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여행기

백제 중흥과 멸망의 역사를 간직한 곳, 부여

지역내일 2013-03-04

끝날 것 같지 않던 한파도 어느덧 가시고 제법 봄기운이 조금씩 느껴지는 요즘이다. 움츠렸던 겨울을 털어내고 새 봄을 맞이하듯, 한 학년을 마무리하고 새 학년을 기다리는 봄방학이기도 하다.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재충전도 할 겸 아이들과 부여 여행을 다녀왔다. 봄방학만큼이나 짧은 1박 2일의 여정이었지만 유적지도 둘러보고, 아이들과 걷기 좋은 산성길 하이킹도 하고, 물놀이까지 한 알찬 시간이었다.


 
백제의 마지막 수도, 사비 부여
부여(옛 이름 사비)는 백제 26대 왕인 성왕16년(538), 보다 강성한 왕국 건설의 웅지를 가지고 공주(옛 이름 웅진)에서 천도한 곳이다. 그 때문인지 부여 시내 중심 로터리에는 커다란 성왕 동상이 세워져 있다. 부여는 공주와 함께 백제문화의 흔적들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으로, 왕궁지와 불교유적들, 왕릉유적, 그리고 부소산과 궁남지 등 발전했던 백제문화가 밀집되어 있다.
부여로 천도한 백제는 국호를 남부여로 고치고, 호남평야 지대를 경제기반으로 하여 진취적인 대외 활동을 벌였다. 백제역사상 부여시대(538~660년) 123년은 백제문화의 최전성기를 구가하였을 뿐 아니라 삼국 문화 중 최고의 예술혼을 피웠다. 그러나 부여는 완성된 백제의 문화를 보여주었지만, 한편으로는 백제 패망의 아픔도 고스란히 전해주었다. 이런 역사를 의식해서인지, 아니면 눈발 흩날리는 흐린 날씨 때문이었는지 부여의 첫 느낌은 무척 조용하고 차분한 도시였다. 유적지 어느 곳을 가도, 시내와 도로에서도, 백제의 도시임에도 주인인 백제인들은 소리 없이 뒤편에 서 있고 이방인들만 보이는 느낌. 현재는 역사의 반추인걸까. 


천오백 년 전 발자취를 따라가다
부여 관광의 시작점으로 좋은 부소산성은 백마강 남쪽 부소산을 감싸고 쌓은 산성으로 사비시대의 도성(都城)이었다. 이곳에는 산꼭대기를 중심으로 부소산성터·군창지·영일대 터·송월대 터 등 백제 때의 유적이 남아 있고, 조선 후기에 건립한 사비루·영일루·반월루·백화정 등도 만나볼 수 있다.
산성길을 따라 걷다보면 그 끝에 만나게 되는 낙화암과 백화정. 백제 멸망 당시 삼천궁녀가 몸을 던졌다는 전설이 서린 곳이다. 낙화암에서 바라본 백마강은 그 깊은 물 속 만큼이나 깊은 한이 서린 듯 푸르렀다. ‘삼천’ 궁녀라는 숫자는 허구일 수도 있으나, 그들 마음에 담긴 나라 잃은 슬픔은 진정이었을 것이다. 나라의 마지막 앞에서 눈물 흘리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수많은 백제인들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 선했다.
부소산은 높이 106미터로, 산이라기보다는 언덕이라고 부르는 것이 나을 정도로 낮은 산이다. 아이들 손을 잡고 천천히 산책하듯 오르기에 딱 좋다. 매표소에서 출발해 가장 높은 곳인 사자루에 올랐다가 낙화암과 고란사까지 둘러보는데 2시간가량 걸렸다.
부여에 오면서 꼭 들러보고 싶은 곳 중 하나가 정림사지 5층 석탑(국보 제9호)이었다. 교과서에서 배우기는 했지만 그 무수한 세월을 버텨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신기했고,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금가고 그을리고 손상된 부분도 보였지만, 1400년이란 시간 동안 한 자리를 묵묵히 지켜온 석탑 앞에 서자 새삼 그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듯 했다. 이제 곧 초등학교 2학년이 되는 아이에게 1400년 이란 시간은 그 무게를 상상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1400년이나 된 아주 오랜 석탑이 한 자리를 여전히 지키고 있음이 무척 놀라운 듯 석탑 주위를 오랫동안 맴돌았다.
석탑과 함께 정림사지 터에 자리하고 있는 정림사지박물관은 정림사지 발굴 모습과 출토 유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백제 사비시대의 불교문화를 엿볼 수 있는 백제불교문화관도 갖추고 있다. 또 정림사를 1/12로 축소하여 복원하였고, 백제의 앞선 건축 기술을 직접 느껴볼 수 있는 생생한 현장 모습도 꾸며놓았다. 연꽃무늬 기와를 만드는 과정, 석탑을 쌓아 올리는 과정, 불상을 만드는 과정 등을 실제처럼 만들어 놓아서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도 재미있게 둘러볼 수 있다.
국보 제287호인 백제금동대향로를 만날 수 있는 국립부여박물관 또한 놓칠 수 없는 곳이다. 직접 본 금동대향로는 조명덕분인지, 본연의 빛 때문인지 무척 반짝거렸고 날개를 활짝 편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봉황의 자태가 무척 우아했다. 또한 향로 본체에는 다양한 사람과 동물들의 모습이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다. 그 옛날 이토록 정교한 향로를 제작할 수 있었던 백제인들의 정교한 손기술에 감탄할 뿐이다.
본관에서 금동대향로를 눈으로 보았다면, 어린이박물관에서는 금동대향로와 백제문화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금동대향로에 등장하는 동물 모형에 올라타 보기도 하고, 백제인들의 의복을 입어볼 수도 있었다. 여기서 부끄러운 에피소드 하나. 보통 한복 입을 때 치마, 저고리 순서로 입기에 아이에게 치마를 먼저 입혔다. 그런데 거울 옆에 붙어 있는 사진을 유심히 바라보던 아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하는 말, “엄마, 저고리를 먼저 입는 거 같은데요?” 백제시대에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저고리를 입고, 그 위에 치마를 입었다고 한다. 어쨌거나 힘들게 의복과 신발, 관모까지 갖춰 입고 멋지게 사진 한 장 찰칵!


