를 내준 도시로서는 거대한 다국적기업 본사를 유치함으로써 지방세수가 크게 늘 것을 기대해서 기업의 요구를 들어준 것이나, 뉴욕시민이나 인근 도시 주민들은 100년간 지켜온 아름다운 스카이라인이 훼손되니 반대다.
뉴욕과 뉴저지의 환경단체들이 연합하여 ''팰리세이드 보호하기(Protect the Palisades)''라는 웹사이트를 구축하고 반대 캠페인을 벌이는데,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막무가내 반대가 아니라 건물의 층수를 낮춰 스카이라인을 보호해달라는 것이다.
LG가 2년 동안 정당한 절차에 따라 허가를 얻었기에 법적으로 문제는 없다. 그러나 법적절차보다 자연경관을 보존하고 싶어 하는 시민의 가치의식이 더 여론의 시선을 받고 있다. 뉴욕타임스도 LG전자 편은 아니다. 아마 LG전자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이 아끼는 스카이라인을 훼손하는 건물이 한국기업이라는 상징성에 입맛이 쓰다.
혁신도시는 다 알다시피 노무현정부 때 수도권 비대화를 분산하기 위해 공기업을 중심으로 국가기관을 대거 지방도시로 하방(遐方)시킬 요량으로 계획한 도시건설 사업이다. 그 동안 정치적 고려와 지방을 싫어하는 해당 기관들의 지체작전으로 일의 진척은 느리기만 한 상태다. 서귀포 혁신도시에는 8개 기관이 이전하게 되어 있는데, 국립기상연구소의 입주가 제일 먼저 확정되면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주변 주거단지 조성사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주변경관과 어우러진 혁신도시를
서귀포 혁신도시가 자리잡은 곳은 제주도에서도 가장 빼어난 풍광을 주변에 거느린 곳이다. 한라산 자락에 우뚝 솟은 고군산(해발 400미터)과 올레 제7코스 사이의 경사지를 따라 조성되고 있다. 이미 이곳에는 20여년 전 고도제한에 의해 조성된 서귀포 신시가지가 들어서 있고, 월드컵 경기장도 나지막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혁신도시 자체만 고려할 게 아니라 제주도 경관 전체를 생각하는 건물 배치와 고도제한이 요구되는 곳이다. 특히 고도 제한은 제주도 건축의 생명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아파트에 살 사람들의 조망만 생각해서 도시를 죽이고 주변 사람들의 조망권을 훼손하는 건축은 피해야 할 곳이다. 아마 혁신도시에 거주할 사람들이 서울에서 이주할 사람들이어서 강남스타일로 아파트를 짓는 것 같은데, 과연 이게 혁신이고 창조인지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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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사는 지인 한 사람이 제주도가 고향인 나에게 분통을 터뜨렸다. 이 사람은 틈만 나면 서귀포로 여행을 갈 정도로 그곳의 자연경관은 물론 인문환경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가 왜 서귀포를 좋아하는지 나는 안다. 해발 2000미터를 바라보는 한라산 등성이가 태평양으로 쑥 빠져드는 그윽한 곡선의 스카이라인에 반한 것이다. 그가 분통을 터뜨리는 이유는 올봄 윤곽을 드러낸 서귀포 혁신도시가 서귀포의 아름다운 스카이라인을 철저히 무시하고 서울 변두리의 산동네에 무질서하게 들어선 것과 다를 바 없는 고층 아파트와 같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나도 얼마 전 혁신도시 건설 현장을 지나가다 본 적이 있는데, 비전문가의 눈에도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13층짜리 아파트가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게 여간 눈에 거슬리지 않았고, 인근 주택가에 사는 시민들도 반응은 비슷했다.
