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지역내일 2002-01-15
‘사랑의 스튜디오’와 미팅의 정치학

문형준·중앙대 영어영문 3학년

<사랑의 스튜디오="">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일요일 아침마다 남자 넷, 여자 넷이 나와 서로 ‘짝짓기’를 하는 프로그램이다. 벌써 몇 년째인지 모르겠지만 꽤 오래 가는 인기프로그램이다. 처음엔 재밌게 봤다. “오늘은 몇 명이나 될까?” 혹은 “저 둘은 벌써 눈이 맞았군” 하면서. 아마, 대학내일신문의 독자들 중에서도 매주 재밌게 보는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사랑의 스튜디오="">라는 텍스트의 구성요소들을 뜯어보면 20대 초·중반의(남자의 경우 후반도 많다) 성인 남녀, 이들의 외모, 직업, 학벌, 성격, 노래실력 등이다. 이 각각의 구성요소들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을까. 일단 남녀 모두 외모는 일정수준 이상이다. (내 시각이긴 하지만) 너무 뚱뚱하거나 못생긴 사람은 나온 적이 없다. 특히 여자들은 다들 예쁘고 날씬하다. 직업은 남녀모두 대기업이나 벤처기업 회사원들이 많은데, 여자의 경우는 유치원선생, 학원강사 등으로 훨씬 다양하다. 남자와는 달리 대학 학부생들도 심심찮게 나온다. 학벌의 경우 남자는 대개 서울이나 지방국립대 4년제 대학이상이지만, 역시 여자는 훨씬 다양하게 이름 없는 사립대나 전문대졸도 많다. 남녀 공히 고졸은 없다(!). 성격, 노래실력은 논외로 하자.
거칠게 살펴봤지만, 이 프로그램의 구조는 간단하다. 남자는 안정된 직업-괜찮은 학벌이라는 일정한 조건을 갖춘 사람, 여자는 일단 어느 정도 학교만 졸업하면 (혹은 학생이라도) 어떤 직업이든 상관없이 외모가 예쁜 사람이라는 것이다. ‘능력 있는 남자 대 얼굴 예쁜 여자’의 구도. 아무리 학벌 좋고 능력 있는 여자도 뚱뚱하고 못생기면 좋은 남자 만나기 힘들고, 아무리 잘 생기고 체격 좋은 남자도 좋은 대학 못 나오고 번듯한 직장 없으면 결혼은 꿈도 꾸지 말라는 것이다. 이런 식의 남성성-여성성의 스테레오타입은 이미 사회전반에 널리 퍼져있고, 방송은 매주 재미를 더해가며 기존 구조를 확대재생산 한다. 덧붙여서, 남자의 나이는 언제나 여자보다 3-4년 많고, 남자는 언제나 여자보다 키가 크며, 남자는 언제나 바지를 입고 여자는 언제나 치마를 입는다는 것까지 함께. 시청자들이 이런 짜증나는 폐쇄구조를 읽어내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프로그램 폐지 요구를 한다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사랑의 스튜디오="">에서처럼, 남녀관계 혹은 남성성-여성성은 대중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재현(representation)’된다. 이데올로기적 구조를 내포하고 있는 불완전한 재현과정이지만, 실제 남녀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그 재현이 본질이라고, 실체라고 믿게 된다. 그리고 그 재현은 또다시 실체가 되어 우리 속에서 드러난다.
캠퍼스 낭만의 상징(?)인 미팅과 소개팅에서도 <사랑의 스튜디오="">의 법칙은 어김없이 적용된다. 직업은 아직 없는지라, 캠퍼스에서는 대개 학벌과 외모다. 남학생은 학벌로 여학생은 외모로 승부한다. 여학생은 자기보다 더 좋지 않은 학교(라는 것도 얼마나 공허한가!)에 다니는 남학생과는 미팅을 하지 않고, 남학생은 학교 따위는 별로 상관없이 날씬하고 예쁜 여학생을 원한다. 그렇지 않은가?
<대학가요제>가 <가요 톱10="">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닮아버린 오늘, <사랑의 스튜디오="">와 미팅이 닮았다고 지적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오늘의 대학은 사회의 가치를 그대로 반영하고, 아니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녀관계 뿐 만이 아니다. 증권강좌도, 토익과 컴퓨터강좌도 그렇다. 사회에서 필수적인 것이 대학에서도 필수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그람시 식으로 말한다면, 오늘 한국대학의 헤게모니는 사회가 쥐고있다. 그람시는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상식을 깨지 않고 변화는 없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이 헤게모니에 균열을 내지 않고, 대학 내의 상식을 깨지 않고 현상태를 유지하면서는 대학에서 새로운 삶의 대안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깟 미팅 하나 가지고 내가 너무 비관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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