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은 누가 뭐라고 해도 단원의 고장이다. 단원이 젓니를 갈 무렵부터 부곡동에 살던 스승 강세황 집에 드나들며 그림을 배웠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최근엔 어딜 가나 단원 그림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안산이다. 그 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화가 단원. 하지만 익숙한 그의 그림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손바닥만한 그림을 보고 장편소설보다 긴 이야기를 상상하는 재미가 있는 단원의 그림. 단원미술관 지킴이를 자처하며 단원과 사랑에 빠진 장득준 전시 담당자에게 단원 그림이야기를 청해 들었다.
흥겨운 음악이 흐르는 ‘무동’
단원 김홍도를 대표하는 그림은 단연 풍속화다. 우리에게 익숙한 서당, 우물가, 씨름, 무동 등 조선시대 다양한 생활상을 담은 그림이 한 권의 책으로 엮어져 있다. 바로 풍속화 25점을 엮은 풍속화첩이다. 장득준 씨는 “풍속화첩 중에서도 특히 ‘무동’그림은 단원의 음악사랑을 말해주는 작품이다. 그는 이 그림에 무동의 흥겨운 몸짓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서 울렸던 장단까지 그림속에 그려넣었다”고 말한다. 스승 강세황이 지은 ‘단원기’에서 “(김홍도는)성품이 음악을 좋아하여 매번 꽃피고 달 밝은 저녁이면 때로 한두 곡을 연주하여 스스로 즐겼다”고 기록되어 있을 만큼 음악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그런 그가 삼현육각에 맞춰 춤을 추는 무동의 모습을 그림에 담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을 것이다. 단원은 무동의 몸짓으로 그 흥겨움을 표현하고도 부족했던지 악사들을 그릴 때 먹의 농담으로 리듬감을 표현했다. 낮은음의 북과 장고를 연주하는 악사들은 묽은 선으로 높은음의 악사들은 점점 짙은 선으로 표현해 낸 것이다.
또 하나 그림 속에 리듬을 심어두는 장치로 악사들의 모자를 이용했다. 장득준 씨는 “악사들이 쓴 모자를 자세히 보면 어떤 이의 모자 끝은 뾰족하고 어떤 이는 둥글다. 여기에 장고 구음을 넣어보면 ‘덩따따덩따덩’이다. 모자 모양을 똑같이 하지 않고 연주하는 음악장단을 표현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한다.
설명을 듣고 보니 어딘가 숨어있는 ‘PLAY'' 버튼만 누르면 당장이라도 삼현육각 장단이 들리면서 무동이 훨훨 춤을 출 것 같다.
씨름 한판이 끝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원이 ‘무동’속에 음악을 그려 넣었다면 흥미진진한 씨름판 그림 속에는 ‘시간’을 담았다. 경기가 시작되고 얼마나 흘렀을까?
장 씨는 “아마 이 씨름 경기가 꽤 치열한 경기였던가 보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은 승패가 나기 직전이지만 아마 시작한지는 15~20분 이상이 지났을 것이다. 단원 선생님은 이 씨름 승부가 판가름 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을 등장인물을 통해 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바로 그 인물이 좌측 상단에 부채로 입을 가린 선비다. 이 선비의 자세를 보면 오래 앉아 있어 발이 저린 상태라는 걸 대번에 알 수 있다. 찡그린 얼굴은 부채로 가리고 저린 다리를 주무르는 선비가 시간을 짐작하게 한다. 또 시간의 변화를 알 수 있는 것이 가운데 엿을 파는 소년의 얼굴이다. 씨름 결과에는 관심도 없이 경기장 밖 먼 산만 바라보는 소년은 어서 경기가 끝나 엿을 더 팔고 싶은 마음이다.
씨름판 경기는 상대편을 들배지기로 제압한 선수가 이제 곧 상대를 땅바닥에 내리치기 직전의 상황이다. 표정도 제각각이다. 표정만 봐도 누가 지금 이기는 선수를 응원하고 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을 정도다. 이경기는 옷차림으로 봐서 양반과 평민의 대결인데 발목에 행전을 안 한 평민이 승기를 잡았다. 구경꾼들의 표정에서 그들의 신분을 상상해 보는 것도 재밌다.
