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의 마지막인 19세, 우리는 이들을 ‘고3’이라 부른다. 이들에게는 ‘입시생’이라는 또 다른 이름이 있다. 10대의 마지막을 오직 ‘입시’라는 결승선을 향해 내달리고 있는 고3들. 이들 곁에는 입시를 치르는 자녀를 지켜보는, 그리고 함께 힘들어하는 ‘고3엄마’들이 있다.
아이가 고3 1년을 보내는 사이 체중이 10kg이나 줄어든 엄마를 본 적이 있다. 그는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도와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고 다만 지켜만 봐야하는 심정이 정말 힘이 들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고3 엄마들, 혹은 그 시절을 이미 보낸 엄마들은 ‘그 1년’을 어떻게 정의할까. 그들에게 고3엄마들의 심정을 들어봤다. 언젠가 겪어야 하는 ‘고3엄마’, 다들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시길.
고3 엄마는 ‘전략가’다.
신경이 바늘 끝처럼 예민해진 고3 아들. 남수정(가명, 48세 방이동)씨는 1년간 아들의 책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3월 첫 모의고사 성적표를 받아들고 아들에게 쏟아내고 싶은 말을 꾹꾹 눌러 참았다. 점수가 왜 이 모양이냐는 질책 대신 향후 입시 대비를 어떻게 해 나가고 싶은지 의중부터 묻고 함께 대입 플랜을 짰다. ''재수는 NO''. 제일 먼저 이 부분을 아들과 의견일치 보았다.
우선 아들의 성적에서 엄마의 기대치를 걷어냈다. 현 수준을 냉정하게 판단한 다음 수천 가지나 되는 대입전형 가운데서 지원 가능한 대학과 전공을 추린 다음 아들과 전략을 짰다. 자기소개서, 논술 준비 등 고3 필수 준비사항은 남들보다 조금 앞서 준비했고 입시 로드맵에 따라 차근차근 진행한 덕분에 대입 레이스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고3을 지내고 보니 점수는 엇비슷했는데 입시 전략에 따라 대학 레벨이 바뀌는 경우가 꽤 많더라고요. 사실 대입에서 엄마의 역할은 막중합니다. 안 나오는 점수 탓하기에 앞서 아이와 전략적 파트너십부터 가지라고 후배 엄마들에게 늘 강조합니다.”
고3 엄마는 ‘마지막 보루’다
김지후(가명, 45 잠실동)씨는 초중시절 내내 전교 1등, 학생회장을 놓치지 않았던 엄친딸이 늘 자랑스러웠다. 때문에 김씨는 학교운영위원장 등을 도맡아 하며 극성스럽게 딸을 뒷바라지했다. 공들여 준비한 용인외고에 입학한 뒤 딸은 엄마의 치맛바람을 거부하고 ‘홀로서기’를 선언했다. 기숙사 생활을 하기 때문에 얼굴을 자주 보기도 힘들었다. 처음에는 섭섭해 하며 속앓이했지만 결국 딸의 결정을 존중하기로 했다. 이제 고3인 된 딸에게 그는 친구 같은 엄마가 되려고 늘 애쓰고 있다. 좋아하는 음식 만들어 먹이고 슬럼프 겪을 때는 함께 영화 보며 기분 전환을 돕는 등 매일 공부 전쟁을 치르는 딸이 마음 놓고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가 되어주기 위해 늘 애쓰고 있다. “겉보기에 자존심 세고 강해보이는 딸이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스트레스 받고 불안하겠어요. 그래서 늘 ‘괜찮다’라는 말을 해주고 자주 안아줘요.”
고3엄마는 ‘고난의 연속’을 이겨내야 한다
아들의 고3, 지난 1년을 ‘내 인생 최악의 시기’라 말하는 박수경(46 대치동)씨. 시간이 갈수록 노력을 하지 않는 아들을 지켜보는 게 제일 힘들었다고 털어놓는다.
“다른 고3들은 모두 전력질주로 나아가는데 내 아이만 제자리 멈춰있다는 생각이 들 때의 그 심정은 말로 다 할 수 없다”는 박씨. 주말, 늦잠 자는 아들을 보며 혼자 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공부는 대신 해 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근데 마음을 못 잡고 초등학교, 중학교 때보다도 더 공부를 않으니...... 고3 1년, 계속 내리막길을 가고 있는 아들을 보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그렇다고 함부로 잔소리도 할 수 없다. 마음이 언짢아지면 행여나 공부에 지장이 있을까 싶어서다. “내려놓고 내려놓아도 또 내려놓을 게 생기더라”는 박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엄마’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고3엄마는 ‘미안함’ 이다
직장맘인 강동리(43)씨는 힘든 고3 시기를 보내는 아이에게 잘해주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이 크다.
