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교육의 성공 키워드는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할아버지의 재력’이란다. 농담으로 지나치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씁쓸한 공감도 간다. 하지만 이제는 아빠의 역할이 절실히 필요하다. 청소년기에 습득된 아버지의 모습을 성인 때 그대로 답습하는 아이들에게, 과연 어떤 아빠가 되어주어야 할까? 그 심도 깊은 고민을 세 명의 아빠에게 직접 들어봤다.
도움말 강현식 심리학자(『아빠양육』저자), EBS 김광호 PD, 자녀경영연구소 최효찬 소장
피옥희 리포터 piokhee@empas.com
♣ 문제제기 : 파더쇼크, 이제 아빠들이 놀랄 때다!
-EBS 김광호PD
EBS ‘60분 부모’와 ‘마더쇼크’에 이어, 내년 4월 방영 예정인 ‘파더쇼크’ 연출을 맡은 김광호 PD는 초등 5학년과 초등1학년 두 자녀를 둔 아빠다. 직업 특성상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갖지는 못하지만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면서부터는 부모의 역할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을 통해 그 해답을 찾아가고 있다.
“자녀교육에 대한 고민은 지금까지 제가 만들었던 EBS 다큐프라임 프로그램과 동일한 형태로 발전해가고 있습니다. ‘60분 부모’는 부모로서의 몇 가지 궁금증을 풀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아이들에게 눈높이를 맞추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아이들의 마음 읽기라는 단어를 익히는 단계였습니다. 사실 저 조차도 아빠로써 어떤 공부가 필요한지 잘 몰랐을 때입니다. 이후 아이들이 커가면서 눈높이와 마음읽기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일상 곳곳에서 눈높이를 맞추고 마음을 읽어줘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거죠. ‘아이의 밥상’을 연출하면서 밥상머리 교육에 관심을 가졌고, 지난해 ‘마더쇼크’를 통해 좀 더 깊이 있는 부모 고찰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방법론이 있지만 단순히 하우 투(How to)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 또한 자녀교육이다. 김광호 PD는 ‘아이가 아닌 부모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더 먼저임을 강조하며, 엄마에 이어 아빠 양육이 자녀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두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가정은 엄마의 양육권이 매우 큰 편이지만 결국 가족이 행복해지기 위해 근간이 되는 사람은 바로 아빠입니다. ‘파더쇼크’를 제작하게 된 것도 그런 의미에서죠.”
착한 아빠 VS 나쁜 아빠 개념 깨기
영유아 시기보다 사춘기 시기의 아빠 역할이 더 어렵다. 단순히 ‘질풍노도의 시기’로 치부하기엔 청소년 자녀들의 오늘이 너무도 위험하다. 김광호 PD 역시 이 부분에 주목했다.
“큰 아이가 사춘기 초입에 들어서다보니 이 시기에 부모로서의 대처 방법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이 시대의 좋은 아버지란 어떤 모습일까요? 과거 부모 세대들은 산업화를 거치며 돈 즉, 경제에 떠밀려 정서는 하위 개념으로 인식되었습니다. 반면 요즘은 정서나 감정이 최고의 가치로 부각되는 사회가 되었죠. 특히 서양에서 들어온 프렌디 개념이 혼재돼 엄하면 나쁜 아빠, 놀아주면 좋은 아빠라는 모 아니면 도라는 개념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아주기만 하면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일까요? 실제로 아이에게는 아빠의 ‘친밀감’과 더불어 ‘적절한 제한선 설정’이 필요합니다. 아이 역시도 이런 적절한 제한선 내에서 오히려 안정감과 자유를 더 느끼게 됩니다. 만일 어떤 하나라도 부족할 경우 영유아기 때는 별다른 문제없이 지나가지만, 초등 고학년을 지나 사춘기가 되면 아빠와 아이는 걷잡을 수 없는 갈림길에 놓이게 됩니다. 물론 과거처럼 일방적인 아빠의 강요나 지시에 의한 훈육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의 발달에 따라 눈높이에 맞게 아빠의 두 가지 역할이 발전적으로 변모해야 하는데 실은 그렇지 못하다가 청소년기에 일방적인 강요나 지시로 청소년 자녀를 훈육하려고 하기 때문에 자녀들과의 갈등이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자녀에게 보여 진 아빠로서의 잘못된 모습은 자칫하면 자녀들의 일생을 좌지우지 할 수도 있다. 부성애의 대물림 현상이 그것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부성애의 대물림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 가정의 행복까지 흔들리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아빠들 스스로 이런 상황의 심각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는데 있다. 단순히 놀아주느냐 마느냐의 문제보다는 먼저 아빠의 역할, 그리고 이 시대의 아빠 개념을 새로이 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게 김광호PD의 생각이다.
