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손 양복점’을 운영하는 황훈(56)디자이너는 ‘엄마손 쇼핑센터’가 ‘엄마손 백화점’이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28년을 한결 같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휴업을 결정해야 했던 힘든 시기가 있었지만 이 고비를 넘기기 위해 그동안 운영해오던 양복점 운영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고치는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기능성 양복으로 새로운 변화 시도
그와의 이야기는 무엇보다 심각한 경영난을 빼놓고는 시작할 수 없었다.
“송파는 중산층이 많은 지역입니다. 그 중산층이 무너져 가고 있어요. 양복 서너 벌 맞추던 사람이 한 벌 맞추기도 어려운 때입니다. 예단이 많이 오가는 곳이 양복점이다 보니 누구보다 달라진 세태를 몸소 실감하죠. 이 근처에만 해도 양복점이 15군데가 넘던 황금 같은 시기가 있었습니다. 지금 남은 곳은 여기 하나뿐입니다.”
그는 자구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15년 전부터 연구해 왔던 그만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기능성 양복을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한 것이다. 또 천 명 이상의 고객 명단이 적힌 수첩으로 수십 년간 문자 한통 보내지 않던 관행도 깼다. ‘위기를 기회다’라고 생각을 전환한 것이다. 지금은 직접 전단지를 들고 사무실이나 인근 시장을 다닐 만큼 홍보에 적극적이다. 맞춤양복의 최대 난점인 높은 가격을 낮추기 위해서 직접 모든 제작 작업을 수작업으로만 고집하던 기존 방식에서 공장을 넓혀 월급제 재봉사를 두는 방식을 도입하기도 했다.
명품은 재료와 기술과 디자인 3박자가 맞아야
19세 때 고향에서 양복점을 하는 형님의 권유로 시작하게 된 양복 만드는 일은 평생 천직이 되었다. 일이 힘들고 고된 만큼 좋아하고 즐기지 않으면 불가능 했으리라.
“저는 정말 제 일이 즐겁습니다. 오랫동안 일해 오면서도 한 번도 싫증을 느껴 본적이 없어요. 지금도 제가 바느질 수작업을 하지만 일이 끝이 없어요. 양복 웃옷 하나에 80조각이 들어갑니다. 양복 만드는 일은 신체를 다루는 일이다보니 특히 어려움이 많습니다.”
배가 나온 사람, 마른 사람, 근육으로 가슴이 튀어 나온 사람 등등 일일이 다양한 고객을 상대하면서, 단점을 보완하는 편한 옷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기술을 연구하고 익히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마침 양복점을 찾은 배재헌씨는 이 양복점의 단골이 된지 5,6년이 되었다고. 대를 이어 아들과도 이 집에서 양복을 맞춘다고 한다.
“설명을 잘해주시고 이게 어울리겠다 해서 입어보면 잘 맞고 만족하니까 다시 찾아오게 되요. 어깨가 다른 사람에 비해 넓어 기성복은 입으면 불편한데 맞춤 양복을 입으면 움직일 때 편해요. 활동하기도 좋고. 그러니 이 양복을 입으면 기분이 좋고 자꾸 찾아오게 된다”며 웃어 보인다.
수많은 고객을 상대하다 보니 단골고객과는 가족처럼 지낸다는데 그중에서도 가락시장에서 일하는 70세 넘은 고객은 특별하다.
“시장에서 험한 일을 하다 보니 허리가 굽고 앞 목 부분이 쳐져 있었죠. 기능성 양복을 맞춰드리니 잠옷 입은 듯이 편안하다고 하는 그분 말씀에 보람을 느꼈습니다.”
‘황훈’이라는 이름을 걸고
그의 양복점에 걸린 가봉중인 양복 웃옷 소매를 보니 유난히 반짝이는 단추가 눈에 띈다. 자개로 만든 단추라고 하는데 이뿐 만 아니라 안감도 공단을 쓴다며 같은 값을 받아도 최고로 좋은 재료를 쓴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생전에 디자이너 모임이나 디자이너 클럽에서 자주 뵙던 故앙드레 김 선생이 그의 롤 모델이라고. 앙드레 김처럼 ‘황훈’이라는 브랜드를 남기고 싶은 꿈이 있다.
“정말 홍보가 확실하게 되려면 내가 만든 양복을 입은 사람이 멋지다는 말을 듣게끔 만들면 됩니다. 그러면 그 주변의 사람들까지 찾아오게 되죠. 그렇게 만들어 왔고 앞으로도 황훈이 만든 옷을 입은 사람은 멋지다는 말을 듣게 할 겁니다.”
황훈 디자이너가 말하는 기능성 양복의 멋스러움이란 옷과 사람이 하나로 어울릴 때 나타나는 멋이다. 그 멋이란 입는 사람의 편안함에서 나온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일주일에 두 번은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공장과 거래처를 돌고 매일 운동과 자기 전 독서를 잊지 않는다. 자신이 바느질을 하는 기능공이니만큼 자기관리는 기본이자 필수라고 단호하게 얘기한다. ‘양장 양복의류 전국 인력 협의회 회장’을 7년 동안 맡으면서 그동안 수많은 양복쟁이들을 만나며 크게 느낀 점이 있다면 실력이 모자라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은 자꾸 자신이 바느질한 것을 돌아보지만 실력이 확실한 프로는 한 번에 정확한 선을 긋고 다림질도 단번에 끝낸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경영난을 이유로 양복점 문을 닫을 때 회생의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자신의 작업 스타일까지 바꾼 그야말로 진정한 프로였다.
오현희 리포터oioi33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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