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는 있는데 배우는 없는' 도서관 문제 대책 촉구 … 도서관계 내부 자성목소리도
많은 이들이 공공도서관은 다 같은 곳이라고 여기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공공(公共)이라는 뜻만큼 다양한 운영방식이 존재한다.
국가 대표도서관인 국립중앙도서관을 정점으로 교육청 소속 도서관과 지자체 소속 도서관으로 나뉘고 지자체 소속은 다시 직영과 위탁경영 도서관으로 갈린다. 소속과 운영 방식이 다양한 만큼 그 안에 속한 사람들이 보는 공공도서관의 발전상도 모두 다르다.
하지만 늘어나는 시설만큼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전달할 전문인력이 채워지지 않고 있다는 데엔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마치 무대는 있는데, 공연할 배우가 없는 꼴이라는 지적이다. 이들은 박근혜정부의 국정과제에 도서관정책이 누락된 데 대해 우려를 표하면서 "미진하지만 지금이라도 향후 5년간의 로드맵을 밝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대형마트는 수두룩한데… = 이용훈 서울도서관장은 정부가 추진중인 작은도서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골목상권의 목을 죄는 대형마트는 우후죽순 허가하면서도 정작 질좋은 서비스와 전문인력으로 무장한 대형도서관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라는 것이다.
이 관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국립중앙도서관이 800만권 정도 책을 소장하고 있는 데 반해 우후죽순 늘어나는 작은도서관들은 대부분 기증받은 책으로 채워지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도서관들은 시민이 스스로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찾는 곳이라는 본질적 존재이유보다 이용객을 붙잡기 위해 행사나 강연회 등 미끼상품을 던져야 하는 곳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 관장은 또 "미국의 한 조사에서 '모든 것이 붕괴됐을 때 단 하나의 시설만 구할 수 있다면 무엇을 선택하겠는가'라는 질문에 미국시민들은 도서관을 첫손에 꼽았다"라며 "도서관이 존재해야 나머지를 복원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며 이는 도서관의 방대한 자료와 질높은 서비스를 절대 긍정하기에 가능한 답변"이라고 말했다.
◆ 갈래갈래 찢어진 도서관 로드맵 = 이학건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 전 부관장은 "90년대 초반 400개에 불과했던 공공도서관이 현재 800개를 육박할 만큼 늘었지만 이를 운용하는 사서는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며 "연극으로 따지자면 무대는 크게 늘었는데, 이 안에서 공연을 할 배우는 없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이 부관장은 "시설에 대한 관심이 지나치다 보니 결국 사람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며 "정부는 인구당 도서관수가 점점 호전되고 있다며 마치 선진국에 다가서는 것처럼 홍보하지만 정작 중요한 인구당 사서수를 말하는 것은 꺼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2010년말 현재 정부 자료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사서수는 0.07명에 불과하다.
갈래갈래 찢어진 도서관 담당부처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 부관장은 "도서관은 하나의 로드맵으로 운용돼야 하는데 현재는 교과부, 교육청, 지자체, 문화부, 국회 등으로 모두 분절적"이라며 "백년대계를 다룬다는 도서관에 대한 정부 정책이 서로 연계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도서관의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단 소관부처의 일원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 대통령 비전에 설레고 싶어 = 여희숙 도서관친구들 대표의 지적은 시민의 입장에서 도서관을 실제 이용한 체험으로부터 우러나온 것이라 더더욱 날카롭다.
여 대표는 "시민의 입장에서 볼 때 독서권과 도서관 이용권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배려에서 시설을 확충하는 것인지, 아니면 도서관 수를 늘리기 위해 확충하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며 "정부가 작은도서관 진흥 정책을 따로 펴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정말로 정부가 도서관의 본래 기능을 원하는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건물만 덜렁 짓거나 아니면 작은도서관만 짓는 게 인력도, 예산도 안 주려고 하기 때문 아니냐"고 지적했다.
광진정보도서관을 주로 이용한다는 여 대표는 "주변 사람들이 광진도서관을 이용하면서 '참 좋은 서비스가 많구나' 느끼는 동시에 '무척 화가 난다'고도 말한다"며 "이유는 이렇게 좋은 시설이 왜 사회적 약자가 접근하기 어려운 외진 곳에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고 전했다. 광진도서관 같은 질 좋은 도서관이 동네 곳곳에 들어서야 한다는 말이다.
