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무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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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는 창조경제를 핵심으로 내세우면서 과학기술 중심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기반은 창의력이고, 창의력을 키우는 가장 저렴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은 책읽기다. 이미 정답이 나와 있다. 문화융성도 마찬가지다. 책이란 기록하고 공유하고 학습하고 반성하는 매체이면서 후대에 계승시키는 매체다. 하지만 책과 관련한 생태계가 사그라들고 있다는 데 대해 정부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 과거 인문학의 위기 선언을 인문학으로 밥벌이하는 사람들의 위기로 규정했던 것처럼, 현 정부도 책과 관련한 위기를 단지 책으로 밥벌이하는 사람들의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한마디로 무식한 정부다."
◆"정부, 독서생태계 위기 외면" =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책과 출판, 도서관, 독서문화 등 책과 관련한 생태계의 위기에 대해 정부가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며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특히 디지털화, 스마트폰 등으로 국민독서율과 개인당 도서구입비가 계속 떨어지는 공멸 위기의 독서생태계에 대해 정부가 근본적 대안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서정가제가 대표적이다. 백 연구원은 "도서정가제가 시행된다 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라며 "당연히 있어야 하는 제도적 기반인데, 이조차 없다 보니 맨 먼저 중소서점이 무너지고, 서점이 무너지니 출판사의 매출이 악화되고, 출판사의 재투자가 안되니 좋은 저작물이 안 나오는 등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출판종수가 전년도 대비 10%, 발행량이 20% 감소된 것 역시 주요 선진출판국에선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최종적인 피해자는 바로 독자, 즉 일반국민이라는 게 백 연구원의 지적이다.
프랑스의 경우 문화부 산하에 도서관·독서국이 있어 도서관과 독서, 출판정책이 함께 맞물려 추진된다는 점도 주요 비판지점이다. 우리의 경우 출판은 미디어 정책쪽에서, 도서관은 도서관박물관정책기획단에서 다루고 그 하부 단위로 독서정책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처럼 독서정책이라는 큰 지붕 아래 출판과 도서관 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이나 기업이 더 모범적" = 백 연구원은 지역이나 기업에서 중앙정부보다 더 모범적인 사례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러 지역 단위에서 책읽는 도시를 선포하고, 적극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경기도 군포시의 경우 시정의 제1과제가 책읽는 도시 만들기이며 애경의 경우 전사적 차원에서 독서경영을 펼치며 기업의 매출 확대뿐 아니라 구성원의 삶의 질을 높이고 있다"며 "오히려 이런 점에서 중앙정부가 뒤처져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OECD국가 중 최하위를 벗어나고자 10년 전, 5년 전에 비해 도서관 숫자를 많이 늘렸지만 여전히 작은도서관 위주로 건립, 지역 커뮤니티의 구심점으로 기능하지 못하는 점을 아쉬운 점으로 꼽았다. 백 연구원은 "사람들이 소통하고, 정보를 얻고, 생각을 가다듬는 장소가 아니라 여전히 학생의 공부방으로 기능하고 있다"며 "정부나 지자체의 장서구입비 자체가 적다보니 양질의 도서, 최신 도서 등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백 연구원은 우리 사회를 정신적 여유가 피폐화돼 노인의 자살률이 높고 독서를 들이밀 만한 여유가 없는 사회라고 규정하며 "정부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형식적·의례적인 정책 대신 수요자 위주의 정책을 펼쳐 국민들이 책과 관련한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반을 확충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독서생태계 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대 힘을 합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출판이 책을 만들고, 책이 도서관을 채우고, 도서관이 양서를 출판하는 출판계의 생존을 담보하는 등 서로가 의존적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백 연구원은 "독서생태계 구성원들이 공동의 위기관리 능력을 키워야 한다"며 "그래야 중고생때는 과도한 입시경쟁의 볼모로, 대학생이 돼서는 취업전쟁의 볼모로 책을 읽을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는 우리 사회를 조금이나마 바꿔갈 수 있다"고 말했다.
