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을 간과한다면 내년에도?

지역내일 2013-04-30

고등학교의 중간고사가 이번 주에 일제히 치러진다. 수능과 논술 공부에 매진하던 학생들이 중간고사 시험 대비에 들어가는 4월말부터 논술 학원에는 재수생들이 대거 자리잡는다. 고3학생들이 중간고사 등 학교 시험에 눈을 돌리는 사이 재수생들이 논술에서도 격차를 벌려 나가는 것이다.


‘물수능’ 정시 합격의 진실은?


재수생들은 학생과 부모 모두 정보력에서부터 고3보다 큰 차이가 있다. 한번 수험생활을 치러본 이들은 수험생활이 5월에 접어들면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다. 무엇보다 논술 학원에 오는 재수생들은 수능 성적만으로는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경험해서 알고 있다. 실제 지난해 재수생들의 수능 성적은 대부분 2급등 이상이었다. 하지만 정시에서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갈 수 없었다. 더러는 1등급 한두 개를 받아 서울의 최하위권 대학에 들어갔다 결국 재수를 선택했다. 꽤 수능을 잘 봤다고 생각했지만 상상하지도 않았던 낮은 대학에 정시로 지원하고, 여기에 낙방까지 하게 되면서 정시합격의 어려움을 절감하게 됐다고 호소한다. 실제 자료로도 이는 증명된다. 대학들이 공식적으로 밝히길 꺼려하지만 몇 해 전 성균관대는 수능 시험 문제 전체에서 정시 합격자의 경우 틀린 갯수가 대략 5개 이내, 하위권 학과일 경우 7개 이내라고 자료를 내 놓은 적이 있다. 정시로 좋은 대학을 가려면 완벽한 대비가 필요한 것이다. 게다가 그 때보다 수능은 더 쉬워져 점수 인플레이션은 한층 심해졌다.


대학은 논술을 원한다


수능이 변별력을 잃고 이렇게 ‘물수능’이 된 것은 정부가 원해서다. 어려운 수능이 사교육을 부르고, 대학을 서열화하고, 학생들을 줄 세운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능을 쉽게 내고,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됐다. 효과는 있었다. 이제는 만점에 가까운 최상위권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정시로 들어가는 학생들의 수능 점수는 그리 차이나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대번에 연세대에 합격할 학생도 수능 점수로는 그보다 못한 학생들과 점수 차가 벌어지지 않으므로 결국 건국대에도 가는 식이다. 오히려 실수라도 몇 개 하면 좀 더 실력 있는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의 점수가 역전되는 게 다반사다. (정시로 대학을 간 학생이 주변에 있으면 물어보길 권한다) 하지만 대학은 이같은 서열 파괴와 줄 세우기 완화를 원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더 잘 하는 학생을 분명히 가려내는 시험을 원한다. 대학이 명성을 위해 실력 있는 학생이 들어오길 원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래서 정시 모집인원을 전체의 30%로 줄이고, 논술 전형을 대폭 늘린 것이다. 어려운 논술을 쳐 봐야 이 학생이 다른 학생보다 잘하는지 세밀하게 판가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들은 전형 설명회에서, 실력이 아닌 수능에서의 실수 몇 번으로 학생을 낙방시킬 수도 있기 때문에 논술로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의 매우 큰 변별력을 두고 있다고 올해도 어김없이 강조하고 있다.


내신의 중요성은?


대학이 수능의 변별력도 믿지 못하는데, 내신은 말할 것도 없다. 내신은 명목상의 수치만으로 존재할 뿐 대학을 가는데 평가 항목으로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 명목상으로라도 내신을 넣어둔 것은 공교육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다. 물론 논술이 아닌 몇몇 수시 전형에서는 내신을 절대적으로 반영하기도 하지만, 이 경우에 내신 전교 몇 등 안에 드는 학생만이 대상이 된다. 물론 학교 시험을 준비하면서 얻어진 성실함과 내신 공부를 하면서 쌓은 지식이 수능과 논술의 기본이 되지만 실상 점수로서의 의미는 없다.


학부모의 덕목은 정보력


대치동에서 오랫동안 가르치면서 알게 된 강남 학부모의 능력은 바로 이같은 내용을 이미 알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상담을 할 때도 대부분 논술 교육과 대학 지원에 관한 전략에 집중된다. 고3 학생이 물수능으로 인한 정시의 어려움, 내신의 낮은 효용성을 모른 채 올 한해를 보내게 될 경우 아마도 내년에 뒤늦게 논술학원을 찾을 것이다. 수능 모의고사 성적이 어느 정도 나온다고 웬만한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주변에 최근 대학을 간 학생이 있다면 꼭 물어보기 바란다. 논술학원에는 첫째 아이 보다 대학생 형제를 둔 둘째 아이가 유독 많은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박문수 원장


전 중앙일보 기자
전 대치 명품논술 평가원장
현 이지논술 문과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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