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다양화·고교 선택제 3년│일반고 진학 교사 50명에게 묻다] “선택권이라 쓰고, 서열화로 읽는다”
지역내일
2013-04-08
(수정 2013-04-08 오후 1:35:28)
"상위권 학생 빼앗기고, 손발 묶여" … 선발형 학교, 상위권 학생 독식
자율형 사립고로 대표되는 고교 다양화 정책과 고교 선택제가 본격 시행된 이후 서울 지역 일반고에 입학하는 성적 우수 학생은 감소하고, 대입 진학 실적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내일신문 자매지 미즈내일이 서울 지역 일반고 진학 교사 50명을 대상으로 한 심층 설문 조사 결과다. 특목고와 자사고 등 선발 효과를 누리는 학교들의 상위권 학생 독식, 입시 위주 교육과정 운영에 따른 고교 서열화가 원인으로 꼽혔다.
◆우수학생 줄고, 성적 양극화 심화 = 이번 설문 조사에서 '고교 다양화 정책과 고교 선택제가 일반고 입학생 성적 분포에 미친 영향'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 50명 중 31명이 우수 학생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입학생 성적 분포의 불균형과 양극화'를 꼽은 응답자도 17명이었다.
서울 강남구의 한 자사고 교사는 "선발형 학교들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면서 최상위권은 물론 허리에 해당하는 중위권 학생들까지 대거 빠져나가는 게 현실"이라고 전한다. 이들 학교 진학에 실패한 학생들과 취업을 생각해 특성화고에 지원했다 떨어진 학생들이 한데 모이는 곳이 결국 일반고인 셈이다.
서울 송파구의 A고 교사는 "중학교 성적 상위 0.1% 학생과 99% 학생이 한 교실에서 수업하는 형편"이라고 토로했다.
입학생의 성적 격차는 대학 진학률로 이어졌다. 이들 정책이 '일반고 대입 진학률에 미친 영향'을 묻는 질문에 80%에 가까운 39명이 '진학 실적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기타'를 꼽은 응답자들은 대부분 "전체 진학률에는 큰 차이가 없지만, 상위권 대학 진학률은 감소했다"고 말했다.
◆응답자 80%, "진학 실적 감소" = 입학생 성적 분포의 불균형과 양극화는 일반고의 진학 지도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응답자 50명 중 15명이 '학생 성적 분포에 따라 대학 진학 지도가 다양하고 복잡해졌다'고 말했다. 14명이 꼽은 '수준별 수업에 따른 학생 지도'도 문제로 지적됐다. 응답자 9명이 선택한 'A/B형으로 나뉜 2014 수능 대비' 역시 학생 성적대가 다양한 일반고에는 더 큰 부담이었다.
기타 의견으로는 '수능 성적 하락으로 정시에는 상위권 대학 합격이 어려워 오직 수시에서 합격시켜야 하는 부담이 커졌다' '학습 분위기가 악화되고, 진학 지도에 관심 없는 학생이 많다' '상위권 학생은 적고, 하위권 학생은 많아 대입에 대한 동기부여가 어렵다' 등이 있었다.
일반고 교사들이 이처럼 진학 지도를 어렵게 느끼는 데는 복잡한 입시 제도가 있다. 서울 강남구의 B고 교사는 "일반고에서 자사고로 전환한 뒤 학생들의 절반 이상이 이른바 'SKY' 대학을 목표로 한다"며 "합격 사례도 그만큼 많아 특정 대학은 학교 자료만으로도 배치표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진학 노하우가 누적된다"고 설명한다.
반면 "최상위권부터 최하위권까지 포진한 일반고는 전국 모든 대학의 진학판을 읽어야 하는데, 교사로서는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한다. 진학 지도 경험과 자료가 누적되지 않으니 실패할 확률이 높고, 그러다 보면 학생들이 학교를 더 불신한다는 얘기다.
이들 정책의 찬반을 물은 결과는 '반대'가 우세했다. 응답자의 76%인 38명이 '반대'한다고 밝힌 반면, 8%인 4명만이 '찬성'한다고 답했다. 찬성과 반대를 모두 택한 응답자 6명은 이들 정책의 장단점을 함께 본 것으로 파악된다.
◆"고교 서열화 고착돼" 반대 우세 = 복수 응답을 포함, 반대 이유로 가장 많이 꼽힌 것은 '특목고, 자사고 등 선발형 학교의 상위권 학생 독식'(21명), '입시 위주 교육과정 운영으로 고교 서열화 조장'(11명) 순으로 이들 응답이 3분의 2를 넘었다.