그는 광진도서관이 세워지던 1990년대말 친구들이 하던 얘기를 전했다. "도서관이 세워진다는 얘기에 광진구 주민들이 너도나도 들떴다. 건물이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저기 도서관이 서고 있다. 조만간 도서관이 만들어진다'며 희망에 부풀었다."
여 대표는 "그때 그 설렘을 박근혜정부에서도 느끼고 싶다"며 "'임기중 도서관 서비스 수준을 이렇게저렇게 개선할 것이며, 이를 위해 얼마를 투자하겠다'는 내용의 대통령 비전이나마 듣고 싶은 게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절실한 바람"이라고 호소했다.
◆ 도서관 사람들 마인드 바뀌어야 = 물론 정책이 중요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봐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정책 변화와 더불어 도서관계 사람들의 인식도 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진봉 노원구립도서관 총괄사업본부장은 "시민들이 스스로 온전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공간으로서 도서관을 이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그러려면 도서관이 적극적으로 지역주민에게 감동을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상황이 변하려면 누군가는 먼저 움직여야 한다"며 "정책적 계기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앞서는 건 도서관을 운영하고 이끌어가는 사람들의 마인드"라고 말했다.
이학건 전 부관장도 "직영도서관이냐 위탁이냐, 사서냐 아니냐에 따라 도서관계 내부에서 논란이 발생하는데, 관점에 따라 또 상황에 따라 이해관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며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힘든 일을 하는 이유가 바로 '사람들이 보다 행복해지는 데, 우리나라가 좀 더 발전하는 데 기여하겠다'는 것이라는 점을 우리가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한다"고 말했다.
여인숙 대표 역시 "이용시민의 입장에서 위탁이나 직영의 구분은 문제되지 않는다"며 "시민들이 '도서관이 나를 진정 존중하고 있구나, 환영하고 있구나' 하고 느낄 때 정부 정책 변화를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도서관계에 힘을 보탤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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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공공도서관은 다 같은 곳이라고 여기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공공(公共)이라는 뜻만큼 다양한 운영방식이 존재한다.
국가 대표도서관인 국립중앙도서관을 정점으로 교육청 소속 도서관과 지자체 소속 도서관으로 나뉘고 지자체 소속은 다시 직영과 위탁경영 도서관으로 갈린다. 소속과 운영 방식이 다양한 만큼 그 안에 속한 사람들이 보는 공공도서관의 발전상도 모두 다르다.
하지만 늘어나는 시설만큼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전달할 전문인력이 채워지지 않고 있다는 데엔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마치 무대는 있는데, 공연할 배우가 없는 꼴이라는 지적이다. 이들은 박근혜정부의 국정과제에 도서관정책이 누락된 데 대해 우려를 표하면서 "미진하지만 지금이라도 향후 5년간의 로드맵을 밝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대형마트는 수두룩한데… = 이용훈 서울도서관장은 정부가 추진중인 작은도서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골목상권의 목을 죄는 대형마트는 우후죽순 허가하면서도 정작 질좋은 서비스와 전문인력으로 무장한 대형도서관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라는 것이다.
이 관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국립중앙도서관이 800만권 정도 책을 소장하고 있는 데 반해 우후죽순 늘어나는 작은도서관들은 대부분 기증받은 책으로 채워지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도서관들은 시민이 스스로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찾는 곳이라는 본질적 존재이유보다 이용객을 붙잡기 위해 행사나 강연회 등 미끼상품을 던져야 하는 곳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 관장은 또 "미국의 한 조사에서 '모든 것이 붕괴됐을 때 단 하나의 시설만 구할 수 있다면 무엇을 선택하겠는가'라는 질문에 미국시민들은 도서관을 첫손에 꼽았다"라며 "도서관이 존재해야 나머지를 복원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며 이는 도서관의 방대한 자료와 질높은 서비스를 절대 긍정하기에 가능한 답변"이라고 말했다.