주변경관을 무시한 서귀포 혁신도시 현장을 보며 지난 5월 초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방문에 맞춰 뉴욕에서 벌어진 ''팰리세이드 스카이라인 보호'' 캠페인이 떠올랐다. 뉴욕과 뉴저지의 환경단체 연합체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나란히 세우고 그 밑에 "박근혜 대통령께 : 미국의 상징물이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담은 전면 광고를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에 실었다. 팰리세이드는 뉴욕의 허드슨강을 따라 뉴저지 쪽에 높고 낮은 절벽으로 형성된 유서 깊은 녹지 지역이다.
강을 사이에 두고 동쪽은 마천루가 하늘높이 치솟았지만 강 건너 서편을 바라보면 절벽과 숲으로 이뤄진 스카이라인을 자랑한다. 팰리세이드가 뉴욕과 같은 거대 도시를 끼고 있으면서도 자연경관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존 D.록펠러가 그 일대를 사들여 공원화했기 때문이다.
뉴욕 ''팰리세이드 보호운동''의 교훈
그런데 팰리세이드에 이웃한 소도시가 높이 43미터의 기업 건물 신축 허가를 내주었다. 이 건물이 완공되면 숲으로만 이뤄진 스카이라인을 뚫고 건물이 튀어나오게 설계되어 있다. 불행하게도 이 건물주가 LG전자 북미통합본부다. 허가를 내준 도시로서는 거대한 다국적기업 본사를 유치함으로써 지방세수가 크게 늘 것을 기대해서 기업의 요구를 들어준 것이나, 뉴욕시민이나 인근 도시 주민들은 100년간 지켜온 아름다운 스카이라인이 훼손되니 반대다.
뉴욕과 뉴저지의 환경단체들이 연합하여 ''팰리세이드 보호하기(Protect the Palisades)''라는 웹사이트를 구축하고 반대 캠페인을 벌이는데,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막무가내 반대가 아니라 건물의 층수를 낮춰 스카이라인을 보호해달라는 것이다.
LG가 2년 동안 정당한 절차에 따라 허가를 얻었기에 법적으로 문제는 없다. 그러나 법적절차보다 자연경관을 보존하고 싶어 하는 시민의 가치의식이 더 여론의 시선을 받고 있다. 뉴욕타임스도 LG전자 편은 아니다. 아마 LG전자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이 아끼는 스카이라인을 훼손하는 건물이 한국기업이라는 상징성에 입맛이 쓰다.
혁신도시는 다 알다시피 노무현정부 때 수도권 비대화를 분산하기 위해 공기업을 중심으로 국가기관을 대거 지방도시로 하방(遐方)시킬 요량으로 계획한 도시건설 사업이다. 그 동안 정치적 고려와 지방을 싫어하는 해당 기관들의 지체작전으로 일의 진척은 느리기만 한 상태다. 서귀포 혁신도시에는 8개 기관이 이전하게 되어 있는데, 국립기상연구소의 입주가 제일 먼저 확정되면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주변 주거단지 조성사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주변경관과 어우러진 혁신도시를
서귀포 혁신도시가 자리잡은 곳은 제주도에서도 가장 빼어난 풍광을 주변에 거느린 곳이다. 한라산 자락에 우뚝 솟은 고군산(해발 400미터)과 올레 제7코스 사이의 경사지를 따라 조성되고 있다. 이미 이곳에는 20여년 전 고도제한에 의해 조성된 서귀포 신시가지가 들어서 있고, 월드컵 경기장도 나지막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혁신도시 자체만 고려할 게 아니라 제주도 경관 전체를 생각하는 건물 배치와 고도제한이 요구되는 곳이다. 특히 고도 제한은 제주도 건축의 생명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아파트에 살 사람들의 조망만 생각해서 도시를 죽이고 주변 사람들의 조망권을 훼손하는 건축은 피해야 할 곳이다. 아마 혁신도시에 거주할 사람들이 서울에서 이주할 사람들이어서 강남스타일로 아파트를 짓는 것 같은데, 과연 이게 혁신이고 창조인지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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