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변화를 넘어 자고 나면 달라진 세상을 만나곤 합니다.
어제까지 익숙하게 보았던 집 앞 골목의 모습도 오늘은 전혀 생뚱맞은 얼굴로 탈바꿈 되는 시대니까요. 때론 이렇듯 광속으로 달려가는 세상에 살면서 현기증조차 느낄 새 없이 적응을 요구받기도 합니다. 신도시가 만들어진 이래 가장 오래된 도시인 분당과 이제 막 용트림을 시작한 용인의 거리 곳곳에서도 이런 변화는 여지없이 실감되곤 합니다.
며칠 사이에도 확 달라져 새로운 분위기를 전하는가 하면 오래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해 익숙한 추억을 선사하는 골목 등… 빠름과 느림이 공존하는 우리지역 골목골목의 모습을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으로 다시금 살펴보려는 이유입니다. 적어도 반가운 누군가와 함께 걷고 싶은 골목 하나쯤은 새겨놓기 위해서 말이죠. 2012년 그 해의 마지막 즈음, 또 언젠가는 달라져 추억으로 남을 분당과 용인의 골목탐방을 설렘으로 시작합니다. -편집자 주
소박한 이야기와 정감이 길목마다 흐르는 동네
# 물레방아와 이무기에 얽힌 전설
물방아거리는 분당구 이매동과 야탑동 사이에 있는 자연마을을 일컬어 부르던 지명이다.
마을 동쪽은 웃말, 서쪽은 아랫말이라 불렸으며 예전에 물레방아가 있었던 것에서 연유해 물방아거리란 지명을 얻게 되었단다.
이 골목엔 이무기에 얽힌 흥미로운 전설도 따라붙는다.
약 300년 전 이곳에 살던 이무기가 훼방꾼에 의해 승천을 못하자 마을에 불운이 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주민들은 이무기의 위령제를 지내 마을의 액운을 풀었다는 전설이다. 매년 음력 9월 3일에는 안말과 물방아거리 원주민들이 모여 ‘안말ㆍ물방아거리산치성’을 지내게 된 것이 마을의 문화풍습으로 현재까지 남아 있다.
또 마을 뒷산인 영장산에서는 매년 마을 할아버지와 할머니 나무에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기우제를 지내고 있다고. 요란한 도시화 속에서 아직까지 문화풍습으로 명맥을 잇고 있음이 흥미롭고 진귀하게 다가오는 대목이다.
# 드높이 있던 카페 ‘드노피’와 젊은 엄마들의 로망 ‘푸르니 어린이집’
이렇듯 신ㆍ구가 조화를 이루는 물방아골 탐색은 영장산 아래 첫 건물인 카페 ‘드노피’에서 시작했다. 앞마당의 잔디가 여전히 파릇해 초록의 생동감이 늦가을 정취와 묘하게 어울리던 이곳. 감각적이고 세련된 이미지에 순 우리말인 ‘드높이’의 어감이 정겹게 덮여 따뜻함으로 다가왔던 곳이다.
다양한 브런치 메뉴와 핸드드립 커피, 음료 등을 홈 메이드 방식으로 만들어 먼 곳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도 제법 많은 곳이란다. 카페 한편에선 로스팅부터 핸드드립까지 해볼 수 있는 ‘커피놀이터’ 수업도 진행되며 젊은 작가들의 그림이 순회 전시돼 보는 즐거움도 더해주는 갤러리 스페이스도 인상적이다. 오전 시간임에도 아가들을 데리고 삼삼오오 모여 브런치를 즐기는 젊은 엄마들의 표정에서 여유와 편안함이 전해지던 곳. (이매동 43-3 / 031-709-0433)
이곳을 뒤로하고 천천히 산보하듯 언덕을 내려와 만난 곳은 ‘푸르니 어린이집’이다.
맞벌이 부부들의 육아 고충을 덜어줄만한 보육환경에 저절로 관심이 가는 곳이다.
영장산 아래 맑은 공기는 기본,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마당 놀이터, 세심한 손길을 엿볼 수 있는 외형 하나하나에 눈길이 쏠린다. 이곳은 대교와 하나은행, 한국IBM, NHN, 건강보험심사평가원, POSCO의 공동 직장어린이집이다. 지난 2004년 6월에 개원했으며 주변의 뛰어난 자연환경과 250평 규모의 실외놀이터, 우수한 교사진 등 최적의 보육조건을 갖춘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아이를 맡기기 위해 인근으로 이사를 감행하는 젊은 엄마들도 많다는 후문. (이매동 27번지 / 031-705-1205)
월산미술관
가르멜
# 드디어 만난 문제적 그곳- 앤티크 성물카페 ‘가르멜’과 ‘월산미술관’
처음 물방아골의 도착 이정표로 삼았던 월산미술관. 이 골목을 외부에 알리기 위한 대표적 장소가 아닐까 싶을 만큼 익숙한 곳이다. 지난 2007년 개관한 이후 많은 기획전 및 이벤트로 미술인과 동호인들의 아지트가 되어 온 곳.