실제 서울의 한 자사고 교사는 "교과 필수 이수 단위가 116단위로 묶인 일반고와 달리 자사고는 교육청 예산 지원을 받지 않는 대신, 필수 이수 단위(최소 58단위)를 제외하면 교육과정을 자유롭게 짤 수 있다"며 "주요 과목 수업을 늘리거나, 입시와 관계없는 과목은 최대한 축소하는 등 진학에 유리한 쪽으로 편성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교사는 이어 "고교 선택제 역시 선택권 보장의 측면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실제로는 선호 학교와 비선호 학교의 격차가 심해 대학 못지않게 고교 서열화가 고착되고, 이 서열은 지역에서 최소 10년 이상 유지되는 게 보통"이라고 지적했다. 이밖에 '수월성 교육 강화에 따른 교육의 공공재 목표 상실'과 '교육의 빈부 격차 초래'를 꼽은 응답자도 각각 6명이었다. 반대 입장을 밝힌 한 교사는 "학생 집단이 다양성을 갖춘 집단에서 동질의 집단으로 변하는 경향이 생기면서 학생들이 나와 다른 남과 함께 생활하는 방법을 배울 기회를 잃는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찬성한다고 답한 응답자들은 이들 정책의 '평준화 한계를 보완하는 특화된 수월성 교육 가능'(5명), '학생 선택권 보장으로 애교심과 소속감이 강함'(3명), '선호 학교로 평가받기 위한 학교와 교사의 노력'(2명) 등을 긍정적으로 봤다.
기타 의견을 밝힌 응답자 2명은 '정보 공시제 자료가 정확하지 않아 학부모가 선택하는 고교에 대한 정보가 미흡하다' '장단점이 있는 정책이어서 찬반 이분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에 보완하고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설문 참여 교사 소속 학교
강남구 10개, 강동구 6개, 강북구 2개, 강서구 3개, 관악구 2개, 금천구 2개, 노원구 6개, 동대문구 1개, 동작구 1개, 서대문구 1개, 서초구 1개, 성북구 2개, 송파구 5개, 양천구 3개, 은평구 1개, 종로구 1개, 중랑구 3개 총 50개
정애선 기자 as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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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형 사립고로 대표되는 고교 다양화 정책과 고교 선택제가 본격 시행된 이후 서울 지역 일반고에 입학하는 성적 우수 학생은 감소하고, 대입 진학 실적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내일신문 자매지 미즈내일이 서울 지역 일반고 진학 교사 50명을 대상으로 한 심층 설문 조사 결과다. 특목고와 자사고 등 선발 효과를 누리는 학교들의 상위권 학생 독식, 입시 위주 교육과정 운영에 따른 고교 서열화가 원인으로 꼽혔다.
◆우수학생 줄고, 성적 양극화 심화 = 이번 설문 조사에서 '고교 다양화 정책과 고교 선택제가 일반고 입학생 성적 분포에 미친 영향'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 50명 중 31명이 우수 학생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입학생 성적 분포의 불균형과 양극화'를 꼽은 응답자도 17명이었다.
서울 강남구의 한 자사고 교사는 "선발형 학교들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면서 최상위권은 물론 허리에 해당하는 중위권 학생들까지 대거 빠져나가는 게 현실"이라고 전한다. 이들 학교 진학에 실패한 학생들과 취업을 생각해 특성화고에 지원했다 떨어진 학생들이 한데 모이는 곳이 결국 일반고인 셈이다.
서울 송파구의 A고 교사는 "중학교 성적 상위 0.1% 학생과 99% 학생이 한 교실에서 수업하는 형편"이라고 토로했다.
입학생의 성적 격차는 대학 진학률로 이어졌다. 이들 정책이 '일반고 대입 진학률에 미친 영향'을 묻는 질문에 80%에 가까운 39명이 '진학 실적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기타'를 꼽은 응답자들은 대부분 "전체 진학률에는 큰 차이가 없지만, 상위권 대학 진학률은 감소했다"고 말했다.
