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칠순, 뜻 깊게

일흔 번째 생신 “아버지 어머니, 정말 감사합니다!”

지역내일 2012-12-18

‘옛날’에는 태어난 간지(干支)의 해가 다시 돌아오는 61세가 되는 해에 회갑. 환갑이라 하여 큰 잔치를 벌였다. 하지만 요즘 어르신들은 회갑연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하게 하신다. 잔치를 할 만큼 ‘늙지 않았다’는 것이 당신들의 이유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고희연으로 잔치를 미루는 경우가 많다.
칠순을 맞는 자식들의 마음이 바쁘다. 어떻게 해야 좀 더 특별한 칠순을 보낼 수 있을지, 남들에게 쳐져 보이진 않을지, 이것저것 생각도 많다. 여기, 부모님 칠순을 누구보다 뜻 깊게 보낸 우리 이웃 이야기를 소개한다. 


부모님, 아이들과 함께 한 해외여행
친정아버지의 일흔 생신을 맞은 백지민(46·대치동)씨. 두 동생들과 의논 끝에 미국에 거주하는 막내 동생은 형편에 맞게 ‘알아서’ 현금을 드리고, 국내에 거주하는 백씨와 여동생은 부모님을 모시고 가까운 중국으로 여행을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아이들이었다. 고3, 고2, 고1, 중2인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가자니 시간을 맞추기가 힘들었던 것. 아이들 시간에 맞추자니 최성수기인 겨울방학을 이용해야 하는데, 여행경비가 비수기의 두세 배에 달했다. 대책회의를 거쳐 고3 수시전형이 끝나고 정시를 치르기 전인 11월 말에 다녀오기로 결론을 내렸다. 이제 다른 아이들의 기말고사가 걱정됐다.
백씨는 “주변에 나이 많은 인생 선배들의 ‘인생에 있어서 더 중요한 게 뭔지를 깊이 생각하라’는 조언에 결단을 내리게 됐다”며 “시험이 2주 정도 남았지만 아이들을 믿고 여행을 다녀왔다”고 말했다.
여행을 결정하기까지는 이것저것 생각할 게 많았지만 부모님과 함께 하는 여행은 정말 뜻 깊었다. 오랜만에 손자들과 함께 하는 부모님도 정말 즐거워하셨다.
백씨는 “이번 여행을 기회로 부모님이 더 늙으시기 전에 자주 함께 여행을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마음만 먹고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가족여행”이라고 말했다. 또 “할아버지 할머니 손을 잡고, 또 부축도 하며 같이 걸음을 느리게 맞추는 아이들을 보며 이런 경험이 시험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부모님의 인생, 되돌아보다
시아버지의 칠순, 가까운 친지들만 모시고 저녁 식사를 하기로 한 김성희(47·구의동)씨. 바쁜 남편을 대신해 장소 예약과 초대전화 등등 신경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뭔가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는 김씨. 남편에게 기억에 남을 이벤트를 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오랜 고민 끝에 ‘아버지의 인생’을 사진으로 간추려보자는 결론을 얻었다.
낡은 앨범을 찾아낸 남편은 시간이 날 때마다 앨범을 뒤척이며 사진을 골랐다. 시동생과 시누이도 같은 작업에 몰입, 100여 장의 사진을 엄선했다. 사진을 영상으로 만드는 작업은 컴퓨터그래픽 일을 하는 시동생이 맡았다.
친지들과의 식사 시간, 대형 화면에 시아버지의 인생 파노라마가 펼쳐졌다. 화면이 바뀔 때마다 웃음과 탄식, 그리고 흐느낌이 흘러나왔다. 특히 10년 전 돌아가신 시어머니의 모습이 화면에 나올 땐 시아버지도 울음을 참지 못하셨다고.
준비된 영상이 모두 끝나고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시아버지를 향한 박수가 오랜 시간동안 이어졌다.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옛날 사진 속 모습과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집에 와서도 그 영상을 몇 번이나 다시 봤어요. 볼 때마다 눈물이 나더라고요. 먼 훗날 우리 아이들이 할아버지와 가족들을 추억할 수 있는 우리 집만의 보물이 될 것 같아요.”


4남매의 정성, 부모님께 돌려드려요
2남2여 4남매의 맏이인 최지연(48·잠실동)씨에게 올해는 아주 뜻 깊은 해다. 친정 부모님이 동시에 칠순을 맞이하는 해이기도 하고, 자신의 결혼20주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최씨는 20년 전 결혼과 동시에 부모님을 위한 통장을 마련했다. 매달 5만원씩 꼬박꼬박 모았다. 동생들도 ‘기혼’이 되는 순간부터 같은 액수의 돈을 더했다. 막내 여동생이 막내인 이유로 금액을 깎아달라고 했지만 ‘안 된다’는 최씨의 단언으로 매달 같은 액수의 금액이 통장에 입금됐다. 맏이로서 언제나 더 많은 돈을 쓴다는 걸 동생들도 알기에 더 이상의 불만은 제기되지 않았다고. 2000년이 되던 해부터 매달 10만원으로 그 액수를 올렸다. 부모님의 생신이나 가족여행을 갈 때면 통장의 돈을 쓰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최씨는 통장의 돈에 손도 대지 않았다.
부모님 칠순을 앞두고 동생들을 불러 모은 최씨. 동생들과의 의논 끝에 통장에 모아진 돈 중 5000만원을 부모님 칠순 때 ‘선물’로 드리기로 했다. 나머지는 두 분의 노후를 위해 남겨두기로 하고.  
최씨는 “오래 전 은퇴하시고 뭔가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어 하시는 아버지에게 조금이라도 자식들의 마음이 도움이 됐으면 한다”며 “동생들에게도 고맙고 건강하게 칠순을 맞이하신 부모님께도 정말 감사드린다”고 했다.


박지윤 리포터 dddod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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