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골목길에도 커피숍이 생길 정도로 우리 생활에 커피 문화가 깊숙이 자리 잡으면서 커피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바리스타’는 젊은이들이나 주부들에게 선망의 직업이 됐다. 최근에는 이런 바리스타가 실버 세대에서도 인기 직종으로 떠오르고 있다. 바리스타 전문 양성학원에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학생으로 등록하는 것도 낯선 풍경이 아니고, 지역의 복지관이나 지자체 관련 시설에서 지원하는 실버 바리스타 양성과정은 경쟁률이 최대 몇 십대 일에 이를 만큼 신청자가 몰리고 있다. 노인들에게 바리스타가 인기 있는 이유는 뭘까? 실버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의왕시사랑채노인복지관을 찾아 알아보았다.
실버 바리스타, 노인들에게 인기 직종으로 부상하다
“아메리카노 두 잔이랑 카페라떼 한잔 주세요.”
주문이 나자 앞치마를 두른 할아버지 바리스타는 재빨리 원두를 갈아 커피 머신 앞에서 커피를 내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치익’ 소리와 함께 우유거품 만드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옆에 있던 할머니 바리스타는 주문고객에게 잔돈을 내어주며 부지런히 컵과 쟁반을 준비한다.
지난주, 의왕시사랑채노인복지관 2층의 ‘실버카페, 인연(因緣)’을 찾았을 때 본 풍경이다. 실버 바리스타는 처음 보는 터라 낯설 줄 알았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 능숙하게 커피를 내리는 모습에서 노인이라는 생각을 특별히 가질 수 없었다.
이곳에는 일하는 실버 바리스타 오덕운(70) 할아버지는 “처음에는 커피 만드는 것이 어렵고, 커피 머신 사용도 능숙하지 못했다”며 “교육을 통해 기술을 익히고, 일 년 정도 꾸준히 하다 보니 숙달돼서 지금은 큰 어려움이 없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내가 만든 커피를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들을 보면 기분도 좋고 일할 의욕도 더욱 생긴다”고 덧붙였다.
실버 바리스타 차영옥(76) 할머니는 “이 나이에 내 손으로 용돈을 벌 수 있다는 게 가장 좋고, 큰 힘이 들지 않아 운동 삼아 하니깐 건강에도 좋다”며 “전문직이라는 자부심과 매일 아침 나갈 곳이 있다는 것도 보람 있다”고 말했다.
사랑채노인복지관의 강수진 팀장은 “노인들에게 일자리 창출을 통한 소득을 마련해 주기 위해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지난해 3월부터 실버카페 사업을 시작했다”며 “실버 바리스타가 전문직으로 각광 받으면서 이 일을 하고 싶어 하는 노인들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현재 이곳에서 일하는 실버 바리스타는 8명. 남녀의 성비도 3:5로 어느 정도 균형을 맞췄다. 70대 이상이 대부분이며, 남녀 1명씩으로 이뤄진 2인 1조가 오전 오후로 나눠 하루 3~4시간씩 주3일 근무한다. 그리고 받는 월급은 20만원 정도다.
실버카페, 지역 주민들과 정서 교류의 장으로
실버카페의 큰 장점 중 하나는 바로 가격. 커피 값이 시중 카페들보다 많이 저렴하다. 강 팀장은 “지자체의 지원과 복지관의 내부 시설을 이용하다보니 매장 운영비가 상당수 줄어 저렴한 커피 값이 가능하다”고 했다.
또한 실버카페는 지역주민들이 즐겨 찾는 지역의 명소로도 부상 중이다. 사랑채복지관은 지난해 실버카페가 생기고부터 새로운 변화가 생겼다. 기존에는 대부분 노인들만 출입하던 이곳이 실버카페가 생기고부터는 저렴하고 맛있다는 입소문에 아이들을 동반한 엄마들이나 모임이 잦은 중년주부들, 커피를 즐기는 젊은이 등 지역주민들이 편하게 찾는 곳으로 바뀌었다고. 그 결과 복지관 건물이 다양한 사람들도 북적되면서 노인들도 에너지를 얻는 등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좋아졌다고 한다.
카페에서 만난 이정옥(의왕 내손동. 주부)씨는 “매일 아침 등산가는 길에 이곳에 들려 꼭 커피를 마신다”며 “커피 값도 싸고, 맛도 좋고, 실버 바리스타 분들도 친절하셔서 단골이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용자인 김유정(의왕 내손동. 학생)씨는 “실버 바리스타 분들을 보면 많은 연세에도 자기 직업을 찾아 일하는 모습이 존경스럽다”며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할 때 나도 이분들처럼 열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다”고 밝혔다.
쉬면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기증받은 책들도 전시돼 있고, 와이파이가 가능해 무선 인터넷도 즐길 수 있다. 거기다 이곳은 올 하반기에 ‘실버 DJ''를 채용, 추억의 옛 노래나 신청곡과 사연을 받아 들려주는 뮤직 박스도 열 계획이다. ‘실버 DJ’는 유급이 아닌 순수한 자원봉사로 운영할 예정이다.
실버 세대들이 실버 바리스타와 같은 전문 직종들에 많이 도전해 인생의 황혼기를 일하며 즐기는 건강한 시간들로 채우길 응원해 본다.
이재윤 리포터 kate2575@naver.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