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옷 입은 군중 눈사태처럼 비석거리 덮어
3.1운동 기념비·기념식도 없는 쓸쓸한 현실
꽃샘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했던 지난 3월 1일. 94년 전 수암면 비석거리(현재 안산동)에서 펼쳐진 3.1 만세운동을 기념하는 ‘3.1 만세길 탐사’가 열렸다. 안산지역사연구모임 회원들이 해마다 진행해 오던 이 행사에 올해부터 사회적기업 자바르떼와 안산내일포럼이 힘을 보탰고 만세운동 주동자였던 홍순칠선생의 손녀 홍혜숙님이 참석해 그 의미를 더했다. 비록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지는 않지만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수암면 사무소로 달려갔을 선조들을 생각하며 걷는 길. 그러나 길에서 만난 우리의 현실은 뜨거운 열정으로 목이 터져라 만세를 외쳤을 그들에게 부끄럽고 또 부끄럽기만 하다. 자랑스러움과 부끄러움이 교차한 3.1 만세길 탐사행사에 동행 취재했다.
원후마을에서 출발한 만세길 탐사
탐사 1차 집결지는 안산 중앙역. 중앙역에서 3-1번과 314번 시내버스에 나눠 탄 참가자들은 원후마을에서 2차 집결했다.
원후마을은 3월 30일 만세 운동의 집결지인 수암면 사무소 초입에 위치한 동네다. 수암면 장날을 기해 인근지역 18개리에서 모여든 2000여명의 군중이 떨리는 마음과 바싹 마른 입을 이 샘물로 축이고 지나갔을 마을이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수암면 인구 8천명 남짓이니 어린이와 노인 여성을 제외하면 활동하는 주민이 대부분 비석거리 시위에 참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진각 (전 안산향토사연구소 소장)교수는 “수암면 시위는 주변지역에 비해 규모가 아주 컸다. 일본판결문에도 ‘마치 눈사태가 일어난 것처럼’으로 묘사될 만큼 하얀 옷을 입은 군중이 비석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대규모 시위가 조직된 것은 홍순칠, 유익수 선생 등 지역 유지들의 역할이 컸다.
홍순칠 선생의 손녀 홍혜숙님은 “할아버지께서 만세 전날 소작농들을 불러 놓고 ‘내일 수암면 장날 만세운동에 꼭 참석하라’고 당부한 후 ‘나라가 독립되면 농사짓는 땅은 나눠줄 것’이라고 약속했다고 전해 들었다”며 “할아버지는 모든 것을 내어놓고 독립을 위해 싸웠던 분”이라고 말했다.
벌말 갯다리 수암장터 거쳐 비석거리로
원후마을을 지나 벌말과 갯다리를 지나는 동안 길은 고속도로로 뚝뚝 끊어지고 빈터에는 육중한 크기의 철골 공장이 들어서 시골마을의 고즈넉함은 찾아 볼 수 없다. 안산이 교통 요충지인 만큼 원후마을과 수암장터 사이에 서해안 고속도로와 KTX, 수인산업도로가 가로지르고 있어 도로를 건너기 위해 굴다리와 육교를 오르내리며 탐사길이 이어진다.
당시 만세운동 시위대의 목적지는 수암 경찰서 주재소와 수암면 사무소, 안산보통학교(현재 안산초등학교)와 공자묘(안산향교)였다. 그 길목에 있는 가장 넓은 거리가 바로 비석거리였던 것. 비석거리는 안산현을 다녀간 관리들의 공덕비를 세워 둔 곳인데 개발로 한 때 이 비석들은 수난을 겪어야 했다. 비석이 모두 철거된 후 버려지자 새마을 운동 때 마을 표지석으로 운명이 뒤바뀌기도 했다. 정진각 교수는 이와 얽힌 슬픈 비화를 전한다. “공덕비를 가져다 마을 표지석을 사용했던 마을에 흉사가 끊이지 않자 다시 비석을 제자리에 갖다 두었더니 흉사가 그쳤다는 이야기가 이 인근 마을에 전해져 온다”는 것이다. 현재 비석거리에는 영험함으로 수난을 피한 공덕비 다섯 기만 외롭게 남아있다.
친일교육 기념하는 안산초 100주년 기념비
탐사대원이 다음으로 찾은 곳은 안산초등학교. 이곳에서 탐사 대원들은 비참한 현실에 직면해야 했다. 바로 지난해 세워진 안산초등학교 100주년 기념비석이다. 안산공립보통학교는 대한제국 말기인 지역주민들의 힘으로 1899년 안산군공립소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한 뒤 1906년 공립안산군보통학교로 개명했으니 기념비가 세워진 지난 2012년은 개교한지 113년이 되는 해였다. 그러나 안산초등학교 동문회측은 안산군보통학교에 1912년 일본인 교장이 부임하며 개교한 것을 공식적인 개교일로 삼아 100주년 기념탑을 제작한 것이다.
정진각 교수는 “지역사에 대한 무지가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였다. 2012년이 개교 100주년이라면 학교를 세우기 위해 노력한 지역민들의 봉사와 희생은 철저히 무시되고 일본 총독부 체제에 편입한 것만을 기념하는 것”이라며 “수암면 3.1운동의 중심지였던 이곳에 총독부 친일교육을 기념하는 비석이 세워진 것은 씁쓸함을 넘어 비통함을 느낀다”며 역사 바로 세우기를 주문했다.
3.1만세길 탐사는 안산 관아터에 복원된 객사에서 마무리됐다. 탐사 시민을 대표해 신대광 교사(원일중 역사교사)는 “대규모 3.1시위가 일어났던 우리 안산지역은 지금은 기념비는 물론 기념식조차 없다”며 “일제시대 왜곡된 지역명인 ‘수암봉’과 ‘풍도’등 지명을 바로잡고 제대로 된 독립운동 기념사업을 진행해 나갈 것”을 제안하는 제안서를 낭독했다. 안산의 뜨거웠던 역사와 차가운 현실을 목격한 탐사객들은 “안산 역사 바로 세우기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하혜경 리포터 ha-nul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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