손 발 모양이 이상해... 단원은 왼손잡이?
단원의 풍속화 그림을 보다보면 어딘가 모르게 어색한 것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다. 바로 그림의 손모양이나 발모양이 반대로 그려진 것이다.
무동에서 해금 연주자가 해금을 잡고 있는 손이나 씨름 그림에서 왼쪽 아래 손을 뒤로 뻗은 구경꾼의 손 모양을 보면 손 모양이 뒤집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그랬을까? 천재 화가 김홍도가 유독 손이나 발을 반복적으로 잘못 그린 것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떤 연구가들은 작품을 크로키 형식으로 빠르게 그려나가다 보니 실수였을 것이라 말하기도 하고 혹은 당시 도화서의 작업 방식으로 봤을 때 함께 작업하던 다른 화원이 실수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명확한 해답이 되지 않는다. 단순한 실수로 보기에는 많은 그림에서 같은 실수가 반복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장득준 씨는 “제가 짐작하기로는 아마 김홍도 선생님이 왼손잡이가 아니었나 싶어요. 왼손 잡이들은 오른쪽 왼쪽 구분이 좀 헷갈리거든요”라며 자신의 경험을 들어가며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실수가 아니라 오히려 단원 선생의 재치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이런 실수를 알아챌 수 있는지 없는지 보기위해 일부러 잘못 그린 것이다’는 논리다.
과연 어떤 것이 정답일까? 단원에 대한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한 이유다. 단원의 그림을 보면서 잘못된 그림을 찾아보라. 그리고 당신은 어떤 이유가 타당해 보이는가?
친구와 함께 노적봉 둘레길을 걷다가, 혹은 가족들과 함께 노적봉 폭포에서 휴식을 즐기다가 조선이 낳은 천재화가 단원 김홍도의 그림세상으로 ‘마실’나가보자. 해학과 익살이 넘치는 풍속화의 빠른 붓놀림과 조선의 아름다움을 담은 산수화의 정성스런 붓 끝에서 화선 김홍도의 따뜻한 시선을 만나게 될 것이다.
하혜경 리포터 ha-nul21@hanmail.net
- 단원전시관 가는 길
조선의 천재화가 단원 김홍도의 이름을 건 단원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단원전시관이 앉은 자리는 옛날 성포동 포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누각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자리다. 단원이 한번 쯤 그의 스승과 함께 올라 그림을 그렸을 법한 자리에 단원전시관이 들어선 것도 큰 인연이다.
미술관은 차량 진입이 다소 번거롭다. 시내에서 바로 진입하는 도로가 없어 수인산업도로를 통해서 들어와야 한다. 하지만 안산시가 홈플러스와 협약을 체결해 4층 주차장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4층 주차장에서 미술관까지 구름다리로 이어졌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단원의 그림은 170여점. 그중 안산시는 진품 ‘사슴과 동자’ 1점과 풍속화첩을 비롯한 단원의 대표작 영인본 92점을 소장하고 있다. 단원미술관은 개관을 기념해 영인본 40점을 전시중이다.
- 단원 작품 더 재밌게 보려면 이 책을
전시관 관람으로 단원 그림에 맛들이기 시작했다면 내친김에 단원에 대해 더 공부해 보자. 단원 연구 서적들이 많지만 그 중 일반인들도 쉽고 재미있게 단원의 삶과 그림을 이해할 수 있게 쓴 오주석씨의 ‘단원 김홍도’다. 오주석은 단원 김홍도와 조선시대의 그림을 가장 잘 이해한 21세기의 미술사학자라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는 우리 미술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에서 강연을 펼치며 전통미술 대중화에 앞장섰지만 2005년 2월 49세의 나이에 혈액암과 백혈병을 얻어 스스로 곡기를 끊음으로써 생을 마친 비운의 인물이다. 그가 쓴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우리 그림 속에 노닐다’도 전통미술에 대한 시야를 넓혀줄 좋은 책이다.
하혜경 리포터 ha-nul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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