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의존인 사람이 자신의 과음의 문제를 부정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 이 부정하는 습관이 단지 이번 음주 사건에 대해서만 그러할까? 사실은 과음 습관과 이에 따라 당연히 겪을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인생의 문제들을 그동안 내내 늘 부정하고 살아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병원을 처음으로 찾은 경우, 대개는 이제는 명명백백하게 드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알코올의 신체적 후유증 이외에 여전히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는 수가 흔하다. 자신의 음주 습관을 포함하여 개인적, 가정적, 직업적, 경제적, 사회적 영역 등 인생의 어디에서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가정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자녀들은 모두 어른들의 말을 잘 듣고 학교에서 모범생이라고 한다. 아내는 맏며느리로 대가족인 집안의 대소사를 빠짐없이 잘 챙겨 누구한테서나 칭찬을 받는다고 한다. 식구들은 모두가 화목하여 다른 집안들이 부러워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깊이 들여다보면, 과음의 문제가 있는 집안 치고 가정이 편한 집이 한 곳이라도 있을까?
단주가 지속되어 머리가 맑아지고 자신에게 조금씩 솔직해지는 것이 가능해지면 모든 것이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오히려 진실은 자신이 막연하게 여겼던, 그리고 그렇게 여기고 싶었던 것과는 정반대인 수가 흔하다는 것이다. 자신에 대하여 더 깊이 알면 알수록, 자신의 삶의 더 많은 부분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새삼 인식하게 되고, 그것들을 늘 부인하고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음은 흔히 주장하는 음주의 습관과 관련한 대표적인 부정의 사례들이다.
나는 몸이 튼튼하여 아무리 많이 마셔도 다음날 거뜬하다. 늘 남들보다 더 일찍 일어나고 피곤하지 않다.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다음날 제 시간에 일어나고, 전날 아무리 취했어도 다음날 내가 해야 할 일을 못 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내가 알코올중독이라고?
나는 어른이 되기 전에 어려서부터 더 빨리 술을 배운 것이 아니다. 남들처럼 사회생활하면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접대하고 돈 버느라 좀 마셨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절대로 혼자 마시지 않는다, 그런데 무슨 알코올중독이냐?
나는 한 번도 필름이 끊긴 적이 없다. 술을 마시면 더 정신이 또렷해진다. 아무리 취해도 정신을 잃지 않는다. 취하면 운전도 하지 않을뿐더러, 취했다고 싸운 적도 없다.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절대로 실수하지 않고, 술 때문에 법을 위반한 적도 없다. 그런데 내가 왜 알코올중독이냐?
나는 퇴근하면 집에서 반주로만 술을 마신다. 내 돈으로 술사서 혼자 조용히 술 마신다. 남에게 주정을 부리거나 귀찮게 하거나 남에게 피해를 줄 일이 없다. 내가 술 좀 마신다고 애들이 싫어하고 아내가 힘들어하지 않는다. 집안에 문제가 생길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내가 알코올중독이라고?
이런 모든 부정들이 단지 ‘아직까지는’일뿐이라는 사실을 빨리 깨달으면 좋겠다.
강원알코올상담센터 신정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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