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엄마들이 모이면 자녀 교육이 보인다

협동 배려 상생 가르치는 엄마들의 교육 공동체

지역내일 2013-03-13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도저히 혼자 힘으로 가르칠 수 없는 협동, 배려, 상생이라는 공동체 가치들. 형제 여럿인 가정에서 태어나 마을 공동체 속에서 자란 세대에게는 특별히 가르칠 필요가 없었던 가치들이 지금은 어디에서도 배우기가 쉽지 않다.
이런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엄마들이 나섰다. 엄마들이 먼저 모여 울타리를 만들고 아이들은 그 속에서 자란다. 모임의 주제는 다양하다. 체험과 생태교육, 독서토론까지. 그러나 어떤 모임이든지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는 엄마들의 마음은 한결같다. 안산지역에서 활동 중인 다양한 엄마들의 모임을 소개한다.


엄마는 우리학교 ‘숲 해설사’
성포동 경일초등학교에는 특별한 엄마들의 모임이 있다. 10년째 모임을 이어오는 학부모회 ‘자연과 나눔’이다. 2004년 경일초등학교가 학부모회 시범사업으로 지정되면서 출발한 이 모임은 다른 학교 모임이 활동을 마친 것과는 달리 10년째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경일초등학교 ‘자연과 나눔’소속 회원들은 16명. 이들은 모두 ‘숲 해설사’다. 학교 옆 노적봉 공원에 생태연못을 만들고 해마다 학생들에게 생태교육을 진행하는 이들도 바로 ‘자연과 나눔’회원들이다.
자연과 나눔 신미숙 회장은 “요즘 아이들은 자연과 너무 떨어져 살다보니 자연 속에서 노는 법을 몰라요. 우리가 어릴 때 흔히 놀았던 아카시아 잎 따는 놀이도 가르쳐야 할 때는 참 서글퍼요”라며 “그래도 아이들이 생태교육시간을 기다리고 숲 속에서 자신만의 놀이법을 터득해 가는 걸 보면 무척 기쁘다”고 말한다.
자연과 나눔은 매년 4월 경일초등학교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회원을 모집한다. 숲 해설이나 생태교육에 관심 있는 학부모들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자연과 나눔 회원이 되면 학교에서 제공하는 숲 해설사 교육을 들을 수 있다. 이 교육에서는 전문가를 초빙해 식물에 관한 기초지식과 생태교육법에 대한 전문적인 지도가 이뤄진다.
교육 후에도 1년 이상은 선배들의 수업 시간에 보조교사로 참가해 강의 노하우를 익혀야 한다. 자연과 나눔 회원들은 매주 1회 모여 교안집을 만들고 환경관련 학교 내 행사를 기획, 진행한다.
신회장은 “매일 학교에 출근도장을 찍다시피 바쁘지만 학교가 가르칠 수 없는 역할을 담당한다는 생각에 회원들 모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편 경일초 숲해설사 교육은 경일초 학부모가 아니라도 관심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들을 수 있다.


어려운 역사? 우린 재밌게 배운다
매달 한 차례 엄마와 함께 역사 체험학습을 떠나는 신나는 모임도 있다. 2005년 꾸려진 ‘안산 큰나무’다. 석기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역사적 현장을 찾아다니는 답사 모임을 진행하는 ‘안산큰나무’는 교육 품앗이 형태로 운영된다. 현재 큰나무 회원은 27명. 매달 2~3명의 회원들이 조를 이뤄 답사 일정을 계획한다. 진행을 맡은 회원은 체험현장에서 읽을 학습 자료부터 오가는 길에 먹을 간식까지 엄마의 손길로 꼼꼼히 챙긴다.
지난 3월에는 ‘전곡 선사 박물관’으로 체험을 다녀왔다. 한반도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인류의 흔적이 남은 곳이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빗살무늬 토기를 만들고 움집을 지어보고 돌칼로 고기를 썰어도 보면서 구석기인들의 삶을 살짝 엿보는 시간을 가졌다.
큰나무 한 회원은 “책에서 보는 것보다 직접 현장을 다니면 아이들이 역사라는 딱딱한 주제를 받아들이기가 훨씬 쉽고 흥미를 느끼는 것 같다”며 “일 년에 한 번 체험을 준비할 때는 힘들지만 한 번 고생하면 나머지는 아무 준비 없이 아이와 함께 즐거운 여행을 다닐 수 있어 만족한다”고 말한다.
주로 초등학생을 둔 엄마들이 큰나무에서 활동 중이다. 큰아이부터 시작해 둘째아이까지 8~9년씩 활동한 회원들도 많다. 대부분 회원들은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활동을 그만 두는데 그만 둔 회원 수 만큼만 신입회원이 가입할 수 있다.
매달 함께 여행을 다니다 보니 회원 자녀들끼리 유대관계도 깊다. 특히 회원들은 “같은 또래 뿐만 아니라 언니 오빠, 형 동생 끼리 챙기고 보살피는 방법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고 귀뜸했다.


느낌을 표현하는 ‘비폭력 대화’ 공부모임
반월동에는 아이들과 소통하는 법을 찾기 위해 ‘비폭력 대화 공부모임’이 꾸려졌다. 지난해 여름부터 시작된 이 모임도 처음엔 반월동 아이들을 위해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 몇몇 학부모들이 시작했다.
반월지역아동센터 조문선 센터장은 “지난해 반월중학교를 혁신학교로 만들어 오래도록 살 수 있는 동네를 만들고 싶어 몇몇 학부모들이 의견을 모았는데 잘 안되었다. 이때 모인 엄마들이 이왕이면 공부를 하면서 함께 문제를 해결해 보자는 생각에 공부모임을 꾸렸다”고 한다.
마침 반월복지관에서 ‘비폭력 대화’와 관련한 강의를 듣고 공부모임이 시작된 것이다.
비폭력 대화는 미국의 마셜 로젠버그 박사가 주장하는 대화법이다. 이 대화법을 상대방의 행동이나 말을 비디오로 찍은 듯 관찰한 후 나 자신의 내면의 느낌을 확인하고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을 통해 나의 욕구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욕구까지 충족시켜서 합리적인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는 대화법이다. 회원들은 매주 한 차례 모여 비폭력 대화 책을 읽은 후 워크북을 진행하며 대화법을 익혔다.
이 모임의 송승연 회장은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말로 남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일이 너무나 많다. 자신의 욕구를 잘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욕구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시킨다면 대화로 인한 폭력은 사라질 수 있음을 배워가고 있다”고 말한다.
반월동 비폭력대화 공부모임 회원들은 “대화법을 익힌 후 자녀들과 대화가 한결 편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올해는 대화법 공부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인근 텃밭을 빌려 공동 경작할 예정이다.


이 밖에도 각 아파트마다 마을마다 크고 작은 엄마들의 모임이 존재한다. 내 아이만 잘 키울 수 없는 상황에서 이웃과 더불어 함께 키워보자는 엄마들의 모임이다. 만약 지금 나에게 그런 모임 하나 없다면 지금 당장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나와 뜻이 맞는 엄마를 찾기 쉽지 않겠지만 아파트 게시판에 ‘모임광고’라도 살짝 붙여보자. 따뜻한 이웃이 응답해 주길 바라면서.
하혜경 리포터 ha-nul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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