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시 송악면 외암민속마을 안에 종가의 비법을 담아 전통의 맛을 살린 충남농가맛집이 탄생했다.
충남도 ‘가풍종가음식계승시범사업’에 선정된 ‘풍덕고택’은 이사종의 7세손인 이택주가 풍덕군수를 지낸 연유로 풍덕댁이라 불렸다. 외암민속마을보존회장으로 활동 중인 이준봉(61) 종손은 가풍을 이어받은 음식을 만든다는 의미로 ‘풍덕고택’이란 상호를 사용해 예안 이씨 종가의 음식을 선보였다.
전통만을 담은 맛과 정성 =
* 눈보다 속을 편하게 해주는 소박하고 건강한 밥상.
풍덕고택 한상차림의 특별한 음식 중 첫 번째는 기주떡. 기주떡은 대추와 석이버섯, 밤을 채 썰어 넣고 막걸리로만 발효시켜 만들었다. 여름에 유독 제사가 많았던 탓에 잘 쉬지 않고 더운 날씨에도 두고 먹을 수 있게 만든 지혜가 담긴 떡이다.
두 번째, 컴프리 고추 깻잎순에 발효시킨 찹쌀풀을 발라 햇볕에 2일 정도 말린 후 튀겨내는 부각은 집에서 갓 만든 듯 신선하고 바삭하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군내 나는 부각과는 차원이 다르다. 특히 컴프리는 예안 이씨 종부 이기원 대표가 “부각으로는 최고”라고 꼽는 재료이다.
세 번째가 진잎국. 진잎국은 겨울철 무가 귀했을 때 무청과 배춧잎을 넣고 쇠고깃국을 끓여먹던 데서 유래했다. 이준봉 종손은 “우리집만의 종가음식인 진잎국이 가풍종가음식계승시범사업 선정과정에서 주목받았다”고 말했다. 분명 쇠고기가 들어간 국인데 느끼한 맛이 없이 깔끔하고 구수하다. 국물이 술술 잘도 넘어간다.
도고 유황돼지를 3년 숙성시킨 된장을 넣고 삶아낸 수육은 누린 맛이 전혀 없고 부드러워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맛을 지녔다. 이곳을 같이 방문한 입맛 까다로운 지인은 이 대표에게 “수육만 전문으로 해도 인기가 많겠다”며 칭찬을 늘어놓았다.
검은 색깔의 무장아찌는 짜지 않으면서도 깊은 장맛이 배었다. “무장아찌의 이런 색깔만 내려면 간장으로도 비슷하게 해요. 그러나 저는 매년 고추장을 갈아주며 3년을 숙성시켜 무장아찌를 만들어요.”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이 대표의 정성이 가득한 반찬이다.
* 마당 한편을 가득 메운 장독대. 이기원 대표의 내공을 담은 갖가지 장들이 숨 쉬며 익어가고 있다.
이준봉 종손은 “아내가 특히 김치를 잘 담근다”며 “선친께서 아내가 만든 김치를 항상 맛있게 드셨다”고 넌지시 이 대표의 음식솜씨를 추켜세웠다.
영양밥과 진잎국은 이종오 명장의 방짜유기에 담아 종가음식의 전통을 더했다. 영양밥은 현미찹쌀과 서리태 흑미 등을 골고루 섞어 차지고 구수해 맨 입으로 먹어도 맛있다.
3년 숙성 된장으로 끓인 토장국, 매실 향 감도는 김치 겉절이, 새콤달콤한 무강지, 머위나물 피클 등 최상의 재료가 내는 풍부한 맛이 잃었던 입맛을 살렸다. 식사 후엔 연잎을 덖어 끓인 물을 마셨다. 입안에 은은한 연잎향이 스친다.
전문가들이 인정한 밥상 =
리포터가 방문한 날 때마침 전주대학교 한복진 교수가 일행과 함께 풍덕고택 음식을 맛보러 왔다. 한복진 교수는 조선왕조궁중음식전수자로 이름난 고(故) 황혜성 교수의 딸로, 한복려 한복선과 함께 우리나라 궁중음식연구의 대가이다.
한 교수는 풍덕고택 음식을 “소박하게 정성껏 만든 음식”이라며 “간도 잘 맞고 정갈하고 훌륭하다”고 평가했다. 같이 온 일행들도 “충청도 음식이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좋은 음식을 먹게 됐다”며 “자극적이지 않고 깊이가 있다. 이렇게 전통을 보존하는 집이 오래가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종가의 맏며느리로서 가족의 건강을 책임졌던 이기원 대표는 눈가림에 그친 음식은 만들지 않았기에 으뜸가는 종부의 솜씨로 인정받았다.
* 한복진 교수 일행에게 음식을 설명하고 있는 이기원 대표.
단아하고 고운 몸가짐에서 종부의 관록을 엿볼 수 있다.
풍덕고택 상차림은 가짓수가 많지도 않을뿐더러 화려하지도 않다. 외암민속마을 내 사업이라 마음 놓고 공간을 넓히지도 못해 매 끼니 최대 4상까지만 받는다. 인공적인 맛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양으로 승부하는 곳도 아니다. 자극적인 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상업화된 음식에 지친 미각을 살리고픈 이들에겐 힐링이 되는 식단이다. 반드시 예약해야 이용할 수 있다.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전통방식으로, 재료가 내는 가장 좋은 본래의 맛을 살린 정직하고 소박한 밥상. 한상차림 1인 1만5000원의 밥값이 아깝지 않을 건강한 식단이다.
“일일이 직접 만들어요. 눈에 보이진 않지만 정말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음식들이에요. 저희 집을 찾는 분들은 저의 정성과 공이 든 음식을 맛있게 드셔주셨으면 좋겠어요.” 수줍게 얘기하는 이기원 대표의 눈가에 잔잔한 웃음이 번졌다.
예약 문의 : 홈페이지(pungduck.co.kr), 이기원 대표(541-0023, 010-6420-0023)
노준희 리포터 dooai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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