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열차 동행취재 - ‘힐링열차’ 타고 나를 돌아보기

‘나’는 세상에 하나뿐인 소중한 사람

템플스테이와 108배, 순천만 여행 통해 나를 돌아보며 스스로 치유하는 힘 길러

지역내일 2013-04-07 (수정 2013-04-07 오후 2:29:58)


송광사 템플스테이 중에 사자루에서 진행한 스님과의 대화에 아이들이 즐겁게 웃고 있다. 아이들의 사소한 질문에도 각안스님과 진웅, 원승 스님은 때론 진지하게, 때론 재미있게  최선을 다한 답을 해줬다. 대화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2012년 주5일수업제 전면시행에 따라 일선학교에서는 다양한 토요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교과수업의 연장이거나 단순한 스포츠 활동에 그치는 실정이다.
특히, 입시중심의 고등학교는 토요일도 교과수업의 연장일 뿐이다. 더구나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아이들은 자신의 존재감을 잃은 채 대학 입시정책에 끌려가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학습부적응으로 학업을 중단하는 고교생들이 대전시에서만 연 1500여명으로, 3월과 4월에 가장 많다. 대전시교육청이 주최하고 코레일이 후원하는 3월 ‘힐링열차’가 2013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리는 순천만 일원과 송광사에서 진행됐다. 



아이들이 프로그램을 마치고 대웅전앞 마당에서 각안스님(송광사 포교국장)과 사진을 찍고 있다.


“아이들은 내가 규칙을 잘 지킨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놀리고, 무시하고, 왕따 시켰다. 그래서 많은 상처를 받았다. 규칙을 잘 지키는 게 왜 차별당하고 괴롭힘을 당해야 하는 이유인지 속이 상했다. 힐링열차를 타고 순천여행을 하고나서 많이 좋아졌다.”
1박2일 힐링열차를 탄 대전 모 고교 남학생이 소감문에 적은 글이다.
대전시교육청이 전국에서 최초로 기획한 청소년을 위한 힐링열차는, 일상에 지친 학생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자연 속에서 삶의 활력소를 찾을 수 있도록 마련했다.



힐링, 몸보다 마음을 움직여야
3월30일 오전 8시 33분. 대전지역 고교2학년 남녀 60명을 태운 ‘힐링열차’가 서대전역을 떠나 순천역으로 출발했다.
학교가 서로 다른 아이들은 낯설어하며 휴대전화기만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열차안에서 진행한 전국아버지학교 임영준 교장의 ‘자신의 마음읽기’ 특강에 마음을 열었다. 

임영준 교장은 “이 자리에 있는 ‘나’는 작품이다. 작품의 최고 가치는 마음”이라며 “상대가 나를 작품으로 느끼도록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감정은 주인이고 이성은 봉사자다.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 교장은 세상에 하나 뿐인 소중한 ‘나’를 설명하기 위해 상품과 작품을 예로, 위트 있는 질문과 대화를 통해 공감을 이끌어냈다. 치유와 치료를 설명하며 힐링의 중요성을 얘기하고 몸보다 마음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자신을 치유하라고 조언했다. 

점심으로 벌교명물인 꼬막정식을 먹었다. 꼬막요리는 남도음식 특유의 맛을 냈고, 눈과 입이 즐거웠다.
순천시청 문화해설사는 읍성 중 전국에서 유일하게 성안에 주민들이 생활한다는 낙안읍성에 대해 구성진 사투리와 해설로 아이들의 박수를 받았다. 

특히 조정래 소설 ‘태백산맥’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질문이 이어졌다. 아이들은 여순반란사건 전후에 벌어진 민중의 한과 갈등을 그린 소설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특히 태백산맥의 흔적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소화다리(부용교)와 김범우 집에 대해 설명하자 아이들은 호기심에 눈빛이 반짝였다. 이날 멘토로 나선 카이스트 학생들은 형, 언니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법정스님이 생전에 거처하시던 불일암을 방문한 아이들이 주지스님의 말씀을 듣고 있다.
아이들은 방명록에 이름을 남기기도 했다.


