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인] 사진작가 모동신

자연과 벗 삼은 사진 인생 40년

지역내일 2012-12-26

‘현대판 김정호’가 되어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수십 바퀴 돈 모동신. 금강초롱, 수수꽃다지, 솜다리 등 산과 들에 꼭꼭 숨어있는 귀한 자생식물을 렌즈에 담아 세상에 선보였다. 자연과 벗하다보니 ‘실천’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자연보호 운동에까지 뛰어들었다. 삶의 화두로 ''사진''과 ''자연''을 꽉 붙든 채 돈기호테처럼 살아온 모동신 작가의 40년 인생스토리를 들어보았다.


칼바람 부는 영하의 날씨. 광진문화예술회관 사진반 수강생들과 양평으로 출사를 다녀온 길이라며 모동신 작가는 두꺼운 파카 차림에 목도리로 꽁꽁 싸매고 나타났다. 전국의 자연을 카메라에 담느라 비바람, 폭설, 땡볕의 악천후에 어지간히 단련된 덕분인지 예순의 그는 쌩쌩해 보였다.
“사진작가의 3요소가 체력, 밝은 눈, 창의적인 생각입니다. 좋은 사진 오래도록 찍으려면 건강관리가 중요하죠.” 다부진 말투다. 연꽃, 각종 야생화, 초록이 눈부신 숲속 풍경 등 그동안 찍은 그의 사진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장대비를 뚫고 동해시 무릉계곡을 오르다 정상 부근에서 라일락으로 잘 알려진 수수꽃다지 집단 서식지를 발견했지요. 자욱한 운무를 배경으로 활짝 핀 야생화들이 만들어 내는 그 모습은 ‘사진장이’인 내가 만난 최고의 장면이었습니다.” 사진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가 그의 입에서 쉴 새 없이 흘러나온다.


자연에 매료돼 카메라 들다
개인전 8회, 초대전 35회, 공저로 <10인의 포토에세이>, <한국정원답사수첩>을 펴낸 모 작가는 광진구사진작가회 회장을 비롯해 광진자연보호협의회 회장, 한국조류보호협회 사무국장, 조계사 불교사진부장 등 숱한 ‘명예직’을 두루 거쳤다.
중학교 시절부터 취미삼아 카메라를 만지작거렸던 그는 강원도 철원에서 군복무를 했다. 비무장지대 철책 근무를 서는 그에게 두루미가 노닐 만큼 때 묻지 않은 청정 자연의 모습은 매력적이었고 카메라에 담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되었다.
78년 제대 후 본격적으로 사진 공부에 매달렸다. 직장 다니는 틈틈이 수십 권의 책을 독파하며 이론을 익혔고 주말마다 출사를 다녔다. 2년여 지날 무렵 우연히 자연보호협의회와 인연이 닿았다.


사진 통해 실천하는 환경 사랑
“감상용 사진에서 ‘사회운동으로서의 사진’에 눈 뜬 계기가 되었죠.”  그 뒤부터 쓰레기 줍기, 자연보호 캠페인을 벌이면서 환경사진전시회를 꾸준히 열었다. 단국대, 호서대 등지에서 사진 강의를 하고 그가 운영하는 인쇄소 한켠에 작은 강의실을 마련해 일반인들에게도 사진을 가르쳤다.
아내가 운전하는 봉고차에 수강생 가득 태우고 전국 곳곳을 누볐다. “야외 실습 전에 반드시 청소부터 함께 해요. 사진을 가르치면서 ‘실천하는 자연보호’도 알려주자는 게 내 신조입니다.”
공들여 찍은 자연 생태사진들이 전시회 끝나면 사장돼 버리는 것이 아까웠던 그는 지자체 문을 두드렸다. “전국 각지로 공문을 보내 자연사진전 개최를 제안했죠. 액자 값, 작품 운송비, 현지 체류비까지 몽땅 내 돈 들여가며 전국을 돌았죠. 제주도, 전라도 등 지역 전시회 때마다 그 고장의 특색을 담은 작품 사진을 따로 골라 선보였어요. 그래야 관람객의 눈길이 더 가니까요. 좋은 데 써달라며 사진 기증도 많이 했어요.”
국내 뿐 아니라 해외의 자연생태에도 관심이 많았다. “지금까지 100여 개 나라를 다녀왔어요. 유명 관광지는 별 관심이 없고 주로 독특한 생태환경을 간직한 곳 위주로 여행했죠. 현지 환경단체 협조를 얻어 다양한 사진을 찍을 수 있었어요.” 알프스산을 둘러싼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아 일대를 8개월간 머물면서 찍은 작품을 한데 모아 ‘알프스 산맥의 자연환경전’을 따로 열기도 했다. 최근에는 한국의 옛정원 등 우리 문화재 촬영에 공을 들이고 있다.


제자 길러 인생 이모작 돕다
이런 열정은 사진 강의를 할 때도 그대로 묻어난다. “내 강의는 빡세요. 이론을 배웠으며 꼭 실습을 해봐야 하죠. 찍은 사진은 함께 보며 장단점을 짚어주죠.” 그의 제자 가운데는 취미로 사진에 입문했다가 사진의 매력에 빠져 뒤늦게 대학원에 가거나 외국 유학까지 떠나 사진으로 제2의 인생을 연 사람이 여럿 있다.
“히말라야 등반을 떠난다며 젊은이 한 명이 자연사진 찍는 법을 꼼꼼히 배워갔어요. 찍어온 히말라야 풍광이 멋지더군요. 지인을 통해 사진전을 주선해 주었는데 반응이 좋아 책 출판까지 하게 되었죠. 보람이 컸어요.”
광진구사진작가회 회장으로서 그는 영정사진 촬영 봉사도 꾸준히 펼치고 있다. “곱게 단장하고 영정사진 찍으러 오신 어르신들의 표정이 참 미묘해요. 나중에 액자를 찾아가지 않는 분들도 꽤 많지요. 그래서 영정사진이란 말 대신 장수사진으로 이름 바꾸고 ‘이 사진 찍어야 오래 사신다’고 농을 건네며 찍어요. 그러면 어르신들 표정이 한결 밝아져요.” 모 작가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최근에는 숲 해설가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강의를 듣고 전문자격증 시험까지 치루며 차근차근 준비중이다. “젊은 시절부터 생업을 하면서 내 삶의 에너지인 사진과 자연을 위해 24시간 쪼개 살았어요. 내 한 몸 보태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는 긍정의 힘 덕분에 여기까지 왔어요. 누가 시켜선 못하죠. 내가 좋으니까 하는 거죠.” 60대 청춘 모 작가는 미소 지었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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