간식을 챙겨주거나 식사를 챙겨주는 기본적인 일부터 엄마의 정보력이 당락을 좌우한다는데
내 일이 바빠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아프고 다른 엄마들처럼 해주지 못하는 것 같아 불안한 마음마저 든다. 그래도 씩씩하게 자기 할 일 알아서 하면서 엄마 걱정마라고 말하는 딸아이가 대견하고 든든하기만 하다. “아이가 고3이 되면 집집마다 엄마는 죄인이 되어 아무 소리도 못한다는데 우리 집은 정반대로 아이가 엄마에게 오히려 힘을 주고 있으니...”
네 일은 스스로 하라고 어릴 때부터 가르쳐왔지만 고3이 되고 보니 어쨌든 직장 가진 엄마는 미안한 마음뿐이다.
고3엄마는 ‘백지’ 다
전혜경(45)씨는 힘들고 어렵기만 했던 아이의 고3 시절이 아이의 합격소식과 함께 백지처럼 하얗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동안 힘들었고 때로는 버겁기만 했던 시간이 아이의 합격과 함께 봄이 오면서 겨울옷의 먼지를 훌훌 털어내듯 날아간 것이다.
그러나 고1,2학년 엄마들에게 꼭 하고 싶은 당부의 말은 있다. 절대적으로 다른 사람의 말에 휘둘리지 말고 엄마가 소신을 가지고 정보를 모으라는 것이다. 전씨의 경우 아이가 고1학년부터 수시와 정시 입시설명회를 수시로 들으며 정보력을 키웠고 그 진가는 고3때야 나타났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지원하는 학교 홈페이지의 작은 글자라도 놓치지 말고 살펴야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은 바쁘니 엄마들이 그 역할을 해야 하고 이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고1학년 때부터 부지런히 정보력을 쌓아 고3때는 그 빛을 발하길 바랍니다.”
고3엄마는 ‘배우보다 더 배우’여야 한다
이제 막 고3엄마 대열에 합류하는 김진미(44 잠실동)씨는 자신의 속마음을 딸아이에게 절대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 김씨를 보고 남편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감이라 말한다.
“친구나 반 엄마들을 만나 다른 아이들 이야기를 들으면 걱정도 되고 조바심이 나잖아요. 근데 아이에겐 절대 내색하지 않아요. 대신 남편한테 괜한 짜증을 내곤 하죠. 지난겨울부터 남편과 다투는 일이 잦아졌어요. 밀려오는 조바심과 커지는 화를 풀 때가 남편밖에 없잖아요. 남편과 싸우다가도 아이가 집에 오면 금방 ‘아닌 척’ 아이를 맞아주죠. 대신 해줄 것도 없는데 마음이라도 편하게 해줘야 한다는 생각에서요.”
아이에게 화나는 일이 생겨도 언젠가부터 조심스럽게 대하게 됐다. 아이에게는 ‘긍정적인 엄마’로 보이고도 싶어졌다. 그런 엄마의 모습이 아이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안정되게 느끼게 해 줄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고3엄마는 안쓰러움에 익숙해야 한다
2학년 때부터 철이 들어 스스로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서은정(47 삼전동)씨의 아들. 서씨는 그런 아들을 볼 때마다 안쓰러움을 느낀다.
“몸이 약해 저녁에 쓰러지다시피 잠자리에 드는 걸 볼 때면 안쓰러워 눈물이 다 나요. 열심히 노력하는 데도 자신이 원하는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는 것도 안쓰럽고요. 고3이 되자마자 ‘엄마 나 재수해야 할까봐’라고 말하는 데 울컥하더라고요. ‘해보는 데까지 해보자’는 말밖에 해 줄 게 없었어요.”
남들은 “그래도 스스로 공부하는 게 어디냐”고 말하지만 서씨는 점점 자신을 잃어가는 아들의 모습이 측은하기만 하다고.
“이제 3월인데, 저부터 마음을 다잡아야할 것 같아요. 앞으로 수많은 난관들과 부딪칠 텐데 저부터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겠죠. 아이가 포기하지 않고 이겨냈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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