템플스테이, ‘무소유의 진리를 가슴에 담다’
오후4시, 송광사 주차장에 도착해 승보종찰로 불리는 송광사 진입로 흙길을 묵언하며 걸었다. 아이들은 일상에서 지친 마음을 내려놓고 오롯한 자신과의 시간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새벽 3시 예불참여와 108배 프로그램에 부담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오후 6시 공양을 마치고 저녁예불을 알리는 법고 소리가 경내에 울렸다. 아이들은 법고를 치는 스님의 현란한 손놀림에 빠져들었다. 거대한 북에서 나오는 소리는 대웅전에 부딪히고 아이들의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특히 17세 소년인 원승스님이 치는 법고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잠시 후 대웅전 앞마당에 어둠이 내렸고 대웅전으로 들어간 아이들은 예불문과 반야심경을 외우는 스님들의 독경소리에 마음이 숙연해졌고, 자연스럽게 합장한 채 예불의식에 빨려 들어갔다.
다음날 새벽 3시. 산사에 가랑비가 내렸다. 잠을 깨우는 스님의 목소리에 아이들은 졸린 눈을 비볐다. 아이들은 대웅전에서 새벽 예불에 참여한 후 대중법회 장소인 사자루에서 108배를 시작했다.
1배,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는가’를 시작으로 우주속에서 나를 찾고 자연과 환경, 이웃을 먼저 생각했다. 아이들이 절을 하며 중반을 넘기자 등줄기에 땀이 흘렀고, 조금씩 마음을 비우며 자신을 낮췄다.
아침 공양을 마친 아이들은 스님의 안내로 송광사 경내를 돌아보고, 보관된 국보 목조삼존불감, 고려고종제서, 국사전, 송광사 화엄경변상도를 둘러봤다.

봄이지만 새벽에 내린 비로 손이 시릴 정도로 쌀쌀했다. 스님의 배려로 따뜻한 연잎차를 마신 아이들은 스님을 따라 법정스님의 ‘무소유길’을 걸었다. 산길을 따라 20여분을 올라가자 대나무 숲 사이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혔다. 불일암에 도착하자 주지스님의 가르침이 이어졌고, 아이들은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가슴에 담았다. 

이름을 밝히기 꺼려하는 한 남학생은 “템플스테이에 참여하면서 종교가 천주교라서 걱정했는데 법당에 들어서는 순간 걱정은 눈 녹듯 사라졌다. 오히려 ‘출가’에 대해서 관심이 생겼다”며 “템플스테이를 마치니 마음이 차분해지고 정신이 맑아졌다”고 소감문에 적었다.





아이들이 두 팀으로 나눠 생태해설사의 안내로 순천만 생태 길을 걷고 있다. 일요일이라 순천만을 찾은 관광객이 많았다.

순천만 개펄에서 마음을 치유하다
아이들은 세계5대 연안습지인 순천만을 찾았다. 순천만은 람사르에 등록된 세계문화유산으로 매년 280여만명이 찾는 명소다. 또한 우리나라를 찾는 조류 절반인 220여종 서식하는 곳이다.