♣ 해법제시 : 변신하지 않는 아빠, 당신은 유죄다!
- 강현식 심리학자
‘이제는 아빠가 변해야 할 때’라고 강조하는 강현식 심리학자는 현재 여섯 살, 세 살 자녀를 둔 아빠이자 『아빠양육』 저자이다. 그는 ‘아빠는 생계부양, 엄마는 자녀양육’이란 생각은 산업화 사회의 산물일 뿐 원래부터 아빠는 공동 양육자였으며 자녀교육에 참여하는 것이 본래 아빠의 역할임을 거듭 강조했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학교 데코비치와 미우스 교수는 1997년 사춘기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부모와의 관계가 자기개념 및 또래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결과, 놀랍게도 아빠의 영향력이 엄마보다 크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는 청소년에게 아빠의 행동이 엄마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아빠는 아이들이 대인관계를 맺는데 중요한 역할, 즉 ‘세상과의 연결고리’ 같은 역할을 합니다. 영국 런던대학교 교육학대학원 앤드리 교수는 11세에서 15세 사이의 비행 청소년과 일반 청소년 각각 80명을 연구한 결과, 그 차이가 놀랍게도 아빠와의 분리(부성박탈)였음이 발견되었습니다. 비행 청소년이 경험했던 아빠와의 분리란 물리적이고 신체적이기보다는 심리적인 측면, 즉 아빠로부터 거절당했다는 느낌이 중요했음을 발견했던 거죠. 엄마에게는 사랑받았으나 아빠에게 거절당하는 느낌을 가졌고, 일반 청소년은 두 부모의 사랑을 모두 느낀 경향이 있었던 겁니다. 이제 아내에게만 모든 것을 맡기지 말고 아빠들이 나서야 할 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근본적인 것이 바로 부부관계의 점검입니다. 행복한 부부가 곧 행복한 자녀를 만드니까요.”
강현식 심리학자는 자녀교육에 앞서 ‘부부관계의 변화’를 먼저 강조했다. 대부분의 가정이 아기가 태어나면 하나부터 열까지 아기 중심으로 바뀌기 때문에 부부관계가 소원해지는 경향이 있다. 이럴 때 아빠의 적극적인 양육 참여는 자연스레 아기가 공통의 관심사가 되어 부부간 대화와 소통, 이해의 관계가 형성돼 그것이 아이에게 긍정의 영향을 끼친다는 것. 그 다음 중요한 것이 양보다 ‘질’이 우선시 되는 자녀 양육 태도임을 강조했다.
아빠 양육, 자녀의 학업성취도에 영향
현실적으로 아빠가 자녀와 함께 할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중요한 것은 자녀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느냐보다 얼마나 좋은 관계를 유지하느냐에 달렸으며, 짧은 시간이라도 아이들을 따뜻하게 대하고 수용해줘야 한다는 것이 강현식 심리학자의 생각이다.
“많은 아빠들은 자신이 돈을 버는 이유가 자녀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자녀교육을 위해 돈을 버는 아빠의 전형으로 기러기 아빠를 꼽을 수 있는데요. 하지만 과연 아빠가 자녀의 교육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 혹은 가장 유일한 일이 경제적 뒷받침뿐일까요? 아빠들은 아이의 학업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무조건 엄마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사교육을 마음껏 받을 수 있도록 돈만 벌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이런 생각을 하는 아빠라면 행동과학자들의 연구결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빠가 자녀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자녀의 학업성취도가 증가한다는 연구결과가 바로 그것입니다.”
미국 매사추세츠 케이프코드 아동클리닉 심리학자 블렌차드와 빌러는 초등 3학년 아동 297명을 대상으로 총 네 집단(5세 이전 아빠의 부재 경험/5세 이후 아빠의 부재 경험/아빠와 함께 살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적음 : 평균 일주일 6시간 미만/아빠와 함께 살면서 함께하는 시간 많음 : 평균 매일 2시간 이상)에 걸쳐 학업성취도를 조사했다. 7개 영역(문장 의미, 단어 의미, 철자, 언어 사용, 과학과 사회, 수학 개념, 수학문제) 및 네 과목(읽기, 언어, 수학, 사회) 평가 결과, 아빠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낸 아이들이 다른 집단 아이들에 비해 높은 점수를 받았다. 흥미로운 건 나머지 세 집단은 차이가 별로 없었다는 점이다.
이에 강현식 심리학자는 “이 결과만 놓고 보자면 집에 와서 잠만 자는 아빠들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은 아예 집을 떠나버린 아빠들과 비슷한 수준”이라며 ‘아빠 양육의 질’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거듭 강조했다.
Tip. 강현식의 아빠 양육 가이드-------------------------
1. 친근한 아빠가 되라
아빠가 자녀와 적은 시간을 보내더라도 행복하고 즐거운 경험을 한다면 아이에게 긍정적이다. 단, 극단적으로 적은 시간은 질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기 힘들다.