(사)한국누드미술협회 이사장이기도 한 김형권 화백이 관장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미술관 안 별도의 작업공간도 가지고 있다. 미술관 내부는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와 달리 층이 다른 공간 1층과 통해 환한 햇살이 밝혀주고 있었다.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에 매료돼 잠시 감상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곳. 골목탐방에 함께 나선 미술 전공 리포터의 안내로 작품 감상 노하우(?)도 살짝 전수받으며 방명록 싸인을 필하고 돌아 나왔다. 11월 14일까지 윤순자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이매동 81-6 / 031-717-7240)
그리고 드디어 만난 앤티크 성물카페 ‘가르멜’은 우리가 물방아 골에서 만난 가장 인상적인 공간이었다. 월산미술관 입구와 나란히 붙은 이곳은 가톨릭 신자인 주인장 임성순씨가 외국여행을 다니며 직접 발품을 팔아 모은 유럽 앤티크 성물과 제품을 판매하는 작은 카페다.
가게 안은 2~3평 남짓 작고 아담했지만 진귀한 성물과 앤티크 가구, 패션의류와 액세서리 로 볼거리들이 가득했다.
다년간의 발품으로 유럽 앤티크 시장을 잘 알게 됐다는 주인장은 국내에선 오리지널 앤티크 제품을 쉽게 만날 수 없다고 전한다. 거의 대부분은 남대문 시장 등에서 유통되는 짝퉁일 가능성이 많다고. 특히 성물 앤티크는 나오는 물건 자제가 귀해 판매는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며 하나하나 스토리를 덧붙인다. 유럽등지로 여행을 하며 앤티크 제품을 모으게 된 사연, 혼자 떠나는 여행의 즐거움, 언제고 떠날 채비가 되어 있다는 주인장의 자유로운 영혼 앞에 함께 동석한 리포터들 모두는 그저 부러움과 시샘으로 쳐다볼 도리밖에…
작은 가게답게 이곳 카페 안은 테이블 하나가 전부다. 손님 한 팀만 받아도 이미 만석.
그래서일까. 주인장이 핸드드립으로 공들여 내려준 커피를 홀짝거리며 진귀한 성물과 앤티크 이야기, 여행이야기에 홀려 시간 개념을 상실하고야 말았다.
더군다나 이매동 터줏대감인 주인장이 들려준 마을의 변천사는 할머니의 옛이야기처럼 쏙쏙 빨려 들어가게 했다. 성남아트센터가 생기기 전 골프장 허가를 막아낸 주민들의 사연, 애초 없었던 이매역을 중간에 개통시킨 이매 주민들의 맨 파워, 성남예술의전당에서 성남아트센터가 된 사연 등등. 주인장에게선 이매동의 숨은 이야기와 변천사가 파노라마로 흘러나왔다. 덕분에 골목탐방에 힌트를 얻을 수 있었던 알찬(?)그곳.
(이매동 81-6 / 070-4253-7821)
# 깜찍이 카페 ‘어타르트’와 청담동 스타일 전통의상 ‘은채’
못내 아쉬움을 뒤로하고 물방아 골 최대 주거단지인 베스티아 빌라와 동양 파크빌 주변을 살펴보던 차. 3층짜리 상가 건물이 이상하게 눈에 들어왔다. 빌라 입구 옆에 아담하게 붙은 이 건물은 1층엔 ‘뚱딴지’란 이름의 소박한 식당이 2층엔 역시나 아담한 카페가 연이어 붙어 있다. 우리의 관심이 모아진 곳은 2층 카페. 아래에서 볼 땐 다소 허름한 80년대 ‘다방’분위기. 그런데 막상 언덕을 올라 2층 카페입구에 들어서니 햇살가득 어여쁜 카페가 와락 들어온다. 작은 마당과 카페로 통하는 유리문은 접이식. 날이 좋을 땐 창문을 접어 마당과 하나가 되는 이곳. ‘어타르트’라는 깜찍한 이름과 카페가 잘도 어울렸다. 지나가다 궁금해서 들렀다는 우리의 관심에 호의를 보여주는 주인장 정원주씨. 맑은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로 안내하고는 직접 만든 호두파이와 호박죽을 내놓았다. 카페 분위기와 닮아 음식 맛도 참 좋았다. 이곳은 샌드위치와 호박죽, 아메리카노가 곁들여진 브런치와 점심으로는 카레덮밥. 그리고 직접 구은 유기농 피칸 파이와 호박죽 등을 주 메뉴로 한다. 카페를 인수한지 얼마 안 된 새내기 주인장은 주부 리포터들의 깐깐한 눈썰미에도 그리 흠 잡힐 곳 없이 예쁘게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앙증맞은 솜씨에 한껏 칭찬을 보태주고 나오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 이곳. 성남아트센터에서 5분 거리에 있으니 공연을 보거나 근처를 지나게 되면 다시 한 번 들르고 싶은 착한 인상의 카페였다. (이매동 82-22 / 070-4115-1562)
다시금 빌라단지로 눈길을 돌려 “이곳엔 어떤 사람들이 살까” 이야기를 나누다 레이더망에 잡힌 또 다른 곳. 물방아 골의 의외성을 느끼게 해준 전통의상 전문 공간 ‘은채’였다.
