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남 앞에만 서면 얼굴이 새빨개져서 말을 한마디도 못했다. 반 전체가 순서대로 교과서를 읽는 국어시간을 지독히도 곤혹스러워했다. 스스로도 그런 자신이 못마땅해 혼자 머리를 쥐어박으며 자책하기 일쑤였다.
영동일고의 ‘박가이버’로 불리며 전국 창의력챔피언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박세호군의 어린 시절 모습이다. “발명이 소심한 내 성격을 싹 바꿔놓았어요.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은 현재의 바뀐 내 모습을 보고 놀라요.”
베테랑 발명교사 만나 재능을 키우다
초중고 시절 내내 ‘발명’은 그의 단짝이었다. 블록을 끼고 살았고 고무동력기 만들기를 즐겼던 그는 초등 5학년 때 방과후교실에서 ‘프로그램 로봇’을 처음 만났다. 흥미와 관심, 타고난 손재주까지 더해져 전국로봇올림피아드대회 등 각종 대회에 학교 대표로 출전하면서 상을 탔다. 주위의 칭찬을 받다보니 백방으로 관련 자료를 모으며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운 좋게 당시 발명으로 유명세를 타던 아주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로봇, 큐브, 펜 돌리기처럼 ‘손맛’이 필요한 분야는 학교 안에서 자타공인 달인이었어요. 내 손재주를 눈여겨본 발명반의 박인수 선생님이 창의력올림피아드대회 참여를 권유하시더군요.”
그의 첫 멘토인 베테랑 발명교사 박인수 선생과의 인연이 시작되었고 취미가 특기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무 조각 깎고 재활용품 이것저것 구해다 조합해서 발명품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 재미났어요. 선생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면서 궁금한 것 물어보고 국내외 각종 대회 정보를 얻으며 많이 배웠어요.”
아주중 발명반에서 만났던 친구들은 졸업 후 각기 다른 고교에 진학하면서 뿔뿔이 흩어졌다. 하지만 다들 창의력올림피아드대회에 다시 한 번 참가해 보고 싶다는 욕심을 품었고 박군을 비롯해 잠신고, 정신여고 등 인근 고교에 다니는 친한 친구들끼리 뭉쳐 팀을 짰다.
전국 대회에서 상위권에 입상하면서 한국 대표로 미국에서 열리는 세계창의력올림피아드대회에 출전하는 행운을 거머쥐었다. 결과는 전체 팀 중 12위. 미국팀이 1위부터 11위까지 휩쓸고 외국인 참가팀 가운데는 제일 좋은 성적이었다.
“만족스러웠어요. 무엇보다 상에 목숨 걸며 대회 기간 내내 연습벌레처럼 지내는 한국팀과 달리 축제처럼 대회를 즐기는 내 또래 외국 학생들의 모습이 이채로웠어요. 서툰 영어에 손짓, 몸짓 섞어가며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 그네들의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는 값진 기회였어요.”
신생 발명동아리 ‘승승장구’
그 후 DI창의력올림피아드에서 2011년 르네상스상, 2012년 금상, 창의력챔피언대회에서 금상 등 연거푸 수상하면서 영동일고 내에서 박 군은 발명의 실력자로 입소문 났다. 페이스북, 카톡을 통해 문의가 잇따랐고 함께 대회를 준비하자는 제안도 꽤 많이 받았다.
“발명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많은 걸 알고 내심 놀랐죠. 이 분야는 시간 투자를 많이 해야 하기 때문에 한두 번 대회에 나가 경험을 쌓고는 입시준비 때문에 중도에 그만두는 학생들이 태반이에요.” 중학교 시절부터 갈고 닦은 그만의 생생한 경험담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이 많자 아예 ‘울트라팩토리’란 교내 발명 동아리까지 만들었다.
박군은 그동안 모은 대회 정보, 준비 요령을 동아리 회원들에게 공개하며 노하우를 전수했다. 동아리 회원 중 7명이 팀을 꾸려 또 다시 창의력챔피언대회 문을 두드렸다.
“대회에서는 구조물 만들기, 연극, 미션 수행을 골고루 평가하기 때문에 팀워크가 중요해요. 다들 학교와 학원 수업을 피하느라 한밤중에 모여 새벽까지 연습했어요. 신경전, 다툼이 많아 고생도 많았지만 덕분에 설득과 소통의 중요성을 덤으로 얻었지요.”
신생 동아리지만 영동일고팀은 2012년 창의력올림피아드대회에서 고등부 대상, 세계지적재산권기구 사무총장상을 수상하면서 승승장구했다.
‘창의적 건축가’ 꿈꾸다
“부끄럼쟁이였던 내가 천연덕스럽게 연극에 출연하고 동아리회장 자격으로 심사위원들 앞에서 우리 팀을 소개했어요. 마이크 공포증 없애려 대본 달달 외며 지독히 연습한 결과지요. 상을 탄 것보다도 자신감을 얻은 게 더 값진 선물입니다. 나처럼 소심했던 한 후배가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성격이 바뀌었다며 후배 엄마가 고맙다는 인사까지 했을 때는 정말 뿌듯했어요.” 박군이 속내를 털어놓는다.
동아리 회원들끼리 뜻을 모아 송파구내 발명에 관심 많은 초등학생들을 학교로 불러 구조물 만들기 시범을 보이며 발명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공부 보다는 발명에 올인했던 그는 요즘 공부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특히 수학, 과학에 열을 올리는 중이며 성적도 상승세를 타고 있다. 뚜렷한 장래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대회 준비를 위해 숱하게 구조물을 만들면서 건축에 흥미가 생겼어요. 또 엔지니어이자 발명가이고 창의 건축가이기도 한 미국의 리처드 버크민스터 퓰러를 나의 롤모델로 품게 됐지요.”
미래 꿈을 위해 일단 성적부터 최대한 끌어올려야 한다며 겸연쩍게 웃는 박군에게서는 자기 진화를 거듭하며 어린 시절 재능의 씨앗을 끝까지 키워온 ‘끈기의 저력’이 엿보였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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