백제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백제문화단지
부여 시가지에서 사비시대의 백제를 느낄 수 있었다면, 백제문화단지는 백제 전체의 역사를 한 눈에 실감할 수 있도록 재현해놓은 곳이다. 사비성과 백제역사문화관, 한국전통문화학교 외에도 콘도, 테마파크 등을 포함하면 100만 평 규모에 이른다고 한다. 쌀쌀한 날씨에 아이들과 함께 이 넓은 곳을 어찌 둘러보나 싶어 백제역사문화관만 보고 갈까 했지만, 아이들은 이미 저 넓은 문화단지 안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모처럼 탁 트인 광장을 만나니 아이들의 숨죽이고 있던 달리기 본능이 되살아났나 보다.
단지 내의 사비성에는 사비궁(백제의 왕궁), 능사(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한 사찰), 고분공원(사비 시대의 대표적 고분 형태), 위례성(백제 개국초기의 도읍), 생활문화마을(사비 시대의 계층별 주거유형을 보여주는 곳)이 꾸며져 있다. 재현해놓은 것들이라 인공미가 나긴 하지만 실제 모습과 규모를 어느 정도는 가늠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예전에 백제한성박물관에서 모형으로 보았던 위례성의 실제모습이 아이들에게 인기였다. 실제로 성곽 위로 올라가 볼 수 있도록 해 놓았기 때문에 성을 한 바퀴 빙 돌아보면서 당시 백제인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조잘대기도 하였다. 또 단지 내 곳곳에 북치기, 투호 던지기, 지게 지기, 절구 찧기 같이 아이들이 소소하게 체험해 볼만한 것들이 놓여있어서 중간 중간 쉬어가기에 좋았다.
단지 초입에 있는 백제역사문화관은 백제를 좀 더 자세하고 세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각 전시실은 시대, 생활과 문화, 종교와 정신, 삼국문화와의 비교 등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주제마다 중요 사건을 재현하고 설명하는 영상물들이 준비되어 있어 아이들의 이해를 돕기도 했다. 


유적지와 박물관을 돌면서 백제를 느끼기에는 아쉬운 짧은 일정. 하지만 역사 이야기만 하기엔 아직 어린 아이들을 위해 반나절 동안 시간을 내 숙소 내에 있는 아쿠아가든에서 물놀이를 즐겼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생긴 지 얼마 안 된 곳이라 시설이 깨끗하고 제법 속도감 있는 슬라이드와 온천탕, 파도풀도 갖추고 있어 가족 단위로 찾기 괜찮은 곳이다.
부여에서 미처 들리지 못한 궁남지와 능산리 고분군, 그리고 부여한옥생활체험관까지…. 하루 더 묶었으면 하는 여운이 남았다. 궁남지 연꽃축제가 열릴 때 다시 찾자는 다짐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서울로 발걸음을 돌렸다.


박혜준 리포터 jennap@naver.com


<여행Tip>
*사이버 사비백제人(www.baekjein.kr/main/index.html) 사이트에서 회원가입 후 ‘사비백제인증’을 인쇄해가면 부소산성, 정림사지박물관, 만수산자연휴양림 등 입장료가 무료다.
*롯데부여리조트를 이용한다면
-리조트에서 숙박하면 백제문화단지 입장료 50% 할인
-롯데호텔 사이트에서 프리빌리지 회원가입 후 임시카드 출력해가면 리조트 내 아쿠아 가든 & 사우나 50%, 레스토랑 본디마슬 10% 할인
*부여 시가지에서 식사를 하려면
: 삼정부여유스호스텔과 부소산성 사이에 조성된 ‘굿뜨래 음식특화거리’. 돌쌈밥, 막국수, 갈비, 곰탕, 심지어 카페베네의 커피까지 삼십 여 곳의 음식점이 모여 있어서 입맛에 따라 메뉴를 선택하기에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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