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여기저기에서 합격 소식이 들려왔다. 어렸을 때부터 단련되고 다듬어진 우수한 인재들의 이야기다.
그러던 중 다듬어지지 않은 투박한 돌멩이 하나가 툭 날아왔다. 처음에는 용인외고에 진학했다는 것으로 주목받지만, 그 과정을 혼자 일궜다는 것에서 다시 한 번 유심히 보게 되는 원석이다. 송재호(병천중 졸업) 학생은 “공부해보니 되던데요? 그래서 했어요”라며 계속 싱글벙글 웃었다.
마음을 잡지 못한 초등 시절 =
“초등학교 3학년 때쯤 축구를 했어요. 천안으로 전학 온 학교에는 축구부가 없어서 계속 하지 못했지만요. 그때부터 공부가 손에 안 잡혔고 성적이 계속 떨어졌죠. 게임만 했어요.”
송재호군은 영어를 잘한다고 칭찬 받던 아이였다. 다른 나라 말을 한다는 것이 신기하고, 칭찬을 받는 게 좋아서 영어를 꽤 열심히 했다. 그런데 살던 경기도를 떠나 천안으로 전학을 오며 흥미를 잃었다. 열심히 하던 축구도 안하게 되니 관심 둘 곳이 없었다. 아무 희망도 없이 게임에만 몰두했다.
하지만 고생하는 엄마가 늘 걸렸다. 형과 재호군, 그리고 동생 3형제를 위해 밤낮으로 고생하는 엄마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시는 저녁, 게임이나 TV에 정신 팔린 모습을 보이는 게 죄송했다. 그래서 효도하는 마음으로 문제집을 한 권 사서 풀었다. 전학 오기 전 경기도에서 보았던 시험문제보다 훨씬 쉬웠다. 예전에 배웠던 내용도 다시 풀고, 사회 과학을 공부했다.
시험을 봤는데 1등을 했다. 엄마가 정말 오랜만에 웃으셨다. 엄마의 웃음을 계속 보고 싶어서 또 문제집을 풀었다.
친구와 함께 다시 공부하는 습관 들여 =
“중학교에 입학했는데 처음엔 노느라고 또 공부를 안했어요. 게임과 축구를 잘 해서 아이들에게 알려주다 보니 또 공부와 멀어진 거죠. 그러다가 공부를 열심히 하는 친구를 사귀게 됐어요. 같이 놀려면 늘 공부 얘기를 하니까 저도 안 할 수가 없던데요.”
1학년 2학기 때부터 다시 공부에 전념했다. 학원은 따로 다니지 않고 시험 기간 동안 모르는 건 항상 선생님께 물어보고 매일 새벽 1, 2시까지 파고 또 팠다.
공부에 열중하다 보면 9시쯤 엄마가 오셨고 함께 늦은 저녁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가 ‘일하고 많이 힘들어서 돌아와도 공부에 집중하는 너를 보면 힘이 난다’고 하셨다. 엄마가 기뻐하는 게 좋아서 더 열심히 했다. 처음으로 전교 1등을 했다. 뭔가 이루었다는 뿌듯함이 차올랐다. 그 느낌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또 열심히 했다. 또 1등을 했다.
어렸을 때부터 성적 관리를 해본 적이 없어서 수행이 포함된 예체능 성적은 높지 않았다. 그래서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영어를 중심으로 했다. 이후 중간고사는 1등, 기말고사는 10등 정도를 유지했다.
독하게 이룬 용인외고 입학, “난 결국 해낼 거예요”
“알고 지내던 영어공부방 선생님이 용인외고를 한 번 가보라고 하는 거예요. 알아보니 장난이 아니었어요. 고등학교 입시에 대비한 공부를 한 적이 없어서 갈 수 있겠나 싶었는데 한 번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될 거라고 생각 안 하고 시험 봤는데 합격했죠. 저의 창의성과 잠재력을 보셨대요.”
송재호군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많이 늦은 3학년 1학기부터 외고 준비를 시작했다. 정보도, 준비한 것도 전혀 없어서 수학은 가까운 공부방을, 영어는 천안시 쌍용동에 있는 정상어학원을 다녔다.
하지만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학원에서 만난 아이들은 다 수능 수준의 단어를 보는데, 재호군은 단어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영단어 책 세 권을 사서 여름방학 동안 3000단어를 외웠다. 그리고 학원에 다시 나갔다. 그제야 책 내용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용인외고에 합격했다.
아쉬움은 있다. 고등학교 입시를 겪어보니 학교공부만으로는 많이 부족했다. 상위권 고등학교를 가려면 내신 위주 학교공부로는 어려웠다. 더욱이 우수한 아이들이 모이는 용인외고다. 겁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송재호군은 아예 마음을 풀었다. 진학 후 하위권을 생각한다. 송군이 노력할 때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거니까 쉽지 않을 것이라고 여긴다. 더욱이 어려서부터 단련된 아이들과 이제 막 시작한 자신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을 인정한다.
송군은 “솔직히 공부를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좋은 그릇이 될 수 있는 곳에 가서 그 그릇에 많은 걸 담고 싶죠”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언제나 하위권에 머물지는 않을 걸 자신한다. 하고자 할 때는 언제나 해냈던 저력이 있기에,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스스로를 믿는다.
김나영 리포터 naymo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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