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노래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웠는데/ 눈 감고 가거라// 가진 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 발부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았던 눈을 와짝 떠라.’ 윤동주 시인의 ‘눈 감고 간다’ 전문이다. 태양을 사모하지 않고 별을 노래하지 않는 아이들이 누가 있겠는가? 환경이, 상황이 아이들의 태양과 별을 잠시 거둬들였을 뿐. 하지만 아이들에겐 뿌리면서 갈 가진바 씨앗이 있다. 역경에도 감았던 눈을 와짝 뜰 수 있는 힘이 있다. 오늘도 아이들에게 씨앗을 품게 하고, 힘을 불어넣는 풀무질에 여념이 없는 이가 있다. 팔달희망지역아동센터 강영신 센터장의 하루는 그래서 늘 바쁘다.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끊이지 않는 곳 - 팔달희망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기분 좋게 퍼져가는 곳. 팔달희망지역아동센터(이하센터)의 첫 인상이었다. 그 중심에서 행복한 미소로 함께 하고 있는 강영신 센터장. “센터는 아이들에게 제2의 집이고, 저는 센터엄마예요.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하고 센터를 나서는 아이들이 있을 정도로 소중한 곳이랍니다.”
초등학생이 이용하는 센터는 19인 이하의 시설로 허가받아 그리 크지는 않지만,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그들의 세상을 만들고 있다. 무료로 운영되는 이곳에서 방학이면 10시부터, 학기 중에는 방과 후부터 7시30분까지 생활한다. 공부도 하고 식사도 하면서 보육과 교육이 함께 이뤄진다. 국영수 등의 기초학습, 한문, 미술, 악기(오카리나, 우쿨렐레), 독서논술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요일별로 접할 수 있다. 또한 월1~2회는 영화관람, 과학교실, 수영장, 캠프 등 신나는 문화 체험도 이루어진다. 지역사회와 연계해 도자기나 사진을 배우기도 하고, 필요한 아이들에겐 심리 상담을 받도록 하고 있다.
“자존감을 높여주고 자기개발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늘 생각합니다. 센터의 아이들이 일상생활에서 조금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학습의욕도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센터에서 생활하면서 밝고 희망적으로 변하고, 학습에도 열의를 보일 때 보람을 느끼지요.”
이렇게 신나는 센터생활도 중1이 되면 졸업해야 한다. 해마다 졸업여행으로 그들의 떠남을 축하하는데 얼마 전에도 졸업생 3명과 함께 기차타고 남이섬을 다녀왔다. 센터와의 첫 만남부터 떠나는 순간까지 행복한 기억이 고스란히 남게 된다.
아이들과 함께 하고 성장하는 것, 삶의 가장 큰 행복
19명 아이들의 모든 면을 사랑으로 세심하게 돌보느라 지칠 법도 하건만 센터엄마의 에너지는 언제나 가득 충전돼 있다. 그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꿈’에서 그 원천을 찾는다. 비록 보육교사로서 첫발을 내딛었지만 항상 주위에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자신의 행복이었다는 강 센터장.
시립어린이집에서 근무하던 중 고민에 휩싸이게 된다. 4명의 가족 구성원이 장애를 안고 있던 한 가정을 보며 자립의 절실함을 느끼게 된 것. ‘미취학 상태에서는 보호를 받다가 어린이집을 나가는 학령기가 되면 어떻게 될까? 먹을 것을 보조하는 차원이 아니라 제대로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을까?’
95년부터 계속된 수원여성회 활동도 취학 후 6년의 보살핌에 관심을 더하게 했다. 그 시기를 잘 견디면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건강하게 보낼 수 있으리라는 소신과 맞아떨어졌다. 수원여성회 부설 팔달희망지역아동센터에서 자아를 찾아가는 훌륭한 밑거름이 될 시간을 보낼 아이들을 보살피게 된다.
그의 욕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자신의 아이를 낳고 기르고, 보육교사로 있으면서 30대에 대학에 진학해 국문학을 전공한다. 평소 글쓰기와 책읽기를 좋아해 아이들과도 그 기쁨을 나누고 싶어서였다. 그때 그 바람대로 매주 한 시간씩 주제를 달리해 글을 쓰면서 문집도 두 권이나 냈다. 문집에는 솔직한 모습을 고백하는 아이들의 기쁨이, 또는 아픔이 녹아 있다. “스스로 내고 싶은 글들을 고르면서 문집에 갖는 아이들의 애착도 커지고, 글을 통해 깊이 감췄던 상처가 치유됨을 느낍니다.”
40세에는 대학원에서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취득한다. 탁아에만 전념해온 삶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하며 또 다른 면을 접하게 됐다. 아이의 행복이나 불행은 가족의 운명과 닿아 있고, 이는 사회나 국가의 문제로 확장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한 아이의 성장은 가족뿐만 아니라 사회, 국가도 함께 해야
보다 성숙한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누구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보편적 복지의 필요성이 절실하다는 강 센터장. 미취학아동의 지원은 근래에 진통을 겪으며 어렵게 기반을 잡았다. 하지만 학령기 아동들의 지원은 부족하기만 하다. 분기마다 지원되는 지원비도 축소되고, 센터 종사자의 처우도 열악하다. 취학 전까지는 보호를 받는다 하더라도 초등생이 되면 방치되는 사회구조가 안타까울 뿐이다. 더욱이 우리 사회의 가족 형태는 다양해져 한부모·조손·다문화·외국인 가정 등 사회가 보듬어야 할 아이들은 늘어만 가고 있다.
수원지역에는 50여개의 지역아동센터가 있지만 턱없이 부족한 편. 지역 내 모든 아이들이 지역 울타리에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지역아동센터가 보다 활성화되기 바라는 마음이 크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만 가는 곳이라는 편견을 깨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사랑방이나 수다방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강 센터장은 소망한다.
“팔달희망지역아동센터는 남창동 이곳에서 12년을 지켜왔어요. 이만하면 지역사회에서 뿌리를 내린 것이겠죠. 제대로 돌보지 않았으면 아이들을 보내지 않을 텐데 참다운 공동체를 지향하는 모습에 많은 지지를 보내는 것 같아요.” 한 번 인연을 맺은 아이들은 이사를 제외하고는 센터를 그만 두지 않는다. 대기자도 여럿 있을 정도니 믿고 맡길 수 있는 든든한 울타리, 팔달희망지역아동센터는 해 내고 있는 것이다.
“한 아이의 올바른 성장은 단순히 가정 내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꿈이 사라진 우리 아이들이 다시 꿈꾸기 위해서는 어울려 살고 있는 지역사회가 관심을 쏟아야죠. 결국에는 가족과 사회, 국가가 모두 아이를 키워내는 것입니다.”
권성미 리포터 kwons02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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