겉에서 보기엔 여느 주택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 관람(?)을 요청하자 청담동 부티크를 연상케 하는 고급스럽고 단아한 의상과 화려한 한복들이 놀라움을 주는 곳이다.
한국적인 의상과 소품이 주를 이루는 이곳은 전통의상 디자이너 김은경 원장이 청담동에서 옮겨 온 곳으로 100% 예약 맞춤을 원칙으로 하는 스튜디오다. 주로 다녀간 고객들이 지인들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단다. 혼기가 찬 자녀가 있다면 한번쯤 관심을 가져볼 특별한 느낌을 전했던 그곳. (이매동10-6 / 031-701-7586)
그리고 이어진 골목탐방은 빨간 전화부스를 우편함으로 사용한 깜찍한 주민들의 센스와 마을 텃밭 곳곳에서 자라던 배추의 싱싱함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마무리 했다. 분당의 첫 골목 탐색은 이로써 성공적이었던 걸로~!
골목탐방 후기->사라지는 골목문화의 재발견, 물방아 골의 추억
이매동 골목탐방이 있던 날, 비가 그친 하늘은 씻어 놓은 팔레트처럼 맑았다.
늦가을의 반짝 추위쯤은 문제될 게 없을 만큼… 골목탐방의 첫 출발지가 되었던 이매동 물방아골. 어딘지 모르게 예스럽고 정겨운 골목 이름에 끌린 것도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우리를 매혹시킨 건 분당에 사는 이들조차 잘 모르는 골목안의 은밀한(?) 조화 때문이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갤러리와 함바집 위의 브런치 카페, 그리고 성물가게에서 만난 자유로운 영혼의 주인장과 대안학교까지…물방아 골을 따라 걸으며 분당스럽지 않은 소박함에 한번, 넝쿨을 잡아당길수록 다른 것이 올라오는 의외성에 또 한 번 놀랐던 시간들. 마치 보물지도라도 그리듯 즐거움을 건져 올리며 골목 곳곳에서 유구한 시간의 흐름을 추억했고 옛 기억위에 새로 얹은 도심의 얼굴을 목격하기도 했다. 언젠가 이곳의 달라진 얼굴이 또 한 번 추억으로 남아 있기를….
이매동 물방아골목엔 이런 곳도
* 데오스 중ㆍ고등학교
-> 비인가 도시형 대안학교로 ‘밥퍼나눔운동본부’의 최일도 목사와 함께 활동 해온 강기호 목사가 설립한 곳이다. 사교육 없이도 대학 갈 수 있는 학교, 잠재된 가능성을 발견케 하는 학교가 교육모토다. 1년 4학기 과정으로 운영되며 다양한 현장학습과 체험교육, 도서관 교육과 자기주도 학습 등이 이뤄지며 학급당 정원은 12명이다.
(이매동 75-2 / 031-711-1486)
* 성남 YWCA
->1988년 출범해 20여년 넘게 분당의 변천사를 함께 해온 대표적 여성사회단체다. 다양한 여성ㆍ소비자 운동을 주도해 왔으며 최근엔 다문화센터를 운영, 결혼이민 여성의 정착을 돕고 있다. 환경운동으로 바른먹거리운동과 청소년유해환경감시활동도 꾸준히 진행해오고 있다. (이매동 91-1 / 031-701-2503)
* 성남시농업기술센터
->시설채소 및 성남시 근교 농업인들을 지원하며 성남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도심 속 농촌조성 사업을 진행하는 곳이다. 실버세대주말농장, 장애인 원예치료교육, 시민원예체험장을 운영하며 여성들을 위한 약선 음식, 전통 음식, 천연염색 등 생활기술교육도 인기를 얻고 있다. (이매동 96-2 / 031-729-4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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