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좌초등학교 문현식 교사의 ‘선생님과 함께 일기쓰기’

“얘들아, 우리 일기장하고 사귀자. 일기장이랑 오래오래 사랑하며 살자”

일기쓰기는 나 자신과 만나는 시간, 매일 꾸준히 쓰는 것이 중요

지역내일 2012-12-07



어릴 적 방학이 되면 언제나 일기쓰기 숙제가 있었습니다. 방학동안 꾸준히 쓰면 좋으련만 일기쓰기는 개학하기 일주일 전쯤 시작하는 벼락치기 숙제였지요. 달력을 옆에 놓고 기억을 되살려 일기를 썼던 기억이 아련한데, 이젠 초등학생인 딸아이도 30여년 전 저와 같은 모습으로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30년 전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이 달라졌는데, 여전히 일기쓰기는 방학 단골 숙제입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들은 그 만큼 소중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일기쓰기가 바로 그런 것 같습니다. 이번주 인사이드북에서는 가좌초등학교 문현식 교사의 ‘선생님과 함께 일기쓰기’를 소개합니다. 이번 겨울방학에도 어김없이 있을 일기쓰기 숙제, 밀리지 않고 즐겁게 쓸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지 선생님께 물었습니다.


11월 14일 월요일 날씨 구름
일기는 중요한 것. 한 마디로 필수품이다.
내가 매일 일기를 쓰는 이유도 하루의 필수품이다.
일기는 추억의 책이라고 할 만하다.
어른이 되어 일기장을 보면 어떤 기억이 날까?
오늘 이 일기를 쓰는 게 너무 다르다. 참 재미있다.
신한설의 일기 중


소중한 날들의 기록
어느 날 아버지께서 전해주신 낡은 공책 한권은 바로 제가 초등학교 때 쓴 일기장이랍니다. 낡고 누렇게 바랜 일기장을 설레는 마음으로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제 마음에 꽃이 피어났어요. 다 읽고 나니 어느새 마음속에 작은 꽃밭이 생겼지요. 일기장은 저보다 더 많은 것들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사라졌을지 모를 시간과 어린 시절을 고스란히 돌려주었습니다. 요즘도 그 일기장을 가끔 펼쳐보는데, 교사가 된 지금의 나와 초등학생이었던 과거의 내가 마주하는 특별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일기를 쓴 다는 것은 발자국을 남기는 것과 같아요. 일기를 쓰면 지난 시절의 내 모습이 하얀 눈 위의 발자국처럼 찍혀 오늘의 나를 따라오지요. 뒤돌아서 발자국이 시작된 곳으로 거꾸로 걸어가면 지난 시절의 나를 만날 수 있어요. 아무리 뛰어난 기억력도 연필의 흔적에 미치지는 못합니다. 글을 잘 쓰든 못 쓰든 오늘의 시간을 담은 일기는 오랜 시간이 지나더라도 나를 항상 또렷하게 맞이하는 소중한 또 하나의 내 모습이랍니다. 그래서 지난 시절을 추억하고 싶다면, 흐르는 시간 속에서 나를 찾아가고 싶다면 우리는 일기를 써야합니다. 일기쓰기는 나 자신과 만나는 시간입니다. 매일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꾸준히 쓰는 것이 중요해요. 저희 반 아이들에게는 매일 매일 일기를 쓰도록 하고 있어요. 일상을 기록하고 자신과 만나는 시간이 습관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입니다. 처음엔 힘들어하던 아이들도 차곡차곡 쌓여가는 일기장을 보고 즐거움과 보람을 느낀답니다. 날마다 비슷비슷한 것 같은 학교생활이 날마다 새롭고 특별한 날이었음을, 그리고 누구에게나 모두 소중한 날이었음을 일기를 보면서 다시금 배울 수 있답니다.


일기의 유일한 독자는 나, 솔직한 삶의 기록 담아야
일기는 다른 사람을 위한 글이 아닌 자신만의 삶의 기록입니다. 기쁘면 기쁜 그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화나면 화난 기분 그대로 솔직하게 쓰는 것이 좋아요. 자신이 독자이므로 누가 뭐라고 간섭하지도 않습니다. 간섭해서도 안 되고요. 우리반 아이들의 일기장을 펼쳐보긴 하지만 아이들의 일상을 간섭하지 않고, 매일 매일 일기를 쓰고 있는지 정도만 확인하려고 합니다. 이처럼 일기는 나만을 위한 글이고, 먼 훗날 자신이 읽게 된다는 점을 전제로 합니다. 어느 절망적인 날, 인생이 우울하다고 생각될 때 일기장을 펴보면 아름다운 날들에 대한 기록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쓰지 않았다면 잊었을 평범한 일상 속의 하루를 되새기며 긍정적인 태도로 자신에 대한 신뢰를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추억은 우리 모두가 가지고 다니는 일기와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루의 기록은 훗날 인생의 추억으로 남아 삶을 살아가는 바탕이 됩니다. 훌쩍 커버린 나에게 일기장은 고스란히 그 시절을 돌려주고 있습니다. 일기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일기가 아니면 대신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일기쓰기를 특별하게 시작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쌓일수록 특별한 일기쓰기가 되는 이유입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정말 쓰고 싶은 글을 진실하게 일기장에 담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한 사람의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볼 수 있는 창이 바로 일기랍니다.


