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당초 정해진 길은 없다. 인생 길은 밖이 아니라 안으로 나 있으니까. ‘삶의 기술’을 일찌감치 터득한 김재은양. “고집 세죠. 내 마음이 동하지 않는데 남이 시킨다고 절대 하지 않아요. 해야 할 이유, 목적을 찬찬히 고민하고 최종 결정은 내가 하죠.” 이런 진지한 고집스러움 덕분에 그는 일찌감치 진로를 결정했다. 꿈은 임상심리사.
미드 대사 따라하며 영어 공부
심리학에 애정을 쏟게 된 것은 중1 때부터 푹 빠진 미드 덕분이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영어에 관심이 많았어요. 우리말과 다른 영어 특유의 생동감 있는 억양에 많이 끌렸어요. 그러던 차에 미드를 만나게 됐지요. ‘문라이트’, ‘본즈’, ‘모던패밀리’ 당시 선보였던 미국 드라마를 줄기차게 봤어요.”
좋아하는 미드에 영어 공부를 접목시켰다. “등장인물의 억양, 톤, 제스처를 그대로 살려 대사를 모조리 따라했어요. 식구들한테 시끄럽다고 타박도 많이 받았어요(웃음). 미드에 꽂힌 뒤부터 드라마 대사를 통째로 외울 만큼 입에 영어를 달고 살았어요.”
영어 리스닝, 스피킹 실력이 쑥쑥 늘었고 무엇보다 오랫동안 외국에서 살았냐는 소리를 들을 만큼 발음이 매끄러워졌다. 좋아하는 영어를 잘하게 되니 신이 났다. 학교, 학원에서는 영어 문법과 독해 실력을 다지고 미드로 듣기, 말하기 감각을 유지하자 토플, 텝스 점수도 곧잘 나왔다. 게다가 교내 영어 말하기 대회, 토론대회를 비롯해 전국 규모의 영어경시대회에서도 꽤 많은 상을 탔다.
심리학교실 다니며 만난 ‘신세계’
“미드를 많이 보다보니 상담심리사, 놀이치료사, 임상심리사, 범죄 프로파일러 직업군이 자주 등장하더군요. 모두 ‘마음’을 움직이는 직업이라는 공통점이 있죠. 이때부터 심리학에 관심을 두게 되었어요.” 호기심이 동하자 진지하게 진로탐색에 나섰다.
중3 겨울방학 때는 1주일 과정의 서울대 심리학교실에 다녔다. “짧은 내 인생에서 ‘신세계’를 만난 기분이었어요. 프로이드 이론, 인지심리학 같은 심리학의 큰 줄기를 훑을 수 있었어요. 교수님들께 심리학의 세부 분야와 향후 진로에 대해 설명 들으면서 ‘내 길’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어렵게 찾은 길, 갈고 닦은 일 역시 김양의 몫. 고교에 입학한 뒤로 대학 전공 기초과목을 미리 배울 수 있는 미국 AP 심리학에 도전했다. 미드로 갈고 닦은 영어 실력이 밑거름이 되었다.
“혼자 책 보며 심리학 역사부터 시작해 발달심리, 인지심리, 뇌과학까지 다양한 분야를 접할 수 있었어요. 5학점 만점을 받을 만큼 재미있게 공부했지요.” 그는 심리학이 사회, 교육, 대중문화, 범죄 등 우리 사회 전 분야와 연결 고리를 갖는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다.
지난해 여름에는 국내 내로라하는 학자, 연구진이 참여하는 한국심리학과 학술대회에 학생 자격으로 참가하는 행운을 얻었다. 내친 김에 고2 겨울방학 때는 서울대 심리학 교실에 다시 한번 다녔다.
“기초 지식이 쌓이니까 강의가 훨씬 귀에 쏙쏙 들어왔어요. 교수님께 진로 관련 상담을 받으며 구체적인 인생 로드맵을 짤 수 있었지요.” 그러면서 김양은 심리학 관련 각종 기사를 공들여 모은 스크랩북을 보여준다. 이 분야 최고가 되고 싶다는 그의 뚜렷한 목표의식이 읽혀졌다.
최근에는 남양주 복지재단에서 게임 중독에 빠진 중학생 상담을 맡으며 조심스럽게 책에서 배운 이론을 임상에 접목시키는 중이다. “신뢰 관계가 중요하다는 걸 배워요. 난 학문으로서의 심리학 보다는 현장에 적용되는 임상심리에 더 끌리기 때문에 이런 또래 상담을 통해 많이 성장합니다.” 김양이 의젓하게 덧붙인다.
임상심리사 목표 향해 열공
미래를 향해 전력 질주해야 하는 고3. 후회 없이 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중3 때 용인외고 떨어진 경험이 ‘약’이 되네요. 모든 결과는 남 탓이 아니라 내 탓이니까요. 한번 실패를 경험해 보니 단단해진 면도 있고 여유도 생겨요. 요즘엔 틈나는 대로 교외 경시대회 응시하며 시험 적응력을 높여나가는 중이에요. 수능시험날 덜덜 떨면 안 되니까요.”
김양은 초등학교 시절 이후 줄곧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매일 정한 스케줄은 최대한 지키려고 애쓰고 모든 스트레스는 좋아하는 미드를 보며 풀고 있다.
“어릴 때는 하루에 문제집 1권씩 풀며 ‘양’ 위주의 공부를 했었는데 허점이 보이더군요. 그래서 과목별로 내게 맞는 최적의 공부법을 끊임없는 찾는 중입니다. 가령 암기과목은 큰소리로 소리 내 읽으며 귀, 눈, 입을 동시에 사용해야 효과가 크더군요. 수학은 ‘꾸준히’가 키포인트죠. 요즘엔 문학과 씨름 중입니다.” 수업 중 이해하지 않는 부분은 과목 선생님을 찾아가 100% 이해할 때까지 묻고 또 묻는다.
“지난 여름 심리학 학술대회에서 연구진들의 발표 모습을 보며 ‘지금은 객석에 앉아있지만 몇 년 후에는 꼭 저 자리에 서겠다.’ 다짐했어요. 그런 자극이 공부 긴장감을 늦추지 않게 만드는 버팀목입니다.” 김양의 얼굴에는 꿈을 향한 다부진 결의가 엿보였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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