두루미는 1부1처제의 삶을 살다가 한 마리가 죽으면 따라 죽는다는 순천만 생태공원 해설사의 설명에 아이들은 숙연해졌다. 아이들은 개펄 구멍에서 반쯤 몸을 내밀고 상처를 치유하는 게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이어 게들이 태어나 처음으로 새로 나온 갈잎을 뜯어먹는 ‘게 풀 뜯어 먹는 소리’를 들으며 신기해했다.
호수돈여고 조경은 양은 “힐링이 ‘꿈’이라 생각하고 참여했는데, 와보니 생각과 완전 다른 프로그램이어서 실망했다. 순천만 갈대 숲길을 걸으며 선생님께 투정부렸던 나를 반성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용산전망대에 오르니 기분이 상쾌해졌다”고 소감문에 밝혔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힐링열차 1박2일 소감문에서 템플스테이와 108배를 가장 인상 깊은 프로그램으로 꼽았다. 대전 중일고 이정아 양은 “항상 불안하고 걱정이 앞서는 상태로 생활했는데, 지금은 마음이 안정되고 평안으로 가득 차있다”고 적었다. 제일고 홍세연 군도 “새벽 3시에 일어나는 것은 힘들었지만, 108배를 통해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고 적었으며 두 사람 모두 “친구한테도 꼭 권하고 싶은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힐링열차가 남긴 한마디 
힐링열차를 타고 순천만과 송광사 템플스테이에 다녀온 아이들이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잔잔한 감동을 남겼다.
 
“처음 드려 본 예불은 생소했지만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주었고, 스님을 따라 소식(小食)을 하니 몸도 마음도 가벼운 느낌이었다. 108배를 할 때, 처음엔 힘들었지만 하면 할수록 마음에 힐링이 되는 것을 느꼈다. 다음 힐링열차 때도 템플스테이와 108배는 프로그램에 꼭 넣어주세요” 
-제일고 홍세연-

“힐링열차에 참여해 처음으로 템플스테이를 체험했다. 처음이라 낯설고 어색했지만 평소에 누리고 살았던 것들을 잠시 내려놓으니, 신선한 경험이었고 힘든 일정을 이겨냈다는 뿌듯함에 기분이 좋았다”
 -서대전고 김상윤-

“출발할 때는 템플스테이도 해 본적이 없고 모르는 얘들과 여행 한다 생각하니 기대도 되면서 떨렸다. 템플스테이를 하고 순천만을 다니며 친구들과 친해졌고, 공부에 대한 압박감에서 벗어나 집으로 향하는 기차에서는 마음이 편해졌다”
 -서대전고 박성수-

“처음 만나는 애들과 서먹할 줄 알았는데 기차에서 대화를 나누다보니 죽이 척척 잘 맞았다. 친구들과 친해지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이 소중한 체험이었다” 
-유성고 김재현-


“내 종교가 불교였음에도 예불과 절에 대해 많은 것들을 모르고 있었다. 내 종교에 대해 신선하고 새로운 것뿐이었다” 
-대전여고 배윤지-


“108배를 할 때 나왔던 멘트들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멘트들을 들으며 절을 하니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됐다. 나중에 부모님과 꼭 다시 올거다”
 -대덕고 박소영-


“새벽 세시에 일어나 108배를 할 때 몸은 힘들었으나 정신이 맑아지며 근심, 걱정이 사라져 참, 좋았다” 
-보문고 차상준-


“선생님 권유로 가게 됐다. 주말에 원치 않았던 여행이라 ‘내가 왜 가야하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여행을 통해 많은 추억과 좋은 경험을 한 것 같아 정말 재밌고 좋았다” 
-대전 가오고 문송연-


“출발할 때는 진짜 떨렸다. 공부하면서 받은 스트레스와 상처들을 진짜 치유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일정을 하나하나 마칠  때마다 나 자신에 대한 힐링은 물론 이를 통해 다른사람을 치유하는 방법까지 배운 것 같다”
 -청란여고 조혜지-


“1박2일 힐링열차에 대한 기억으로 앞으로 힘들 때마다 이 기억을 떠올리며 나 자신을 힐링할 수 있을 것 같다”
 -대전여고 김아영-



이밖에도 많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 적지 못해 아쉽다. 법정스님이 남긴 ‘아름다운 마무리’에서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그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자 시작이어야 한다.”는 말이 뇌리에 스친다. 아이들에게 힐링열차가 아름다운 시작이길 바란다.


순천만 용산전망대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아름다운 동백과 송광사 종고루에서 저녁예불전 법고를 치고 있는 스님의 모습


천미아 리포터 eppen-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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