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에 몸담은 지 30여 년. 압구정고등학교 이영호 교사는 오랜 연륜과 경험을 토대로 끊임없이 ‘진화하는 선생님’으로 불린다. 학생들이 변했다고 한탄하기보다는 교사가 변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영호 교사. 그의 남다른 교육 행보가 사뭇 궁금했다.
이 맛에 교사한다
이영호 교사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사회교육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 디딤돌, 지학사, 비상교육 등에서 발간한 사회 및 사회문화 교과서와 EBS 수능 교재를 집필했으며 현재 압구정고등학교에서 수석교사로 재직 중이다. 85년 아현중학교로 첫 발령을 받아 3년간 재직한 후, 지금까지 고등학교에서만 26년을 근무하며 일반사회 교과를 가르쳐왔다. 오랜 세월만큼이나 학생들과의 추억담도 한 보따리다.
“중학교에서 맨 처음 교직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고교입시 즉, 연합고사를 보던 때였어요. 인문계고와 실업계고를 선택할 때에 영향을 미쳤던 시험이라 연합고사는 중3 학생들에게는 적잖은 스트레스였습니다. 당시 제가 담임을 맡았던 반 학생들도 연합고사의 압박감을 갖고 있었고, 담임교사로서 반 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공부를 도와주었습니다. 당시는 지금처럼 사교육이 활성화된 때가 아니라서 학생들 역시 배움의 갈망이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배우고 싶어 하는 학생, 가르치고 싶어 하는 교사, 이 두 가지 열정이 잘 통했던 때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의 이런 열정 때문일까? 지금까지 가르쳤던 학생들에게 받은 ‘편지’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다. 지금도 가끔씩 학생들의 편지를 꺼내보며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강남교육청에서 신규 교사들을 대상으로 ‘학급경영,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강연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학생들이 저에게 보내왔던 편지들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죠. 이 맛에 교사한다고.”
학생들이 참여하는 협력수업 시도
‘이 맛에 교사한다’는 그의 표현처럼 학생들 역시 ‘이 맛에 수업 듣는다’는 말을 종종 한다. 실제로 그의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은 아버지뻘 되시는 선생님이지만 결코 세대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젊은 선생님들보다 수업방식이 더 참신하고 재미있다는 게 학생들의 생각이다. 대체 그의 수업엔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 걸까?
“비밀이요? 그런 것 없습니다. 다만 교사 혼자 강의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해 나가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긴 합니다. 이를 기본으로 하는 것이 제 수업의 특징이죠. 현재 저는 압구정고등학교에서 고2, 고3 수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협력수업을 모토로 삼고 4명씩 모둠별로 묶어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대부분의 수업을 진행함에 있어, 제가 만든 학습지에 도전과제를 넣어 학생들이 협력하고 토의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답을 구하도록 유도합니다. 그 과정 속에서 학생들이 도출해낸 결론을 각각 정리해 칠판에 붙이고 발표하는 형식이죠. 10여 분 정도만 제가 주도할 뿐 수업의 대부분은 학생들이 주가 되어 이끌어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영호 교사의 이런 수업방식 덕분에 학생들에게도 작은 변화가 생겼다. 입시 스트레스와 공부로 늘 피곤해하며 수업시간에 자주 졸던 학생들의 눈이 번쩍 뜨이게 된 것이다.
“수업이 끝난 뒤 한 학생이 저에게 찾아와 ‘선생님, 고맙습니다’며 인사를 하더군요. 뭐가 고맙냐고 되물으니 수업시간에 토론하며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니 자연스레 잠도 깨고, 또 수업이 재밌더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죠. 교사로서 제가 계속적으로 연구해야 하는 이유, 그 해답의 주체는 바로 학생들이란 걸 말입니다.”
실생활의 사례를 접목한 교수법 연구
이영호 교사는 동료 교사들에게 말한다. 학생들이 변했다고 탓하지 말고 이제는 교사가 변해야 한다고. 지난 한 해 ‘어떻게 수업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계속적으로 새로운 교수법을 시도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작년에는 사례중심의 질의?응답식 수업을 시도했다면 올해에는 협력수업 등과 같은 더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는 교수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입시에서 사회 교과는 선택이기 때문에 사실상 국?영?수처럼 모든 학생들이 파고드는 과목은 아닙니다. 저희 학교만 봐도 수업을 듣는 고3 학생 중 수능 선택 과목으로 삼은 학생들은 1/3도 채 되지 않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무조건 수능 중심으로만 수업을 한다거나 혹은 사회를 무조건 암기과목으로 치부해 달달 외우게 하는 교수법에는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사회는 기본적으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 일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공부하는 교과입니다. 실생활과 가장 밀접한 교과이기 때문에 더더욱 우리 주변의 사례를 들어 흥미롭게 진행되어야 하는 교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매몰비용’과 ‘기회비용’에 대해 수업할 때, 이런 어려운 용어들을 먼저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학생들의 이해가 쉬운 아르바이트를 사례로 들어 학생들이 스스로 고려해야 할 비용과 고려하지 않아야 할 비용을 찾아내도록 유도합니다. 그 다음 제가 끼어드는 거죠. 아르바이트를 할 때 고려해야 할 비용이 바로 기회비용이고, 고려할 필요가 없는 게 매몰 비용이라고. 그러면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실생활과 연계해 어려운 경제용어를 쉽게 습득하게 됩니다.”
오랜 시간 심혈을 기울여 만든 학습지와 PPT 교육자료를 아낌없이 동료교사들과 공유하며 ‘교수법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는 이영호 교사. 수업이 바뀌어야 학교가 바뀐다는 그의 교육철학은 학생들뿐 아니라 수많은 후배 교사들에게도 잔잔한 반향을 이끌어내고 있다.
피옥희 리포터 piokhee@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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