"사람이 곧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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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현재 우리는 매우 중요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 우리는 아주 심각한 저성장 상태에 빠져 있고, 기존 사회변화의 패러다임을 바라보는 시각으로는 계속 닥쳐올 사회적 위기 상황에 대응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전혀 새로운 눈으로 사회변화를 이해하고 인식해 해법을 찾아야 한다. 막연하게 여러가지 사회적 가치들, 즉 행복과 나눔, 경제민주화 등의 개념이 나와 있긴 한데, 구체적으로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진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과정이 필요하다."
안찬수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 사무처장은 2008년 제러미 리프킨의 말을 인용하며 현재 우리 사회에 문명사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우리나라의 미래전망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국민들이 경쟁과 입시 등에 격심하게 내몰려 8대 2가 아닌 99대 1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의 패러다임으로는 미래를, 다음 세대를 기약할 수 없다는 게 안 사무처장의 진단이다.
◆"99대 1사회, 새로운 패러다임 절실" = 이를 타개하기 위해선 책이나 출판, 도서관, 독서문화 등 문화복지 영역들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그의 해법. 하지만 현실을 들여다보면 출판계는 매우 심각한 위기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사막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출판계와 공동운명체인 도서관계 역시 지난 10여년 간 양적 성장을 이뤘지만 질적 발전의 동력이 안 만들어지고 있다. 특히 시설이 아닌 사람문제가 심각하다.
안 사무처장은 "2000년대 중반 흔히 말하는 작은정부론이 만들어지고 나서 공무원 정원을 일정 수준 묶어놓고 총액 임금 내에서 단체장이 자율적으로 인건비를 쓸 수 있도록 제도화했다"며 "이로 인해 2005년 이후 지어진 100개 가까운 도서관 대부분이 민간위탁이나 시설관리공단 운영의 형태로 변형돼 공적 서비스 기관인 도서관의 형태를 왜곡시켰다"고 비판했다.
안 사무처장은 도서관을 바라보는 기본 관점은 민주주의적 시각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도서관은 민주주의의 척도라는 것이다. 그는 "공기 중 산소가 충분한지 아닌지 감별하는 카나리아와 같이 도서관 역시 우리 사회가 숨쉴 만하냐, 살아갈 만하냐, 삶을 누리는 사회냐 하는 것을 보여주는 척도"라고 말했다.
현재 공공도서관의 불균형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도 큰 고민거리다. 중앙과 지방의 격차, 풍족한 지자체와 열악한 지자체간 격차, 도시와 농촌간 격차 등으로 불균형이 심해지면서 독서생태계의 사막화가 점점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안 사무처장은 "21세기에 들어선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 공공도서관이 없는 지자체가 있다"며 "그 격차는 해당 지자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과제로, 정부가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시급히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도서관이 더 이상 독서실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각종 문화를 창출하는 문화생산기지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 관행 등을 고쳐야 한다는 결론은 자연스러운 것. 그러기 위해선 정부뿐 아니라 시민사회도 나서야 한다는 게 안 사무처장의 지적이다. 안 사무처장은 "2000년대 초 기적의 도서관 건립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배운 것 중 하나는 민과 관의 협력, 즉 거버넌스를 통해 시민의 우렁찬 목소리와 적극적 참여가 공공서비스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직접 체험했다는 것"이라며 "지금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해법을 찾기 위해 다시 한 번 민관 거버넌스가 힘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는 사람을 확충할 때" = 그는 "도서관을 운영하거나 이용하는 이들, 도서관정책을 운용하는 이들 모두 사람으로, '사람이 곧 도서관'이라는 결론을 얻게 된다"며 "도서관 시설의 점진적 확충기를 지나 이제는 이를 운용하고, 이용하고, 정책을 내놓는 '사람들'을 확충해야 할 때가 왔다"고 지적했다.
안 사무처장은 마지막으로 "도서관은 한 사회를 살아 꿈틀거리게 하는 또 다른 생명체"라며 "그 생명체를 북돋아 생명력을 뛰놀게 하는 일에 전 사회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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