◆응답자 80%, "진학 실적 감소" = 입학생 성적 분포의 불균형과 양극화는 일반고의 진학 지도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응답자 50명 중 15명이 '학생 성적 분포에 따라 대학 진학 지도가 다양하고 복잡해졌다'고 말했다. 14명이 꼽은 '수준별 수업에 따른 학생 지도'도 문제로 지적됐다. 응답자 9명이 선택한 'A/B형으로 나뉜 2014 수능 대비' 역시 학생 성적대가 다양한 일반고에는 더 큰 부담이었다.
기타 의견으로는 '수능 성적 하락으로 정시에는 상위권 대학 합격이 어려워 오직 수시에서 합격시켜야 하는 부담이 커졌다' '학습 분위기가 악화되고, 진학 지도에 관심 없는 학생이 많다' '상위권 학생은 적고, 하위권 학생은 많아 대입에 대한 동기부여가 어렵다' 등이 있었다.
일반고 교사들이 이처럼 진학 지도를 어렵게 느끼는 데는 복잡한 입시 제도가 있다. 서울 강남구의 B고 교사는 "일반고에서 자사고로 전환한 뒤 학생들의 절반 이상이 이른바 'SKY' 대학을 목표로 한다"며 "합격 사례도 그만큼 많아 특정 대학은 학교 자료만으로도 배치표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진학 노하우가 누적된다"고 설명한다.
반면 "최상위권부터 최하위권까지 포진한 일반고는 전국 모든 대학의 진학판을 읽어야 하는데, 교사로서는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한다. 진학 지도 경험과 자료가 누적되지 않으니 실패할 확률이 높고, 그러다 보면 학생들이 학교를 더 불신한다는 얘기다.
이들 정책의 찬반을 물은 결과는 '반대'가 우세했다. 응답자의 76%인 38명이 '반대'한다고 밝힌 반면, 8%인 4명만이 '찬성'한다고 답했다. 찬성과 반대를 모두 택한 응답자 6명은 이들 정책의 장단점을 함께 본 것으로 파악된다.
◆"고교 서열화 고착돼" 반대 우세 = 복수 응답을 포함, 반대 이유로 가장 많이 꼽힌 것은 '특목고, 자사고 등 선발형 학교의 상위권 학생 독식'(21명), '입시 위주 교육과정 운영으로 고교 서열화 조장'(11명) 순으로 이들 응답이 3분의 2를 넘었다.
실제 서울의 한 자사고 교사는 "교과 필수 이수 단위가 116단위로 묶인 일반고와 달리 자사고는 교육청 예산 지원을 받지 않는 대신, 필수 이수 단위(최소 58단위)를 제외하면 교육과정을 자유롭게 짤 수 있다"며 "주요 과목 수업을 늘리거나, 입시와 관계없는 과목은 최대한 축소하는 등 진학에 유리한 쪽으로 편성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교사는 이어 "고교 선택제 역시 선택권 보장의 측면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실제로는 선호 학교와 비선호 학교의 격차가 심해 대학 못지않게 고교 서열화가 고착되고, 이 서열은 지역에서 최소 10년 이상 유지되는 게 보통"이라고 지적했다. 이밖에 '수월성 교육 강화에 따른 교육의 공공재 목표 상실'과 '교육의 빈부 격차 초래'를 꼽은 응답자도 각각 6명이었다. 반대 입장을 밝힌 한 교사는 "학생 집단이 다양성을 갖춘 집단에서 동질의 집단으로 변하는 경향이 생기면서 학생들이 나와 다른 남과 함께 생활하는 방법을 배울 기회를 잃는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찬성한다고 답한 응답자들은 이들 정책의 '평준화 한계를 보완하는 특화된 수월성 교육 가능'(5명), '학생 선택권 보장으로 애교심과 소속감이 강함'(3명), '선호 학교로 평가받기 위한 학교와 교사의 노력'(2명) 등을 긍정적으로 봤다.
기타 의견을 밝힌 응답자 2명은 '정보 공시제 자료가 정확하지 않아 학부모가 선택하는 고교에 대한 정보가 미흡하다' '장단점이 있는 정책이어서 찬반 이분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에 보완하고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설문 참여 교사 소속 학교
강남구 10개, 강동구 6개, 강북구 2개, 강서구 3개, 관악구 2개, 금천구 2개, 노원구 6개, 동대문구 1개, 동작구 1개, 서대문구 1개, 서초구 1개, 성북구 2개, 송파구 5개, 양천구 3개, 은평구 1개, 종로구 1개, 중랑구 3개 총 50개
정애선 기자 as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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