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산책 <남영동 1985>

마주하기엔 너무나 불편한 진실 이야기

지역내일 2012-11-22

사실이 허구보다 견디기 힘들 때가 있다. 영화 속에는 그런 상황이 무척 많다. <올드보이>의 최민식이 그랬고, <피에타>의 이정진이 그랬다. 사실을 인정하기엔 너무나 무서웠기에 관객들은 영화 속 허구인 것에 안도했다. 아닌 경우도 있었다. <도가니>가 그랬다. <이웃사람>도 그랬다. 허구인데도 사실이 그대로 담긴 것 같은 설정에 관객들의 마음은 너무나 불편했다. 실제 내 이웃의 이야기였기에 영화 보는 내내 생생한 느낌이 심장에 전달되었다. <남영동 1985>는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갔다.


울음을 삼키며 보는 영화
보통 영화의 한 장면으로 설정되는 고문 내용이 <남영동 1985>에서는 상영 두 시간 내내 계속된다. 손발이 오그라들고 이마에선 진땀이 배어나온다. 내 코에 고춧가루 물이 들어오는 느낌이 생생하다. 미칠 것만 같다. 영화가 끝난 상영관으로 정지영 감독이 들어와서 말한다.
“여러분은 두 시간이 힘들었지만 배우들은 영화 촬영 두 달간 힘들었고 고문의 대상자들은 20년을 넘어 30년째 악몽과 후유증에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울음소리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다. 내가 이 영화를 외면하는 것은 그들의 마음에 또 다른 물을 붓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영화 말미에 남영동에 끌려갔던 사람들의 생생한 인터뷰가 등장한다. 재판을 통해 일부 보상을 받은 경우도 있지만 아직도 범죄의 낙인이 찍힌 채 살아가는 어부, 농부도 있다. 주인공을 고 김근태 의원으로 놓고 보면 시류를 타고 나온 정치영화 같지만 에필로그의 주인공들로 대입시켜보면 우리가 외면하지 말아야 할 또 다른 <도가니>일 뿐이다.


낯설지 않은 고문관의 모습
영화 속에는 실제 고문 도구였다는 ‘칠성판’이 나온다. 나무판에 일곱 개의 별을 상징하는 구멍을 새겼다는 뜻을 지닌 칠성판은 전통 장례 때 사용하는 장례용품 중 하나라고 한다. 지금은 당시의 칠성판은 없지만 제작진은 김근태 의원의 수기를 참고로 재현해 냈다.
영화 초기 불가항력의 상황에서도 주인공 김종태는 자신의 이념과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하지만 칠성판이 등장하고 나면 여지없이 무너지며 나약한 어린 소년처럼 울며불며 고문관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는다. 칠성판을 보는 순간, 고문의 느낌들이 전해지고 고문을 받기 전부터 온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린다. 결국 그는 동료들의 이름을 자술서에 술술 써내려 간다. 아무도 그를 욕할 수는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돈의 힘 앞에서, 권력의 힘 앞에서 내가 얼마나 작아지는 지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돈 있는 사람 앞에서, 힘 있는 사람 앞에서 나도 입을 다물 때가 많다.


또 다른 김종태를 만나지 않기 위하여
많은 고문관 중에서 주인공의 고통에 공감하는 이는 한 명 뿐이다. 그 와중에 연애 상담을 했던 이 계장이다. 다른 이들의 공감 능력은 제로. 운동경기 중계를 들으며, 승진공부를 하며, 먹을 것을 탐하며 고문관들은 주인공을 고문한다. 하지만 고문관들을 욕할 수 없는 건 내가 그들과 많이 닮아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를 본다. 나 역시 내 삶을 사느라 다른 이의 고통을 공감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누구의 가슴에 매운 고춧가루를 퍼 부었을까. 그가 아파하는 지도 모른 채 나는 또 얼마나 성실히 오늘을 살았을까. 나의 말에, 나의 행동에 누구인지 모를 그는 칠성판을 본 듯 몸을 부르르 떨지도 모를 일이다. 나의 최선이 타인의 지독한 고통일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되는 불편한 영화. 하지만 이 악물고, 두 손 꼭 쥐고,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적어도 나는 누군가에게 지독한 고문관이 되지 않기 위하여.
이지혜 리포터 angus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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