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날인] 잠신고 3학년 이유나

모의 UN대회가 준 선물은 ‘소통의 기술’

지역내일 2013-05-07

이유나양을 만난 것은 일요일 밤늦은 시간. 모의 UN대회 준비를 위해 늦은 시간까지 팀원들과 마라톤 회의를 끝마치고 그는 숨차게 뛰어왔다. 공부만 하기도 빠듯한 고3인데 모의UN대회까지 참가하느냐고 묻자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며 “최고 기량을 갖춘 학생들과 토론하는 과정에서 수능 공부 보다 더 많은 걸 배우기 때문”이라는 당찬 대답이 돌아왔다.


 
오빠와 단둘이 떠난 해외여행에서 배운 것은?
그러면서 ‘인생은 자기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교육 철학을 지닌 엄마 덕분에 초등학교 때부터 남 다른 학창시절을 보냈다는 자신의 성장 스토리를 술술 풀어낸다.
“초등학교 시절 또래 아이들이 학원 뺑뺑이 돌 때 나는 늘 실컷 놀았어요. 축구, 농구, 스케이트, 수영 등 만능 스포츠맨으로 자랐죠.” 대신 이양의 엄마는 방학 때마다 초등학생 남매 단둘이 해외여행을 보냈다.
“첫 여행지가 중국이었는데 오빠와 나는 여행 내내 불안에 떠느라 인솔 가이드가 있었지만  현지에서 뭘 보았는지 기억도 잘 안나요.” 하지만 ‘넓은 세상을 직접 경험해야 한다’는 엄마의 굳은 소신 때문에 그 이듬해에도 등 떠밀려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를 오빠와 단둘이서 떠났다.
“두 번째 여행은 한결 여유가 생기더군요. 에펠탑 꼭대기에서 오빠와 계단 내려오기 시합하고 루브르 박물관에서는 가이드 설명 들으며 작품도 골고루 감상했죠. 하루 이틀 지날수록 유럽의 문화가 조금씩 눈에 들어오더군요.” 이처럼 이양은 중2 때까지 방학 때 마다 해외를 여행했다.


아이비리그 탐방 후 기초영어부터 공부
특히 중1 때 캐나다, 미국으로 떠난 여름캠프가 이양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현지 학교에 다녔는데 게임식 수업이 이색적이었어요. 승부욕이 발동하니 서툰 영어지만 자꾸 말하려고 애쓰게 되더군요. 방과후에는 양궁, 농구 등 원하는 스포츠를 맘껏 배울 수 있었지요. 한국에서는 공부만 해도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수두룩한데 이곳 학생들은 공부 스트레스 없이 활기차게 학창시절을 보내는 모습이 부러웠어요. 특히 대학생 멘토와 하버드, MIT, 예일대 등 아이비리그 대학을 탐방했는데 자극이 많이 됐어요.”
귀국 후 이양은 유학을 목표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난생 처음 어학원에 가서 레벨테스트를 보니 최하위 반에 배정됐어요. 그때부터 단어 암기, 받아쓰기, 영어 소설 읽기, 영화 반복해서 보며 대사 외우기 등 영어의 바다에 푹 빠져 살았죠. 실력이 쑥쑥 늘더군요.”
중3을 앞두고는 아예 성인 대상 토플학원으로 옮겼다. 겨울방학 내내 매일 단어 1천개씩 외우고 대학생들과 스터디를 했다. 이런 노력이 쌓이면서 토플시험에서 기대 이상의 점수를 받았다. “아, 나도 하니까 되는구나. 이런 자신감을 처음 맛보았죠.”
유학을 목표로 영어에 매달렸지만 중산층 가정 형편으로 미술을 공부하는 오빠와 자신의 유학 뒷바라지는 현실적으로 버거웠다. 어쩔 수 없이 유학의 꿈을 접자 슬럼프가 찾아왔다.


모의 UN대회에서 배운 리더십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딸에게 엄마는 영어 실력을 테스트할 겸 모의UN대회에 참가해 보라고 권했다. 이양은 대회 규칙도 모른 채 멋모르고 참석했지만 영어로 자기 의견을 당당히 밝히는 참가자들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한편으로는 일반 참가자가 아닌 회의를 주도하는 의장단에 꼭 들어가 보고 싶다는 욕심까지 생겼다.
“이듬해에는 지원서를 정성껏 써서 제출하고 오디션까지 봤어요. 준비를 철저히 한 덕분에 의장단으로 뽑혔지요.” 외국 거주 경험이 많거나 외고, 국제고 출신 학생들이 대다수인 모의UN회의 의장단에 일반고 출신 이양이 선발된 것은 이례적이었다.
“그 뒤 UN 홈페이지와 위키피디아, 구글 검색하며 수십장의 의장단 리포트를 써내며 각 나라별 특징과 현황, 핫 이슈, 외교문제 등을 꼼꼼하게 스터디했습니다. 내가 이끄는 소그룹 회의에 수십 명의 시선이 나를 주목할 때의 그 기분이 무척 짜릿했습니다.” 리더의 역할, 처음 만난 수백 명의 사람들과 원활하게 소통하며 치열한 찬반토론을 거쳐 합의를 이끌어내는 방법 등 책으로 배우지 못한 다양한 경험을 모의 UN대회에 참여하며 차곡차곡 쌓았다.
그 이후로 청소년 핵안보정상회의, 북한인권포럼 등 여러 대회를 두루 경험했다. “학교 울타리를 넘어 몸으로 부대끼며 배운 리더십은 학급 임원, 학교 신문 동아리 부장을 맡았을 때 많은 도움이 됐어요.”
고3이면서도 교내외 활동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는 그는 공부의 끈을 악착같이 잡고 있다. 여러 대회에서 쌓은 ‘소통의 기술과 리더십’을 광고기획자라는 꿈을 통해 펼쳐 보이고 싶기 때문이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인생의 전부도 아닌 공부 하나 정복하지 못해서야 내가 무엇을 정복할 수 있겠냐 다짐하며 매일 책과 씨름하고 있어요. 내가 노력한 딱 그만큼 몇 달 뒤 결과가 나오겠죠.” 씩씩하게 덧붙이는 이 양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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