부모님께 당부 드려요

■ 일기는 국어지도 방법의 연장이 아닙니다
일기를 통해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가르치려 한다거나 단어의 습득, 논리적인 글쓰기 훈련을 시키는 것을 좋지 않습니다. 일기를 국어 교육의 일부로 인식하게 되면 본래 목적인 자유로운 사고를 통한 일기쓰기와 멀어져 형식적인 딱딱한 글쓰기가 됩니다.
■ 일기는 반성문이 아니에요
일기를 쓰려면 마음이 무거워진다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은 일기에 하루를 반성하는 내용을 꼭 써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일기는 반성문이 아닙니다. 반성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선입견은 일기를 멀리하게 합니다. 아무런 목적없는 일상의 기록만으로도 훌륭한 체험이 된다는 확신으로 일기쓰기를 응원해 주세요.
■ 일기를 평가하지 말아주세요
일기의 독자는 자신이 유일합니다. 단 한 줄의 너무나 평범한 일기라도 그 속에 다른 사람이 모르는 많은 생각이 담겨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일기를 쓰기 시작할 즈음 아이의 일기에 대해 평가를 하면 쓰기에 대한 부담감이 커지게 됩니다.


일기쓰기를 힘들어 하는 아이들에게

■ 꼭 특별하지 않아도 돼
일기는 특별한 일을 써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 역시 매일 비슷한 일상이 되풀이 됩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특별한 일을 강요하는 것은 부담이 됩니다. 본대로 들은 대로 느낀 대로 쓰다보면 비슷한 하루 속에서 다른 것을 찾아내는 눈이 생깁니다.
■ 매일 안 써도 된단다
일기 쓰는 일이 습관처럼 자리 잡히려면 매일 쓰는 것이 좋지만 꼭 매일 쓸 필요는 없어요. 쓰기 싫은 날에 억지로 쓸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 못 쓰면 내일이 있으니까요. 책상에 앉아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는 일. 그 시간은 고요가 찾아오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매일 쓴다는 것보다 매일 생각한다는 태도에 후한 점수를 주세요.
■ 생각이나 느낌은 안 써도 돼
일기는 사실의 기록에서 출발합니다. 사실을 쓰다보면 억지로 생각을 쥐어짜내지 않아도 그 속에 느낌이 녹아내리게 됩니다.
■ 네가 어떻게 써도 상관 안 할게
일기는 자신만이 읽는 글입니다. 아이들의 일기를 볼 때 나의 주관적인 생각으로 보지 말아야 합니다. 그저 무덤덤하게 보세요. 그래야 일기에 아이들의 정직한 마음이 담깁니다.
■ 먼저 말로 해볼래?
아이들이 말하기보다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것은 글쓰기는 형식과 내용을 잘 갖추고 써야 한다는 오해 때문입니다. 이런 아이들은 먼저 말을 해보게 하세요. 표현한다는 점은 말하기와 쓰기가 같습니다. 일기에 뭘 써야 할지 망설일 때는 차분하게 대화를 나눈 다음 입말을 살려 일기를 쓰도록 도와주세요. 
   
※ ‘선생님과 함께 일기쓰기’는 2005년 문현식 선생님이 담임을 맡았던 고봉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의 일기를 모아 만든 책입니다. 솔직하고 꾸밈없는 아이들의 일기와 진솔한 선생님의 일기가 함께 담겨있습니다. 일기쓰기를 부담스러워하는 아이들과 일기쓰기 지도를 지혜롭게 하고 싶은 부모님이 함께 보면 좋은 책입니다. 이 글은 문현식 선생님이 책에서 쓰신 글과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문현식 선생님은 지금도 여전히 아이들에게 일기쓰기의 소중한 의미를 전하며 대학원에서 아동문학을 공부하고 계십니다. 

양지연 리포터 yangjiy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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