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하신 분들의 선호도 1순위 작물이 블루베리입니다. 1kg에 4~5만원씩 팔렸기 때문에 몇 년 전부터 너도나도 심었어요. 공급이 많아지니 당연히 값은 떨어질 수밖에 없죠. 지금은 ‘초보 농부’들에게 블루베리 묘목 파는데 골몰하고 있습니다.” 윤세진(39세) 농업경제연구소 대표의 입에선 귀농에 얽힌 적나라한 사연들이 쏟아져 나온다.
농사 원가를 아십니까?
100세 시대. 귀농으로 인생 후반전을 열겠다는 사람들이 꽤 많다. 때문에 전국 각지의 귀농학교는 도시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경쟁률도 치열해 재수, 삼수 끝에 겨우 입학하는 사람, 입소문난 귀농학교만 골라 다니며 수년째 치밀하게 준비하는 ‘신중파’까지 다채롭다.
윤세진. 그는 국내에선 드문 농업회계강사다. 한해 농사에 드는 생산 원가와 수익을 일목요연하게 숫자로 뽑아주기 때문에 평생 농사만 지은 농부도, 귀농을 꿈꾸는 농부 후보생도 수시로 그에게 SOS를 보낸다.
“억대 농부가 속속 등장하니까 다들 솔깃해 합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수입만큼이나 지출도 많습니다. 순수익이 억대가 아닌데 사람들은 이 점은 간과하죠. 경기도 안성에 비닐하우스 다섯 동을 지어 수박을 재배하려면 자본금이 얼마나 필요할까요? 시설비, 인건비 모두 포함해 5억1천만원이 듭니다. 어느새 우리 농업은 많은 자본이 들어가는 하이테크 산업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농사를 숫자로 예시를 들어가며 조목조목 설명하는 윤세진 대표는 이력이 독특하다. 대학에서 전기전자과를 전공한 그는 2000년대 초반 벤처붐이 한창 불 무렵 1억원을 투자받아 유아 쇼핑몰 벤처사업가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하지만 1년 만에 빚만 지고 사업을 접었다. 그 후 IT 기술팀장, 영업사원, 기업 교육 컨설턴트 등 온갖 직업을 전전했다. “10년간 숱한 실패를 반복하면서 내 나름의 삶의 4원칙을 세웠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자, 남들보다 잘하는 걸 하자, 돈이 되는 직업을 갖자, 내 일을 하면서 남에게 고맙다는 소리를 듣자’였죠. 고민 끝에 찾은 직업이 재테크 전문 강사였습니다.”
경제, 경영, 금융을 독학으로 공부한 뒤 직장인 상대로 강의를 시작했다. ‘쓴 소리, 돌직구 날리는 솔직한 재테크 강사’라는 소문이 나면서 케이블방송 전문패널로 고정 출연할 만큼 인지도를 쌓았다. 우연히 재능기부 차 농촌에 재테크 강의를 나갔다가 농업회계라는 신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재무설계사에서 농업회계강사로 변신
-왜 농업회계가 관심 갖게 되었나요?
“충북 덕산에서 수박 농사를 짓는 ‘억대 농부들’에게 강의를 나갔는데 하필 그 해에 비가 많이 와 집집마다 농사를 망쳤어요. 다들 손해액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며 내게 금액을 뽑아달라고 하더군요. 충격을 받았죠. 제조업, 유통업, 서비스업은 생산원가, 순익이 정확히 수치로 나오잖아요. 그런데 유독 농업만 원가의 개념 조차 농부들이 갖고 있지를 않더군요. 작물의 중류, 땅 규모와 임대 유무, 농기구 보유에 따라 산정 방식이 달라지니까 엄두를 내지 못했던 거죠. 그때부터 그분들과 머리를 싸매고 표준회계방식으로 원가 산출 작업에 매달려 6개월 만에 매트릭스 표를 완성했습니다.”
-농업의 틈새를 공략한 셈이네요.
“덕산 농부들과 고생하며 작업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품목별 원가 분석을 4년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죠. 지금은 웬만한 작물은 30분 만에 원가를 뽑아냅니다. 그 뒤 농업회계 교재를 개발해 전국의 농업마이스터대학에 강의를 다녔죠. 그동안 농사 기술 위주의 교육받았던 농업인들이 점점 회계, 경영 등에도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평생 농사만 짓던 분들이 원가를 뽑게 되면서 ‘이 가격 아래로 팔면 밑지는 거구나’ 셈법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사실 농산물이 제 값을 받지 못하는 건 체계적인 원가 분석이 안 된 탓도 큽니다.”
유능한 귀농가이드가 목표
-귀농교육과 컨설팅까지 활동 영역이 넓어지고 있습니다.
“2011년 귀농인구가 1만 가구를 넘었고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리스크가 크지만 잘만 찾아보면 농촌엔 틈새시장이 꽤 있습니다. 하지만 농업 관련 자료는 인터넷에서도 얻기 어렵고 정부 통계 자료에는 허수가 많습니다. 그래서 난 있는 그대로의 농촌 현실, 귀농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다양하게 들려주려고 애씁니다. 사실 시골의 정서는 귀농인이 또 다른 경쟁자가 되기 때문에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귀농 준비생들에게 무조건 농사 지을 생각부터 하지 말고 농산물 유통이나 방치된 농촌체험 마을 활성화 같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사업 모델을 찾아보라고 조언합니다.”
-앞으로 계획이 궁금합니다.
“지난 6년간 전국의 농촌을 돌며 강의하면서 농사의 고수, 성공한 귀농인과 인맥을 쌓았고 사례 연구도 다양하게 했습니다. 얼마 전부터 회계사, 세무사, 노무사, 변리사와 팀을 꾸려 농업 회계 분야의 전문성을 높여나가는 중입니다. 이런 유무형의 자산을 총망라해 내년쯤 귀농학교를 오픈하려 합니다. 위기와 기회 두 얼굴을 가진 농촌에서 든든한 귀농 가이드가 되고 싶습니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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