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수원여성’을 만나다-이웃문화협동조합 운영위원장 송주희
느리게 가기란? 더욱 깊고 단단해지는 삶의 비법!
얼마 전, (주)이웃(EWUT) 대표란 직함을 내려놓았다. 지난 몇 년간은 ‘잔다르크의 삶’이었던 것 같다며 웃는 송주희 대표, 아니 이웃문화협동조합추진위원회 운영위원장. 오죽하면 꿈에서도 일을 했을까. 이랬던 그의 삶이 요즘 여유로워졌다. 세상에서 한 발짝 물러난 낡고 고즈넉한 동네 팔달구 지동, 이웃센터, 그리고 서른셋 청춘 송주희, 어울릴 듯, 안 어울릴 듯 이야기는 그들의 운명적인 만남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아지트 프로젝트의 포문을 연 이웃센터, 어우러짐의 과정
수원에서 나고 자랐지만, ‘지동’은 이름만 들어봤다. 그런 지동을 2011년 9월에 처음 만났다. 오래된 집과 그 주변의 좁고 투박한 골목에 왠지 끌렸다. 한번 꽂히면 저지르는 스타일, 송주희 씨는 지역민들과의 문화향유를 위한 거점으로 지동을 찍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집세가 싸다는 점도 물론 작용했죠.(웃음) 이웃(EWUT)센터는 아지트(아트+지동+트랙)프로젝트의 첫 번째 공간, 문화사랑방의 성격으로 만들어졌어요. 누구라도 들어와서 자유롭게 책을 보며 차 마실 수 있는 공간인데, 외부에서 더 많이 오시더라고요. 지동이라는 동네가 그래요.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라 정도 많지만, 또 그만큼 배타적이라고 할까요.” 동물원 구경하듯 뭐하는 덴가 들여다보는 어르신들의 반응 덕분에 ‘이웃센터’라는 간판도 내걸지 않았다. 이방인처럼 느껴지지 않게, 있는 듯 없는 듯 주변의 것들과 잘 어우러지자 싶었다. 하지만, 어르신들과의 소통과정은 녹록치 않았다.
“제가 봐도 전 참 친해지기 힘든 스타일이에요. 뭐든지 정확하게 똑 부러지게 얘기하는 편이라 어르신들과 티격태격하는 일도 많았고…. 이런 일을 하려는 분들이 있다면 사전에 1년 정도 프로그램을 하면서 주민들의 성향을 파악하라고 일러두고 싶어요. 그래도 지금은 끈이 닿아있는 정도라고 할까, 우리 동네 많이 알려줘서 좋다고, 자부심이 생겼다고 말씀해주시거든요.” 그는 아예 지동으로 이사를 왔다. 북적대지 않는 잔잔한 이곳이 좋아서다.
누구에게나 찬란했던 때가 있었지, 핑퐁음악다방에서 나누는 삶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핑퐁음악다방은 예술과 스포츠를 블랜딩한 ‘탁구장&음악다방’이다. 아지트프로젝트의 2탄 핑퐁음악다방에선 시니어바리스타가 내린 깊은 향의 커피와 추억의 LP음악을 음미할 수 있다. (주)이웃의 ‘내가 하고 싶은 것’에서 ‘어르신들을 위한 공간’으로 옮겨왔다는 점에서 지동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 더 깊어진 게 아닌가 싶었다.
“어른들이 좀 편해지긴 했죠. 다방문화를 떠올리며,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카페문화를 어르신들에게도 드리고 싶었어요. 아직은 쭈뼛해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쓰레기 버리러 나오신 할머니 붙잡고 커피 한잔 드시고 가라고 할 때도 있고, 제가 어르신들을 불러 모으죠.” 점차 부정적이던 시각이 달라졌고, 이해까지는 아니지만, 그분들이 살아온 세월의 다름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성곽산책하면서 우연히 할머니 한 분을 만났는데, 그분에게도 찬란한 인생의 한 때가 있었더라고요. 각자의 인생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 좀 철학적이 됐죠.” 자신이 하는 일이 그분의 인생을 다 바꿀 수는 없지만, 어느 순간 작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 않을까, 굳이 큰 변화를 시키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냥 그 동네와 보조를 맞추며 천천히 함께 가는 것, 그는 지동에서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다.
이웃공방에서 키우는 이웃문화협동조합의 꿈
하지만 지동에서의 일과는 늘 빠름, 빠름. 리더라는 자리가 그랬다. (주)이웃의 대표로서 직원의 월급을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감에 남는 시간들은 커피수업강사, 디자인작업 등 여러 아르바이트를 했다. 영업에, 회계에 혼자서 할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추진력만 있을 뿐, 완벽주의적인 성격에 칭찬하는 것도 인색하니 말은 안 해도 팀원들이 많이 힘들어했을 거라는 송 위원장은 “역시 난 지금의 자리, 2인자가 편하다”며 말을 이었다.
“이웃이란 조직을 만들 때부터 협동조합에 관심이 많았어요. 이전에 청년둥지라는 프로젝트로 활동할 때, 수원시 주최 사회적 기업 창안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던 것도 ‘문화협동조합’이란 아이디어 때문이었어요. 불가피한 사정 때문에 법인으로 시작했던 걸 ‘이웃문화협동조합’으로 돌려놓으려는 거죠.” 자신보단 이웃문화협동조합이 하는 일을 알리고 싶다는 송 위원장은 아지트프로젝트의 3탄이라고 할 수 있는 ‘이웃공방’을 조합원들의 출자금으로 운영되는 협동조합사업의 신호탄이라고 했다. 지역예술가의 공동 창작공간이자 주민을 위한 교육, 전시, 상품판매도 이뤄진다.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기회를 주고, 사람을 키워내면서 조합원들과 의견을 조율하며 함께 갈 수 있다는 것, 그는 협동조합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송주희, 느림을 받아들일 줄 아는 진정성 깊은 여자가 되다
“프로젝트 하면서 여자고, 나이가 어리다 보니까 보수적인 집단과의 업무적인 부분에서 괄시받는 부분이 많았어요. 스킬이 부족할 뿐이지, 진정성은 더 깊다고 생각해요. 이만큼 올 수 있었던 것도 고향인 수원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이었고요.” 20대 후반 2년여의 수원여성회 활동 동안 수원의 웬만한 시민단체는 다 만나봤고, 또 2년여 동안은 청년둥지로 활동하며 재능벼룩시장 사업(2010년 수원시민창안대회 1등 수상)도 진행했다.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는 4년이란 시간 동안 그는 빠른 성장의 시간을 가졌다. 그래서일까, 20대 초반 찬란한 연애를 끝으로 연애의 기억이 없다. “혼자 놀기도 잘 하고,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그래서 연애필요성을 못 느끼나 봐요. 외로움에 둔하다고 할까….” 그는 이젠 협동조합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여유롭게 연애도 해볼까 싶다며 쑥스러워했다.
요즘 가족들은 그를 변했다고 한다. 엄마를 이해하고, 대화도 잘 하게 됐으니 말이다. 그간 일은 고됐지만, 지동이 자신을 여유롭게 해줬다고 했다.
“지금은 퇴행하는 정도로 느리게 가고 있는 것 같아요. 협동조합은 느리게 가야 하는데, 그러고 보니 지동과 참 많이 닮았네요. 그냥 좋아요. 천천히 단단해져가는 이 과정이요.” 배울 것도 많고, 품고 있는 것도 많은 젊은 이 여자 송주희, 참 예쁘다.
오세중 리포터 sejoong7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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