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나이가 열여덟이었으니 50년이 넘었지요. 정확히 52년째네요. 50년 넘게 이 일이 해오면서 항상 좋았다는 것은 거짓말일 테고, 중간 중간 그만두고 싶은 시절도 있었죠. 하지만 지금까지도 일을 손에 놓지 않고 있는 걸 보니 저한테는 이 일이 천직인가 봅니다.”
충장로 5가 리갈양복점 김영재 대표의 말이다. 김대표가 몸담고 있는 곳은 충장로 5가 낡은 건물 삼 층이다. 양복업이 한창 좋았던 시절이 지나고 시장이 많이 축소된 것과 마찬가지로 충장로 거리도 예전과는 다르다. 복잡하고 번화했던 시절은 옛날 말이다. 이젠 드문드문 사람들이 지나다닐 뿐이다.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의 기호가 달라졌지만 충장로 5가 거리는 옛 시간을 그대로 담은 듯하다. 문을 열고 장사를 하는 곳도 20년이 넘은 곳이 많았고 상인들 또한 젊은 층보다는 50대에서 60대가 많았다. 업종도 상호도 바뀌지 않고 시간 속에 그대로 스며들었다. 호황은 상인들의 기억에서만 존재했다.
김대표가 양복업계에 발을 디딜 무렵에는 젊은 기술자들로 넘쳐났다. 공무원보다 훨씬 높은 보수를 보장받았고 기술직이라는 이유로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뛰어들던 때였다. 1960년에서 1970년까지가 양복업계의 최대 호황기였다. 군 단위, 읍 단위에도 양복점이 있었다고 하니 수요자가 그만큼 많았다고 할 수 있다. 취직, 결혼 등 집안 행사가 있으면 옷부터 맞춰 입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기성복이 출시되면서 옷을 맞추는 사람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수공업으로 옷을 만드는 터라 기성복과 가격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어 고전이 시작되었다. 1980면 대 들어서부터는 즐비했던 양복점도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가게를 열고 장사를 해도 인건비 벌기도 어렵게 되자 양복점을 했던 사람들은 세탁소나 옷 수선 전문점 등으로 전업을 했다. 김대표도 전업을 생각해 보았으나 하던 일을 그만두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힘들었지만 자식들 다 가르치고 결혼 시켰으니 뭐 손해 보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자리를 지키다 보니까 어느새 세월이 흘렀습니다.”
김대표는 요즘도 매일 아침 출근한다. 바느질을 하고 재단을 하고 옷을 완성하는 과정 그 자체가 삶이며 기쁨이다. 김대표는 나이 들어 눈이 침침해 예전만큼 일에 속도가 붙지는 않지만 앉아서 하는 일이고 특별한 노동이 요구되는 일이 아니라 힘에 부치지는 않는다. 현재 양복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은 거의가 나이가 많은 편이다. 특히 50세 이하는 기술을 배운 사람도 부족하고 현장에 남아 일을 하고 있는 사람도 없다. 기술자가 줄어드니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일감은 꾸준히 들어오는 편이다.
최근에는 기성복 가격이 많이 오르면서 가격경쟁력도 생겼고 몸에 잘 맞는 옷을 입으려는 고객이 늘면서 업계 사정도 점차 좋아지고 있다. 또한 기성복에 비해 옷감이 좋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원하는 고객이 많아져 맞춤옷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고 있다.
“꾸준히 일 해온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일흔이 되었지만 아침에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면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아직도 제가 일 할 수 있다는 것, 제 일터가 있어 매일 갈 곳이 있다는 것이 행복합니다. 앞으로 최소 10년은 일 할 생각입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요.”
일반적으로 한 업종에서 수십 년의 세월을 몸담으며 외길인생을 걷는 사람들을 우리는 흔히 ‘장인’이라고 부른다. 그들이 있기에 우리의 문화가 세계에 이목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특히 손 맵시가 좋은 우리나라에는 한복에서부터 시작해서 옻장, 전통음식 등 다양한 분야의 장인들이 존재한다. 김대표는 양복업계의 장인이라고 할 수 있다. 불황을 이겨내고 젊은 시절 배운 기술로 평생을 살아온 김대표는 유행에 뒤처지지 않고 좋은 옷을 만들기 위해 여전히 공부한다. 그의 손에서 완성되는 옷은 명품 수제 양복이다. 김대표에게 있어 양복 만드는 일은 삶 자체이고 인생이다.
양복업계에도 젊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배우고 실력 있고 경쟁력 있는 기술자가 배출되는 것이 김대표의 바람이다. 체형이 서구화되고 몸에 맞는 옷을 입고 싶은 욕구가 살아나면서 양복업계도 다시 호황이 되는 시절이 돌아올 수 있다고 믿는다며 가능한 한 그 시기가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며 미소 지었다.
김미용 리포터samgi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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