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장남을 교육시키기 위해 온 가족이 마음을 모아 뒷바라지를 하고 그 장남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집안을 일으키고 성공가도를 달렸다는 이야기는 연속극과 소설의 주제로, 또는 어느 집의 미담으로 심심찮게 전해지던 옛이야기다. 하지만 최근 지자체와 주민, 학교가 하나가 되어 꿈이 자라게 하고, 그 꿈이 실한 열매를 맺어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한 사례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한 학년 3학급의 횡성고등학교(교장 고범수)에서는 학교의 체계적인 내신 관리와 지자체의 지원에 힘입어 서울대학교(경영학과 홍신기), 서울대학교(지구과학교육과 김지환),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임현식) 등에 줄줄이 합격해 화제다. 시골학교가 이뤄낸 작은 기적의 비결을 들어보았다.
● KEM반 운영으로 자율적인 학습 유도
횡성고는 9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한다. 자율학습을 마치고 일부 학생이 귀가하고 나면 원하는 학생이면 누구나 기숙사로 이동해 KEM반, 영어회화반, NIE활동반, 헬스반 등 자신이 하고 싶은 분야의 활동들을 찾아 한다. 공부를 하기 싫어하는 학생들이 늦게까지 남아 공부하는 것이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학교의 방침 덕분이다.
KEM반은 Korean(국어), English(영어), Mathematics(수학)의 첫 글자를 따 만든 것으로 각 과목의 교사들이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공부를 더 하려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개별지도를 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수업이다. 심화학습을 원하는 학생이나 학습에 관련된 어떤 질문이라도 할 수 있으며 공부하려는 열의를 가지고 있다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홍은만 교감은 “교사들이 순번을 정해 늦은 시간까지 근무하는 것이 피곤할 법도 한데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하려는 모습을 보면 절로 의욕이 생기고 교사로서의 사명감을 느낀다”며 열정적으로 수업하는 교사들의 말을 대신했다.
●개별적 특성을 고려한 맞춤 교육
횡성군의 예산을 지원받아 토요일에 실시하는 맞춤형 교육프로그램 중 논술 및 면접 강좌는학생들의 진로개발과 교사의 진학지도 효율성을 극대화 시켰다. 자신이 원하는 학교의 전형에 맞춰 준비해 더욱 효과가 컸다.
과학고등학교에 근무하다가 초빙 교사로 횡성고에 근무하게 된 문정윤 교사(3학년 부장)은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없어 의기소침하고, 미래에 대해 폐쇄적인 생각이 많은 아이들의 생각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았다. 데이터를 분석해 부족한 점을 찾고 보완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수능시험이나 수시 전형에 필요한 것들을 전혀 모르는 아이들의 생각을 바꾸고, 내신이 필요한 아이들은 내신 관리를 별도로 하고, 스펙이 필요한 아이들은 각종 대회 출전, 장학금 혜택 등의 경쟁구도를 만들어 동기부여를 한 것이 큰 효과를 거둔 것 같다”고 말했다.
●인재양성관과의 긴밀한 협조
횡성고 학생들이 대입에 성공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요인은 횡성군에서 추진하는 인재양성프로그램이다. 인재양성프로그램은 횡성군에서 지역의 인재를 키우는 것이 가장 급선무라고 생각해 만든 교육프로그램이다. 인재육성관은 학교의 행사들과 시험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긴밀하게 협조하여 심화학습은 물론 교육컨설팅까지 해주어 서울대와 연세대에 합격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 학교에서는 철저한 내신관리로, 인재양성관에서는 심화학습과 컨설팅으로 전 방위적인 작전을 펼쳐 접근한 것이 적중했다
●사제 간의 예를 지킴으로 교권을 세워주는 교육
횡성고등학교 고범수 교장은 교사들의 권위를 세워주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교권의 하락으로 인해 불미스런 문제가 발생하고 사회적 이슈가 되는 일은 이곳에서 찾아볼 수 없다. 쓰리아웃 제도를 도입해 교사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 등을 엄격하게 제한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은 어떤 압력에도 흔들리지 않고 교권을 세우는데 앞장서는 관리자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홍은만 교감은 “어떻게 보면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2012년 들어 학교가 너무나 평화롭고 행복해졌다”며 리더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에 합격한 홍신기 학생
입시 정보 수집 빠를수록 유리해
이미 서울대 경영학과 M.T를 다녀온 홍신기 학생은 “학생들을 만나보니 무조건 공부만 한 아이들 같지 않아서 좋았다. 다양한 경험을 한 친구들이 많더라”며 학교생활에 대한 설렘을 나타냈다. “중학교 때 특목고를 준비하느라 수학 영어 등 단과 위주의 학원을 다녔다. 시골에 살다보니 대학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 인재육성관에서 심화된 교육과 컨설팅 과정에서 알게 된 다양한 정보가 큰 도움이 됐다”며 자신은 정보가 너무 부족했지만 후배들은 “자신의 꿈이나 대학에 관한 정보를 되도록 빨리 찾아보라”고 충고했다.
