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적 가치와 정신을 잃은, 차가운 시멘트 조형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호된 비판 속에서도 현대인들은 다양한 이유에서 아파트를 선택했다. 그리고 차가운 시멘트에 지나지 않았던 아파트는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산책로를 비롯한 휴식 공간에 문화예술까지 즐길 수 있도록 진화한 아파트. 하지만 대부분의 입주자들은 아파트 속 조형물에서 예술적 가치를 찾아내지 못한다. 예술 작품을 만나기 위해 미술관을 찾아가는 일은 마다않지만, 내 집 앞 예술 작품에 둔감한 이유는 무엇일까. 강원도를 대표하는 여성조각가 김경숙(56)씨를 만나 우리 동네 조각작품에 담긴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우리 동내 예술작품 찾아보기
“예술은 응시다. 스스로 빛나는 자연의 영혼을 알아채는 마음의 즐거움이다.” 소설가 김별아 씨가 조각가 김경숙 씨의 작품을 보고 쓴 글이다. 화려하지 않고 아무리 미미해도 기어코 빛나는 자연의 영혼을 찾아내고야 만다는 조각가 김경숙.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는 그녀의 작품들은 사실 우리 동내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먼저 퇴계동 ‘이안’에 자리 잡은 ‘파도’. 이 작품은 우리가 한번 쯤 꿈꿔봤을 상상을 눈앞에 재현해 놓았다. 공기보다 가벼워진 몸이 날아올라 구름을 타거나 바다 깊은 곳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꿈. 솟구치는 포말 사이로 춤추듯 유영하는 돌고래와 소녀는 따뜻한 엄마의 양수를 헤엄치는 태아처럼 흔들림이 부드럽다. “마음대로 어디든 갈 수 있는 해방과 자유의 즐거움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김경숙 씨는 물결의 흐름 하나까지도 사납지 않게 가볍고 자유로우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사농동 ‘롯데인벤스’의 ‘밀림의 하프’ 역시 숲의 여신이 들려주는 평화로운 하프 소리에 편안한 여유를 느끼게 한다. 만물을 따뜻하게 내려다보는 여신의 시선 아래 먹이를 사냥하던 치타도 질주를 멈추고 한가로이 쉬고 있다. 목숨을 건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밀림과 현대인들의 삶이 달리 보이지 않았다는 김경숙 씨는 평화로운 한 때를 주민들에게 선물해주고 싶었다. 그녀에게는 계속된 작업으로 한 달 가까이 팔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통증에 시달리게 만든 작품. 하지만 잊지 못할 선물을 받기도 했다. “어느 날 작품이 보고 싶어 찾아갔었어요. 그런데 아빠 손을 잡고 나온 아기가 혼자 아장아장 걸어 작품 앞으로 걸어가더라구요. 그리고는 자기 눈높이에 있는 사자에게 입맞춤을 하는데, 그동안 아팠던 고통이 다 사라지는 듯 했습니다.”
근화동 ‘신성미소지움’의 ‘잉어와 호수의 요정’은 환상적이고 동화적인 분위기 속에 사랑스러운 소녀의 모습이 생동감 있게 표현된 작품.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현대의 추상조각과는 달리 김경숙 씨의 조각은 난해하지 않다. 그녀는 관람자와 작품 사이에 거리감을 생기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작품에는 자신이 어려서부터 경험한 시골 정취와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가족에 대한 사랑,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들이 살아 숨 쉬고 있다.
퇴계동 ‘그린타운’의 문주는 그녀의 많은 이야기가 담긴 작품이기도 하다. 스무 살이 된 딸아이가 백일 때 이사 와서 이제까지 살고 있는 그녀의 소중한 보금자리이기 때문이다. “오래 살아도 항상 좋은 것은 창밖의 자연이죠. 이름 모를 새들도 창밖에서 노닐어 줘 예쁩니다. 구조적으로 두면을 보여주어야 하는 그린타운 문주에 자연스럽게 나비를 상상해 내게 된 것은 나비의 상징이 희망, 기쁨, 행복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작품 속 그린타운 이라는 글은 목향 정광옥 선생이 작품. 글씨 줄 맞추느라 추운 날씨에 함께 고생해준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여성작가의 따스함과 동심을 만나다
이외에도 퇴계동의 유례를 표현한 ‘무릉마을 기념조형물’ 역시 김경숙 씨의 작품. 동화 속 인물과 풍경을 연상시키며 관객을 환상의 세계로 인도하는 ‘삼척의 해양레일바이크 공원’과 서울 선릉에클라트 ‘밀림의 하프’, 합정동 엠파이어 ‘플라워 2006’ 등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그녀의 대표 작품이다.
앞으로는 ‘백제향로’와 같은 작품들을 연구해 국보급 작품을 남기고 싶다는 김경숙 작가는 자신의 작품들은 여자로서, 엄마로서 살았던 자신의 삶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작품에는 언제나 젓 먹이는 어머니의 따스함과 호기심 가득한 아이의 동심이 묻어나 행복해진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 따뜻해지고 행복해지는 작품들, 강원도를 대표하는 여성 조각가의 작품을 우리 동내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현정희 리포터 imhj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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