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앗이 교육하는 사람들 - 올망졸망 품앗이 놀이학교

‘우리 아이 함께’ 키우려 자신 품을 내어놓다

지역내일 2013-03-25 (수정 2013-03-25 오전 10:03:03)

비가 그친 지난 월요일, 올망졸망 품앗이 놀이학교(이하 올망졸망) 아이들이 산에 올랐다. 아이들은 지난해 권사윤(7)군 집 뒷산에 나무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아지트가 몹시 궁금했다.
겨울을 견디면서 망가졌을 아지트를 보수하기 위해 아이들은 자신의 연장을 챙겼다. 유독 추웠던 지난겨울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아지트가 필요함을 깨닫게 했다.
이서빈(7)양이 쓰러진 통나무를 씩씩하게 톱으로 잘랐다. “톱질이 굉장히 어려울 줄 알았는데 해보니까 재밌어요!” 신이 난 서빈양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자른 통나무를 땅에 고정하기 위해 주변의 흙을 파고 통나무를 세웠다. 멋지게 의자 하나를 뚝딱 완성했다. 


* 올망졸망은 때와 상황에 맞는 주제를 선택해 실천 가능한 활동을 진행한다. 
사진은 지난해 가을, 아이들이 동네 뒷산에 아지트를 만드는 모습. 
나무를 세우고 묶고 엮으며 비밀장소를 만드는 과정은 아이들에게 
‘함께 하니까 해낼 수 있다’는 특별한 체험을 선사했다.

아이들 스스로 알아내는 기회와 시간 필요 =

대부분의 부모는 마음속으로는 이상을 그리지만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가지 않은 채 집에서만 키우길 주저한다. 내 아이가 뒤쳐질까봐 오래 기다려주기도 자신이 없다.
아이가 배워야 할 것들에 대한 관점의 차이는 교육방식을 결정한다. 같은 어린이집을 다녔던 아이의 엄마들. 의식이 비슷했던 그들은 어린이집 운영 시스템이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따로 모여 품앗이교육 공동체를 만들었다.
이들은 이 사회의 뿌리 깊은 경쟁적 교육방식을 떨쳐버리고 ‘우리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 서로의 품을 내어놓았다. 이들은 아이마다 다름을 인정했다. 남들이 보는 우리 아이보다 ‘세상과 마주할 우리 아이들’이 더 소중했다.
사윤군 엄마 이미정(41)씨가 말했다. “우린 많은 걸 바라지 않아요. 아이를 가르치려 들면 아이도 우리도 스트레스 받고 힘들죠. 아이가 원하는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알아야 할 방향으로 이끌면 아이들 스스로 방법을 터득해요.” 아이들은 스스로 알아낸 만큼 문제해결과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결코 잊어버리지도 않는다.
“우리는 우리만의 교육철학이 있어요.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아이마다 다른 특징과 재능이 자연스럽게 표출되기를 바라는 거죠.” 이서빈 엄마 권세은(42)씨는 “나 또한 그동안 아이가 해낼 때까지 기다려 주지 못했다”며 “부모들이 기다릴 줄 알아야 아이들이 성장하더라”고 말했다.  

엄마들의 바람, 아이들의 즐거움 =

처음엔 ‘돌아가면서 데리고 놀자’로 시작했다. 아이들은 늘 만나고 부대끼며 서로에게 필요한 친구가 되어갔다. 고만고만한 일곱 살 또래집단에서 공동체 생활의 중요성과 즐거움을 알아갔다.
부모들은 사회성을 억지로 주입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함께 협력하는 활동을 통해 그들의 세상에서 필요한 규칙을 찾았다. 엄마들은 아이들의 활동을 ‘잘했다, 못했다’로 구분 짓지 않았다. 주로 자연에서 나는 재료를 가지고 사람과 어울려 놀게 했다. 아이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조언해주고 먹거리를 챙겨주고 안전을 살폈다.
아이 수보다 사탕을 적게 주는 등 일부러 갈등상황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스스로 해결하는 과정을 겪을수록 아이들은 자신감이 차올랐다. 낯가림이 심했던 아이도, 겁이 많던 아이도, 자기주장이 센 아이도 차츰 변화해갔다.
이런 아이들을 보면서 부모들은 자신의 선택과 가치관이 옳았음을 확인했다. 권씨는 “품앗이를 한 지 2년이 다 되니 남편과 시부모까지 아이의 변화를 느끼더라”며 흡족해했다.
엄마들은 요일별로 당번을 정해 자신이 잘하거나 관심 있는 주제를 가지고 아이들과 하루를 보낸다. 이씨는 “엄마도 즐거운 교육이 품앗이교육”이라고 말했다.
“위험하다고 무조건 못하게 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다뤄야 할 지 알려주며 같이 활동해요. 아이들은 자신의 의사를 존중받으면 더 신중해지고 더욱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쏟아내거든요.” 


* 종이컵 탑 쌓기에 열중하는 아이들. 자기 키보다 더 높이 쌓고 싶어 
의자를 이용해 딛고 올라가며 열심히 종이컵을 쌓았다. 
성취감을 맛 본 아이들은 스스로 정리까지 마쳤다.

서로 믿는 마음이 공동 육아의 첫걸음 =

엄마들은 품앗이 당번을 할 때마다 바다 모래 올리브 쌩쌩이 그네 등 자신의 닉네임으로 ‘날적이’를 적는다. 하루 동안 아이들이 활동했던 내용과 사진 등을 카페에 올리는 일이다. 카페는 아이들이 내뱉은 주옥같은 어록의 저장소다. 부모들은 카페에서 우리 아이의 성장일기를 공유한다.
품앗이를 지속하면서 아이들은 행복했고 엄마들은 진심으로 마음을 나눴다. 항상 일에 바쁜 아빠들도 아이를 통해 교류를 시작했고 이젠 그들끼리 따로 모일 정도로 가까워졌다.
“아빠들이 모여 술은 뒷전이고 육아에 대해 몇 시간씩 얘기하는 거 보셨어요? 올망졸망에서는 가능합니다.” 현우(7)군 아빠 안일배(38)씨가 남다른 아빠들 모임에 대해 말했다.
현우군 엄마 이정인(38)씨는 “다들 정말 아낌없이 내어주곤 한다”며 “아이들이 노는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힐링이 된다”고 말했다. “잘 아프지도 않고 다시 만날 시간만 손꼽는 아이들을 보면 행여 다쳐도 서운한 마음이 없어요. 서로 간에 든든한 믿음이 있어 이런 품앗이가 가능하겠죠?” 엄마들의 얼굴엔 신뢰가 흘렀다.
올망졸망 엄마들은 말했다. “살면서 필요한 기본바탕을 깔아주는 작업을 한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깨우칠 수 있게 유도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죠. 같은 교육관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것, 감사한 일입니다. 아이들도, 우리도 함께 행복합니다!”

노준희 리포터 dooai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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