경영 컨설턴트가 꿈인 홍 군은 “중학교 때까지 막연하게 생각하다가 자기개발서 ‘단 한 줄의 승리학(작가 김형섭)’을 읽고 꿈을 구체화시켰다”며 한 권의 책이 삶의 방향을 제시해 줄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서울대학교 지구과학교육과에 합격한 김지환 학생
시골 아이들의 희망이 되고 싶어
“중학교 땐 성적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공부는 시간싸움이라 생각한다. 과목별로 공부해야 할 분량을 정해서 다하지 않으면 잠을 자지 않았다. 하루 8시간 정도 공부하고 4~5시간 정도 잤다. 공부는 끈기가 있어야 잘할 수 있는 것 같다. 잠이 부족해서 가끔 수업시간에 졸기도 해서 선생님들께 죄송하다”며 솔직한 모습을 보였다.
김 군은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신경을 많이 써주지 못했다. 오히려 동생들을 돌보며 공부했다”며 공부는 물론 가정에서도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모습을 보였다.
사교육은 거의 받지 않았다는 김 군은 “의대에 가고 싶었지만 성적이 되지 않아 두 번째 꿈인 교사를 꿈꾸게 됐다. 특히 이곳과 같은 시골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교사가 되고 싶다. 시골에서 공부해도 좋은 학교에 입학해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며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합격한 임현식 학생
다양한 분야에 관심 갖는 것이 관건
임현식 학생은 “횡성고 출신인 아버지와 학교에서 같이 생활했다. 아버지가 교사라 친구들이나 선생님들도 기대가 커서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다. 결과가 좋아서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즉흥적인 성격 탓에 그날그날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스타일이어서 특별한 공부 방법은 없다고 말한다. “원래 특목고에 갈 생각으로 원주로 학원을 다녔다. 학교에서 다루지 않는 다양한 문제들을 다루어주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인재육성관에 들어가기 전인 고2때까지 수학 과외를 받으러 다녔다. 혼자 찾아서 하기보다 사교육의 도움을 많이 받은 편이다.” 똑같은 농어촌특별전형이지만 서울대와는 달리 논술과 면접을 치룬 임 군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졌던 게 면접 때 큰 도움이 됐다. 후배들이 공부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며 충고의 말을 전했다.
횡성군 교육발전위원회 위원장 조원용 미니 인터뷰
교육은 백년지대계, 다리 하나 놓는 것보다 중요한 일
조원용 위원장은 “우수한 인재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은 열악한 교육 여건 때문이다. 교육여건 개선을 위해서 각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22명의 위원들로 구성된 교육발전위원회를 만들었다. 이는 교육 정책에 대한 자문을 맡는 기구로 인재 육성을 위해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모든 정책에 자문을 맡는다”고 말했다.
횡성군은 교육발전 기본 조례를 만들어 지역 인재 발굴과 육성에 대한 의지를 강한 의지를 보였다. “적지 않은 예산이 교육에 쓰이는 일이 다리 하나를 놓는 일보다 중요한 일 아니겠냐”며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말했다.
한 학기에 한 번 시험을 치러 각 학년 상위 20명을 선발하는 시험에 통과한 학생이면 해외여행의 기회도 주어진다. 또한 선발된 학생은 서울의 유명학원 강사의 심화된 강의를 직접 들을 수 있고 30%만 자비를 들이면 교육 컨설팅까지 받을 수 있다.
인재육성관에 지원했으나 합격하지 못했거나 기회를 얻고 싶은 학생의 상위 25명에게는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횡성 관내에 있는 학원에서 공부하도록 학원비를 대주면서 공부를 시켜 다시 경쟁할 수 있도록 했다. 목표를 가지고 공부하다보니 개인의 성적이 향상됨은 물론 전체적인 성취도가 높아지는 효과를 보게 됐다.
조원용 위원장은 “무엇보다 횡성군의 정책이 결실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지역 사회를 믿고 아이들을 횡성 지역에 남아있게 해준 학부모들의 결단과 횡성군민의 교육 참여 의식이 높았기 때문”이라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최선미 리포터 ysbw@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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