◆ 갈래갈래 찢어진 도서관 로드맵 = 이학건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 전 부관장은 "90년대 초반 400개에 불과했던 공공도서관이 현재 800개를 육박할 만큼 늘었지만 이를 운용하는 사서는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며 "연극으로 따지자면 무대는 크게 늘었는데, 이 안에서 공연을 할 배우는 없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이 부관장은 "시설에 대한 관심이 지나치다 보니 결국 사람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며 "정부는 인구당 도서관수가 점점 호전되고 있다며 마치 선진국에 다가서는 것처럼 홍보하지만 정작 중요한 인구당 사서수를 말하는 것은 꺼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2010년말 현재 정부 자료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사서수는 0.07명에 불과하다.
갈래갈래 찢어진 도서관 담당부처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 부관장은 "도서관은 하나의 로드맵으로 운용돼야 하는데 현재는 교과부, 교육청, 지자체, 문화부, 국회 등으로 모두 분절적"이라며 "백년대계를 다룬다는 도서관에 대한 정부 정책이 서로 연계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도서관의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단 소관부처의 일원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 대통령 비전에 설레고 싶어 = 여희숙 도서관친구들 대표의 지적은 시민의 입장에서 도서관을 실제 이용한 체험으로부터 우러나온 것이라 더더욱 날카롭다.
여 대표는 "시민의 입장에서 볼 때 독서권과 도서관 이용권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배려에서 시설을 확충하는 것인지, 아니면 도서관 수를 늘리기 위해 확충하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며 "정부가 작은도서관 진흥 정책을 따로 펴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정말로 정부가 도서관의 본래 기능을 원하는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건물만 덜렁 짓거나 아니면 작은도서관만 짓는 게 인력도, 예산도 안 주려고 하기 때문 아니냐"고 지적했다.
광진정보도서관을 주로 이용한다는 여 대표는 "주변 사람들이 광진도서관을 이용하면서 '참 좋은 서비스가 많구나' 느끼는 동시에 '무척 화가 난다'고도 말한다"며 "이유는 이렇게 좋은 시설이 왜 사회적 약자가 접근하기 어려운 외진 곳에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고 전했다. 광진도서관 같은 질 좋은 도서관이 동네 곳곳에 들어서야 한다는 말이다.
그는 광진도서관이 세워지던 1990년대말 친구들이 하던 얘기를 전했다. "도서관이 세워진다는 얘기에 광진구 주민들이 너도나도 들떴다. 건물이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저기 도서관이 서고 있다. 조만간 도서관이 만들어진다'며 희망에 부풀었다."
여 대표는 "그때 그 설렘을 박근혜정부에서도 느끼고 싶다"며 "'임기중 도서관 서비스 수준을 이렇게저렇게 개선할 것이며, 이를 위해 얼마를 투자하겠다'는 내용의 대통령 비전이나마 듣고 싶은 게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절실한 바람"이라고 호소했다.
◆ 도서관 사람들 마인드 바뀌어야 = 물론 정책이 중요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봐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정책 변화와 더불어 도서관계 사람들의 인식도 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진봉 노원구립도서관 총괄사업본부장은 "시민들이 스스로 온전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공간으로서 도서관을 이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그러려면 도서관이 적극적으로 지역주민에게 감동을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상황이 변하려면 누군가는 먼저 움직여야 한다"며 "정책적 계기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앞서는 건 도서관을 운영하고 이끌어가는 사람들의 마인드"라고 말했다.
이학건 전 부관장도 "직영도서관이냐 위탁이냐, 사서냐 아니냐에 따라 도서관계 내부에서 논란이 발생하는데, 관점에 따라 또 상황에 따라 이해관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며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힘든 일을 하는 이유가 바로 '사람들이 보다 행복해지는 데, 우리나라가 좀 더 발전하는 데 기여하겠다'는 것이라는 점을 우리가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한다"고 말했다.
여인숙 대표 역시 "이용시민의 입장에서 위탁이나 직영의 구분은 문제되지 않는다"며 "시민들이 '도서관이 나를 진정 존중하고 있구나, 환영하고 있구나' 하고 느낄 때 정부 정책 변화를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도서관계에 힘을 보탤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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