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사 김장 봉사 리얼 체험기

30여명의 봉사자들 천포기 배추절임 게 눈 감추듯 ‘스스슥’

지역내일 2012-12-08 (수정 2012-12-08 오후 6:32:32)

요즘처럼 날씨가 추워지면 주위의 이웃들에게 더 따뜻한 손길과 관심이 필요한건 누구나  아는 인지상정. 하지만 이어지는 경기침체 속에 난방비와 긴긴 겨울동안 우리의 먹을거리가 되어줄 김장조차 부담으로 자리 잡아 가는 실정이다.
하지만 부담이라고 아랫목의 온기와 세끼 밥상에 오를 김치를 저 버릴 수는 없는 일, 올 겨울 유난히도 추울 거라는 기상 예보에 손놀림이 분주한 곳으로 발걸음을 돌려본다.
늘 마음만 있었지 직접 실행에 옮겨보지 못했던 일, 바로 내가 아닌 나보다 조금 약한 이들을 위해 베풀어 보는 시간이다. 오늘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사시는 어르신들이 공동으로 생활하는 요양원을 찾아 김장 봉사에 참여해 본다. 



‘파아란하늘’ 봉사팀과 김장 봉사 ‘출동!’
휴일 아침 9시. ‘파아란하늘’ 봉사팀과 합류해 도착한 곳은 완주 비봉면에 위치한 장기노인지정요양기관 빈첸시오의 집(063-262-8484)이다. 이곳은 양로원이 아니고 건강보험공단에서 요양등급을 받은 어르신들이 공동으로 생활하는 노인전문요양원으로 전주카톨릭사회복지회 법인시설이다.
이곳은 예전 학교건물을 개량보수 해 요양원 시설로 사용하고 있으며, 넓었던 학교 운동장은 밭으로 일구어 직접 농사를 짓고 있다.
같이 봉사를 나온 단체는 송천동을 지키는 오랜 이웃들이 모여 결성된 ‘파아란하늘’ 봉사팀과 우석대 외식조리학과 교수와 학생들, 그리고 ‘파아란하늘’ 봉사팀을 돕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온 그들의 가족들과 이웃들로 오늘의 특명은 천포기의 배추를 소금에 절이는 것이다.
운동장을 지나 주방 옆 공터에 도착하자 배추더미가 산을 이루고 있다. 1톤 트럭으로 한 트럭을 밭에서 이미 싣고 와 내려 두고 또 다시 한 트럭을 싣고 왔다.
우석대 팀은 커다란 소쿠리에 쌓인 파를 다듬기 시작했고, ‘파아란하늘’ 팀과 그들이 동원해 온 오늘의 봉사팀도 작업을 위해 슬슬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고생 뒤 보람?, “없는 시간도 만들어서 와야죠!”
봉사팀은 세네명씩 팀을 이루어 작업에 뛰어 들었다. 한 팀은 트럭에서 배추를 내리고, 또 다른 한 팀은 배추 뿌리를 자르고 청결히 정돈해 넘기면, 조리대가 있는 줄에 서서 대기하던 두 팀은 배추를 반으로 자른다. 잘라 놓은 배추를 부모님을 따라 나선 중등 봉사자와 함께 리포터는 소금간이 된 고무통에 담그고, 장정 몇명이 그 배추를 건져 다른 고무통으로 옮겨 소금에 절인다. 아주 단순하다. 그러나 허리를 많이 쓰는 일이라 허리에 무리가 많이 간다. 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 꾀를 부리는 이가 없다.
‘일 잘하기 경연대회’도 아니건만 잠시라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으면 밀려드는 배추 속에 파묻힐 지경이라 부지런을 떨지 않을 수 없다.
어린 학생들은 시간 빼서 왔다는 교수의 말에 “시간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와야죠!”라며 기특한 소리를 한다. ‘파아란하늘’ 봉사팀도 “남들이 모르게 해야 이런 일은 더 보람이 있다”며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꺼리는 눈치다.
몇몇 남은 사람들이 초록 카펫을 이루고 있는 배춧잎을 끌어 모아 수레로 앞마당까지 나른다. 그것들은 간추려 쓸만한 놈은 시래기로 이용한다고.
점점 지쳐갈 즈음 기다리던 ‘참’으로 컵라면이 나왔다. 예상했던 만큼 추운 날씨는 아니지만 따뜻한 라면국물 한 모금이 한없이 고맙다.
배추 천포기! 한 트럭에 오백포기씩 해서 두 트럭이면 모든 일이 마감되는 줄 알고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짓는 순간 밭에 또 한 트럭 분량의 배추가 있단다.
몇몇 사람들이 도구를 들고 마지막 남은 배추포기를 자르러 차를 타고 떠나고 남은 사람들은 천천히 숨을 돌리며 남은 배추의 배를 가른다.  
 
경기침체로 따뜻한 손길 줄어, 양보다 질이라고 마음만은 풍요
‘파아란하늘’ 봉사팀은 한 달에 한 번 빠지지 않고 요양원의 농사(?)를 도맡아 지어주는 있는 단체다. 해마다 이 김장배추도 ‘파아란하늘’ 팀이 직접 심고 기른 배추라고. 연령대가 40~50대의 중장년들이라 어린시절 농사 경험도 있어서이지만 이들처럼 아끼지 않고 힘을 쓰는 사람들도 드물어 이곳에서는 이들의 손길이 그 어떤 도움보다도 고마움의 대상이다.
빈첸시오의 집 관계자는 “물질적으로나 심적으로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주위에 많습니다. 바로 그런 분들의 도움으로 요양원이 유지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덕분에 어르신들도, 일하시는 선생님들도 많이 감사해하고 있어요. 사실 봉사의 손길이 있어 저희가 어르신들께 더 신경 쓸 수 있는 일이거든요.”라고 말한다.
이 요양원에는 매달 청소·목욕·이미용·농사·재능기부(마술·웃음치료·풍물) 등 질 좋은 서비스로 후원을 아끼지 않는 봉사자들이 많다. 월별, 분기별로 정기적으로 봉사를 오는 사람도, 또 주변의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 나오는 가족단위, 개별 봉사자들도 있어 넉넉하진 않지만 늘 훈훈한 이웃의 정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경기가 어려워 물질적인 후원은 작년부터 확연히 줄었습니다. 하지만 기업체 후원과 종교단체의 후원도 이어지고 있어요”라며 관계자는 “금액이 많고 적음을 떠나 관심을 가져 주심에 감사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오후 1시가 지나서야 배추절임은 마감이 됐고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대접 받을 수 있었다.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소박한 밥상이지만 이 한해가 저물기 전 누군가를 위해 작은 힘을 보탰다는 뿌듯함에 행복감이 밀려온다. 햇살 좋은 초겨울 한낮, 따뜻한 마음들이 가득했던 김장봉사 현장이었다.

김갑련 리포터 ktwor04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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