2. 통제보다는 자발성을 유도하라
아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전후 상황을 다 설명해주며 아이의 선택이 초래할 수 있는 결과도 함께 예측할 수 있도록 한 뒤 선택은 아이의 몫으로 돌려라.
3. 아이 앞에서 싸웠다면 아이 앞에서 화해하라
가능하면 부부가 싸우지 말라. 만일 아이 앞에서 싸웠다면 화해나 타협,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도 그대로 보여줘라. 그것이 아이에게 갈등 해결 전략과 방법을 알려주는 길이다.
4. 생활비를 스스로 관리하게 하라
아빠 양육은 자녀의 나이에 따라 그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청소년 자녀와 부모 사이의 갈등이 표출되는 것은 돈이다. 아빠가 아이들에게 생활비를 주면서 아이가 자신의 삶을 살도록 돕고, 믿음과 신뢰를 준다면 사춘기라고 해도 부모와의 관계가 좋지 않을 리는 없다.
♣ 실천방법 : 아이와의 시간, 그것이 남는 장사다!
-자녀경영연구소 최효찬 소장
이 시대의 올바른 아버지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고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자녀교육 전문가 최효찬 소장은 아버지들의 일상에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자녀이며, 그것이 올바른 아버지의 모습이라며 일침을 가했다.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아버지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휴일에 골프장 등에 가지 말고 자녀와 손잡고 소풍이나 나들이를 가는 게 인생에서 훨씬 더 ‘남는 장사’가 되지 않을까요? 뒤돌아보면 자녀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0년도 채 안됩니다.”
실제로 많은 아버지들이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핑계로 육아 혹은 자녀 교육에 등을 돌린다. 한창 때 열심히 벌어야 가족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그럴싸한 논리다. 마치 자녀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려면 일의 일부를 포기해야한다는 식으로 받아들인다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이에 최효찬 소장은 이렇게 덧붙였다.
“루이지 조야가 쓴 『아버지란 무엇인가』를 보면 ‘아버지는 자식들과 평균 하루 7분 보낸다’는 수치가 나옵니다. 미국의 경우인데요. 이는 무엇보다 대화를 나눌 공통된 관심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모처럼 대화를 하려고 해도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고작 5분 정도면 바닥이 나고 맙니다. 이를 테면 ‘공부 열심히 하니?, 요즘 친구와 잘 지내고?, 용돈은 부족하지 않니’ 등과 같은 질문을 하면 자녀는 ‘네, 아니오’와 같이 아주 짧은 대답으로 끝나기 일쑤입니다. 이는 자녀와 부모가 서로 관심 분야가 다르기 때문으로 이야기할 게 별로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녀와 대화를 잘 하려면 먼저 의식적으로 ‘대화꺼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책이나 신문을 보고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본다면 화제가 풍성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부모가 먼저 책을 읽거나 신문을 보며 화제를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책을 읽을 때 마음에 드는 인용구를 10개씩 적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이것이 다산 정약용이 행한 생산적 독서방법인 ‘초서’라고 합니다. 신문 기사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토론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이가 모두 같은 책을 읽고 초서를 10개 정도 한 뒤 서로 비교해본다면 좋은 이야기 소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결국 자녀에 대한 아버지의 관심과 양육 참여는 아주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며, 아이와 대화의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자녀교육에 있어 가장 기본임을 의미한다. 실제로 최효찬 소장은 지금까지 자녀교육을 위해 ‘아이와의 소통’과 ‘아이가 장기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습관을 갖도록 이끌어줄 수 있는 방법’을 꾸준히 실천해오고 있다.
Tip. 최효찬의 아빠 실천 가이드
1. 신문스크랩을 활용하기
처음에는 아이들이 어려워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신문스크랩은 아주 중요한 습관이다. 아이가 신문을 보고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기사를 찾아내는 방식으로 유도, 점차 습관화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2. 아빠와 아이가 편지 주고받기
1주나 2주에 한 번씩 아이와 서로 편지를 주고받는다. 편지쓰기는 감정을 순화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아이에게는 글쓰기의 훈련의 장으로도 손색이 없다.
3. 아이와 함께 도보여행 다니기
아무리 바빠도 일 년에 한두 번은 아이와 도보여행을 다녀온다. 아빠와 아이의 유대감 형성은 물론, 자녀 스스로도 인내심과 책임감을 키우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이렇듯 세 아빠의 공통된 목소리처럼 ‘아버지들의 변화’가 절실히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아버지들의 적극적인 양육 참여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빠가 달라져야 한다. 내 아이를 변화시킬 놀라운 비밀, 그 성공의 열쇠는 바로 아빠가 쥐고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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