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려들지 않아야 단주를 도울 수 있다

지역내일 2012-12-20

술 문제가 있는 사람과 함께 사노라면 웬만큼 자주독립적이지 않으면 어느 사이엔가 그 사람의 왜곡된 행동방식에 적응해 살아가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에게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상대에게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그러자면 그 사람을 보는 눈과 입장과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 당연히 술 문제를 보는 시각을 달리 하고, 대응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그래서 더 이상 그의 과음과 그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지배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 사람을 바꾸려하기 전에 스스로를 먼저 변혁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많은 알코올의존자들이 자신의 과음의 원인으로 주위의 가까운 사람과 환경을 탓한다. 그 말에 속이 상해 울기만 한다면 이미 그 사람의 구도에 말려든 것이다. 알코올의존의 진실은 누가 무어라 하든 상관없이, 수없이 많은 구실을 갖다 대고 음주할 뿐이다.
그 사람의 주장이나 약속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 과음을 자주 하면 삶의 모든 면이 기만적으로 바뀐다. 타인은 물론 자신에게까지 자신의 진실을 감춘다. 많은 보호자들이 이를 모르고 약속을 어긴다고 또는 자기를 속였다고 발끈한다. 이런 일들이 일상사일진데 감정을 소진시키지 말고, 본디 이 병이 그런 거라고 넘기는 것이 낫다.
많은 보호자들이 그의 술 문제를 자기 일인 양 수치스러워하고 감추려고 한다. 그를 바로 자신의 연장이나 소유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그와 공모하여 술 문제를 부정하는 셈이 되고, 그의 구도에 따르는 것이 된다. 그러는 한 그 사람에게 영향력이 생길 수 없다. 솔직해야 길이 열리고 도움이 될 수 있다.
결코 그냥 넘겨서는 안 되는 행동조차 참고 넘어가는 수도 흔하다. 폭력이나 학대가 대표적이다. 그런 행동의 잘못을 자꾸 설명하여 상대가 그만두게 하려는 것은 단지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가를 나타내 보일 뿐이다. 먼저 그러한 행동을 결단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뜻을 행동으로 분명히 내보여야 한다.
대부분 처음에는 그 사람의 동기나 의지와 상관없이, 먼저 나서서 술을 끊게 해주려고 애쓴다. 그래 봤자 결국 좌절감과 무력감만 남긴다. 그 사람과 나를 구분해야 한다. 아무리 다급해도 술을 끊고, 안 끊고는 어디까지나 그 사람의 몫이다. 내가 할 일은 단주가 아니라, 그 사람을 돕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기꺼이 술을 끊고 싶어 하게 하는 것이 전략이다. 모름지기 단주가 아니라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강원알코올상담센터 신정호 소장(연세대 원주의대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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