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회관까지 찾아가는 방과 후 학교
“우리 마을에 원어민 선생님이 오셔요!”
원하는 과목을 검증된 강사가 무료로 수업해
이지혜(도고초 3)양은 차를 타고 지나갈 때면 길거리의 영어간판을 열심히 읽는다. “선생님이 K는 ‘크’ 발음이라고 가르쳐주셨는데”…. 정혜원(40)씨는 영단어를 보고 읽어보려 애쓰는 딸의 모습이 기특하기만 하다.
여느 아이들보다 늦게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지혜양. 지금까지 그냥 무심히 지나왔던 영어간판들이 이제는 예사롭지 않다. 지혜양은 아는 단어가 많아질수록 영어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정해원씨는 “지혜의 영어가 많이 늘었다. 사교육을 받기 어려운 이곳에 원어민이 직접 마을로 찾아와서 영어를 가르쳐주고 있어 정말 좋다”며 기뻐했다.
* 찾아가는 방과 후 도고 여름캠프: 사진은 지난여름 찾아가는 방과 후 학교 여름캠프 활동 모습.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하는 방과 후 학교는 지역방송 출연을 계기로 주민들의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교육여건 열악한 마을로 찾아가 =
아산시 도고면 신언리는 학원은커녕 학습지 교사도 들어오지 않는 외곽지역이다. 학교 외에는 영어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다. 주거지를 떠날 수 없는 학부모들은 열악한 교육환경을 걱정했다.
아산시는 이러한 도농도시 특성을 이해하고 농·산촌 학생들의 지역 간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2011년부터 ‘마을회관까지 찾아가는 방과 후 학교(이하 방과 후 학교)’ 사업을 추진했다. 학습의 의지가 있으나 배움의 기회가 적은 지역에 사는 아이들에게 시가 적극적으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나선 것이다.
시는 한국어도 일부 가능한 필리핀 원어민 강사를 신언리에 파견했다. 수업은 주로 주말에 이뤄지지만 결석하는 아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방과 후 학교에 대한 엄마들의 열의는 대단하다. “멀리 차를 타고 학원을 가는 교통비와 시간을 감수하지 않아도 원어민 강사의 수업을 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이냐”며 방과 후 학교 수업 진행을 적극 돕고 있다. 정혜원씨는 “새 학기가 되자 신청자가 늘었다”며 “농촌 학교인 것을 고려하면 학생 수에 비해 참여율이 높다”고 말했다.
배움의 기쁨 느끼는 아이들 =
지난해 7월 아산시 좌부동 초원아파트 관리사무소동에 개소한 키움지역아동센터(이하 키움)도 방과 후 학교 수업을 제공받고 있다. 다른 지역아동센터와 달리 키움은 운영을 위한 국비 및 지자체 지원금을 받지 못하고 급식비만 지원받는다. 개인이 설립한 지역아동센터는 설립한 지 2년이 지나야 지원금 수령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키움은 서미복 센터장이 사재를 털어 청소년을 돕고자 만든 그의 꿈이 담긴 곳이다. 서 센터장은 매월 들어가는 센터 운영비를 고스란히 사비를 털어 유지해 오고 있다. 덕분에 시에서 추진하는 방과 후 학교 수업을 센터 학생들에게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아이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다. 서 센터장은 “검증된 강사들이 센터로 찾아와 학습편차가 심한 중학생들의 학습 결손을 채워주고 있다. 방과 후 학교 수업을 거부했던 아이들도 ‘딱딱하지 않게 잘 가르쳐준다’며 지금은 성실하게 참여한다”며 “짜증내는 아이가 없다. 또한 틀려도 포기하지 않고, 학습에 대한 의욕이 생겼다”고 말했다.
부모들은 아이가 센터에 간다면 두말 않고 보냈다. 아이들은 서 센터장의 헌신적인 지도와 다양한 수업을 통해 아이들은 학습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했다.
아이도 부모도 만족도 높아 =
방과 후 학교는 전액 무료 수업인데다 교재비까지 반액을 지원한다. 아산시 교육도시과 이현경 팀장은 “신청과목에 제한이 없다”며 “학습열의만 있으면 수준에 맞고 원하는 과목을 배울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과 후 학교 대상지는 인주 도고 영인 염치 송악 신창면과 좌부동이다. 유치부부터 중학생까지 대상연령도 넓혔다. 마을회관이나 교회 성당 등 반드시 공공장소에서 수업을 진행해야 하며 5명 이상 모여야 수업이 가능하다. 인원이 많으면 수준별 반편성도 가능하다.
아산시는 ‘마을회관까지 찾아가는 방과 후 학교’ 사업으로 지난해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상임대표 강지원)의 ‘2012 전국기초단체장 매니페스토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공약이행분야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방과 후 학교를 민선 5기 주요 역점 시책으로 추진한 복기왕 시장은 “전국적으로 자치단체가 마을회관까지 찾아가 방과 후 학교를 추진하는 경우는 드물다”며 앞으로도 자치단체의 책임 있는 교육 참여로 교육에서 소외받고 있는 아이들에게 기본적 교육의 기회가 보장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힌 바 있다.
방과 후 학교는 지난해 1월 ‘2011년 하반기 만족도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생·학부모 66.9%가 ‘매우만족’으로 답했으며, 89.5%가 ‘만족 이상’을 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의: 아산시 교육도시과 540-2031
노준희 리포터 dooaium@hanmail.net
미니 인터뷰 - 키움지역아동센터 서미복 센터장
“아이들이 바르게 크는 모습이 저의 기쁨입니다!”
“사람을 잘 키우는 일이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제 바람은 이 나라를 이끌고 갈 청소년, 특히 중학생들이 바르게 자라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입니다.”
서미복 센터장은 적금을 깨고 목돈을 들여 굳이 초원아파트에 키움지역아동센터를 설립했다. 세대수가 많으면서 탈선하기 쉬운 연령대의 청소년들이 이곳에 많이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상으로 아이들을 돌본다는 생색은 내지 않았기에 기업과 개인을 합쳐도 20만원이 채 안 되는 후원금이 센터 수익의 전부다. 다행히 아파트 아이들을 위한 시설이어서 공간만은 무상으로 임대하고 있다.
“흡연을 하거나 기초학력이 안 되는 아이들이 많았어요. 학원을 3일 이상 다닌 적이 없는 아이도 있었지요. 그러나 이곳에 온 후부터는 한 번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아이들이 변화하기 시작했어요.”
서 센터장은 사비를 들여 악기를 구입해주고 수업도 받게 했다. 센터는 언제든지 책을 읽을 수 있도록 8000여권의 도서를 보유했고 자고 가고 싶을 만큼 쾌적한 시설을 유지했다.
찾아가는 방과 후 학교 및 다양한 교육의 기회도 제공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관심 받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처음엔 거부감이 심했던 아이들도 어느새 아이들을 향한 서 센터장의 진정어린 마음을 읽게 됐다. 학부모들도 “센터 간다고 방학 때도 늦잠 자지 않고 일어나는 것을 보면 신통하다”며 센터에 대한 믿음을 키워갔다.
“센터가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며 챙겨주는 아이들이 있어 서 센터장은 더 행복하다. “아이들에게 왜 살아야 하는지 동기 부여를 해줘요. 환경이나 가정의 영향으로 아이들이 잘못 커선 안 되지요. 애들 잘 크는 것만 봐도 정말 기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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