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탐방길-고창읍성
성벽 밟으며 새해 소망 비는 이색체험 ‘고창읍성 성밟기’
올 한해 우리가족 무병장수는 다 내 탓이오!
소복이 쌓인 눈 위로 햇살이 쏟아진다. 며칠째 피할 틈을 주지 않고 몰아붙이던 한파가 꼬리를 감출 즈음에도 세상은 여전히 하얗다. 하지만 쌓였던 눈은 추위란 놈의 배려에도 쉽사리 자취를 감추려 하지 않는다.
날씨가 풀렸다지만 시린 바람에 옷깃을 여미게 하는 겨울날 아침, 발끝에 밟히는 사각사각 눈 밟는 소리가 달콤한 고창읍성으로 떠나본다.
* 눈쌓인 등양루
왜구를 막기 위한 호남의 방어 요충지 고창읍성
전주역에서 한 시간을 훌쩍 너머 달려 도착한 곳은 우리에게 흔히 모양성이라 알려진 조선 중기의 읍성 고창읍성(전북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126)이다. 모양성은 백제 때 고창지역을 ‘모량부리’로 불렀던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주차장에는 날씨 탓인지 외지에서 찾은 관광객은 눈에 띄게 줄었고, 가까운 곳에서 아웃도어 차림으로 산책 나온 사람들이 간간이 보인다.
고창읍성은 지어진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나주진관, 입암산성과 함께 왜구를 막기 위해 호남을 방어하는 요충지로, 단종 원년(1453) 또는 숙종(재위 1674~1720) 때로 짐작한다. 읍성에는 본디 22동의 관아가 있었으나 대부분 화재로 없어지고, 현재 동헌과 객사 등 14채가 복원되었다.
입구에 서 있는 안내도를 통해 몸보다 먼저 눈으로 둘러보는 읍성은 둘레 1.684m, 높이 4m의 구불구불한 성벽에 경사도 있어 성을 따라 걷다보면 겨우내 굳었던 몸을 풀어줄 좋은 선물이 되지 싶다.
고창읍성은 읍성이면서도 읍을 둘러싸지 않고 산성처럼 되어 있으며, 자연석을 잘 맞추어 쌓아 성벽모양이 아름답고 아직도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공북루’라는 현판이 걸린 누각을 들어서면서 과거로의 여행이 시작된다.
새해 밝아 조금 이른 성밟기로 가족의 무병장수 빌어
읍성 안은 인적이 드물어 고요하기 그지없다. 눈앞에 펼쳐진 기와지붕의 건물들과 정원에는 아직도 눈이 탐스럽다.
발도장 몇 개 찍히지 않은 성벽으로 올라본다. 이곳에서는 매년 봄이면 성밟기 행사가 벌어진다. 성밟기는 저승문이 열리는 윤달에 밟아야 효험이 있다고 하며 같은 윤달이라도 3월 윤달이 제일 좋다고 전해온다.
여자들이 돌을 머리에 이고 성 한 바퀴를 돌면 다리 병이 낫고 두 바퀴를 돌면 무병장수를 하고 세 바퀴를 돌면 극락에 간다는 전설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여자들이 머리에 돌을 이고 나른 용도는 겨울에 허물어진 성의 복원과 전쟁시에 벌어질 석전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오랜만에 몸을 푼다는 마음에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마음까지 실어 발걸음을 옮겨본다. 봄이면 철쭉이 만개해 눈을 호사스럽게 하지만 눈 덮인 성벽을 밟는 일도 뒤지지 않는 즐거움이다.
읍성의 동문인 ‘등양루’에 오르자 고창 읍내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그리고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눈사람 몇이 나란히 서서 오는 이를 맞는다.
내려오는 길에 성안에 새롭게 복원한 건물들을 둘러보았다. 고을의 평화와 풍년을 지켜주는 성황신을 모시며 모양성제 때 제사를 올린다는 성황사, 객사인 모양지관, 읍성의 연못 옆에 세워진 2층 누각 풍화루, 동헌 등 모진 풍파에도 꿋꿋하게 고창읍성을 지켜 온 세월과 정신이 느껴진다.
* 읍성 출입문으로 쓰이고 있는 북문 공북루
꽃피는 봄, 눈 덮인 겨울도 좋지만 사시사철 다 찾아보아야 할 고창읍성
고창읍성은 성벽을 사이에 두고 성벽 위를 걷거나 성 밖 철쭉화단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걸을 수 있어 주민들에게 좋은 산책로로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다.
오늘도 띄엄띄엄 삼삼오오 이야기꽃을 피우며 걷는 가족들이 있는가 하면, 두 주먹 불끈 쥐고 단단한 각오로 빠른 발걸음을 옮기며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꼭 이곳을 찾는다”는 한 주민은 “고창읍성은 철쭉이 피는 봄에 꼭 다시 한번 들러 보세요. 여느 소풍장소보다 아름답고 따사로운 곳이예요. 특히 여성분들이 좋아하시는데 식사 후 가볍게 산책도 즐기며 성을 한 바퀴 돌고나면 몸도 맘도 편안해 질 거예요”라고 말하고 훌쩍 떠나버린다.
이리저리 둘러보니 성 안에 하얀 솜모자를 눌러 쓴 소나무들과 맹종죽이 보인다. 겨울임에도 늘 푸른 것이 묘한 향기를 내 뿜는 듯해 머리가 상쾌해지는 기분이다.
성벽을 타고 걷다가 나무 숲길을 거닐고 또 조상들의 흔적을 찾아 헤매다보니 어느 듯 시간은 흘러 뱃속에서 신호를 알린다.
긴 시간 동안 한결같이 한 자리를 지키며 역사를 간직해 온 고창읍성,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난 현재,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역사적 교훈과 현실에 관한 고찰은 물론 자연의 소중함까지 일깨워 주는 명소가 되었다.
해마다 음력 9월 9일 중양절을 고창군에서는 군민의 날로 정하고 답성민속을 기리기 위해 축제를 여는데 그것이 ‘모양성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무병장수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하는 욕망은 다를 바가 없기에 아직도 끊임없이 성을 밟는 사람들은 줄을 잇는다.
여기서 잠깐! 2킬로에 가까운 성벽을 하루도 빠짐없이 걷다보면 자연스레 무병장수는 따라오는 것 아닌가?!
김갑련 리포터 ktwor04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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