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호화별장 성접대 의혹에 대한 경찰 수사가 한 달째 지지부진한 가운데, '고 장자연씨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노리개’가 투자에서 개봉까지 수많은 난관을 뚫고 지난 18일 개봉했다. 출연 배우와 제작 스태프들이 개런티 없이 참여한 만큼 영화의 완성도가 흡족할 만큼은 아니었지만, 연예계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이면에 존재하는 추잡한 야합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고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의혹과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2009년 한 여배우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서 그녀가 남긴 문건이 세상에 공개됐다. 사람들은 연예계의 추악한 이면에 놀랐지만 점차 리스트 속의 거물들은 수사선상에서 제외되었고 곧 그 사건은 대중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다. 영화 ‘노리개’는 연예계 최대 스캔들이었던 당시의 사건을 떠올리게 함과 동시에 지금도 어디에선가 일어나고 있을지 모를 밀실 거래의 추악함을 고발한다.
소속사 대표로부터 영화감독, 언론사 대표 등 연예계 관련 고위층 인사들을 성접대 할 것을 강요받은 신인여배우 정지희(민지현)는 굴욕적인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그녀의 죽음이 석연치 않은 이장호(마동석) 기자는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성접대 의혹을 제기하고 취재에 착수한다. 영화는 정지희에게 성접대를 강요한 소속사 대표와 그녀로부터 성접대를 받은 인물들이 기소되어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중간 중간 정지희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되돌아본다.
의혹과 진실이 명백히 밝혀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힘 있는 가해자들이 권력을 이용해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는 영화의 결말은 연예인 성상납 사건들이 현재진행형임을 시사한다.
지나쳐서 어설프다
영화는 제목부터 상당히 직설적이다. ‘노리개’, 정확히 말하면 ‘성노리개’다. 기획사 대표에게 영화 속의 정지희는 인간이 아니라 철저한 노리개 상품이다. 기획사 대표는 스타가 되고 싶은 신인여배우의 꿈을 이용해 불공정 계약으로 발목을 잡고 기획사 마케팅을 위한 밑밥으로 그녀를 활용한다.
연출력과 일부 스토리는 과한 설정 탓에 어설프게 느껴진다. 은폐된 사건을 고발했던 영화 ‘도가니’와는 달리 연예계 성상납 문제는 이미 대중들에게 익숙한 소재다. 그래서인지 ‘노리개’는 선정적인 연출로 그 심각성을 강조하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나치게 선정적인 장면 때문에 오히려 진실이 흐려지고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정지희라는 캐릭터 또한 혼란스럽다. 기획사 대표에게는 성접대 거부의사를 강력히 밝혔지만 막상 접대 자리에 나가자 언론사 사장에게 자신의 이름을 수차례 각인시키며 연예인으로서의 욕망을 드러내 영화의 핵심을 흐린 듯하다. 가해자 처벌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여검사가 어릴 적 사촌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는 설정은 작위적이기까지 하다.
인권 침해하는 비리가 관행일 수는 없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여성연예인 인권침해 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성연기자 45.3%가 술시중을 들라는 요구를 받은 경험이 있었고, 60.2%는 방송 관계자나 사회 유력인사에 대한 성접대 제의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한다. 어쩌면 연예계 성상납 문제는 뿌리 깊게 만연돼 있어 영화 속의 연예기획사나 언론사 사장처럼 가해자들이 죄의식조차 못 느낄지도 모른다.
더구나 강자인 가해자와 약자인 피해자의 구도 속에서 벌어지는 야합인 만큼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사건은 유야무야 끝나기 십상이다. 영화 ‘노리개’는 현재진행형인 연예계의 성접대 문제를 다시 끄집어내 그 심각성을 상기시켜 준다. 영화가 대중들에게 준 울림의 만분의 일이라도 가해자들에게 양심의 불편함으로 전달되었으면 한다.
이선이 리포터 2hyeon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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