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 교육계에도 ‘융합’ 바람이 서서히 불고 있다. 그런데 일찌감치 융합이란 화두를 붙잡고 자신의 인생 지도를 그린 고교생이 있다. 주인공은 이호원(이과 3)군.
‘융합 인재’ 어필, 입학사정관제로 합격
김연아, 손연재, 양학선이 받은 우리나라 ‘최고의 인재’ 100명에게 주는 대한민국인재상을 얼마 전 수상했다. 게다가 치열한 입학사정관제 전형을 뚫고 서강대 아트앤테크놀로지 학과와 한양대 건축학부에 동시에 합격, 입시 중압감을 일찌감치 털고 요즘 신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내 적성을 찾아 관심 분야를 깊고 넓게 판 덕분이죠. 무엇보다 인생의 귀인을 빨리 만났기 때문이에요. 운이 좋았죠.” 이군의 설명이다.
초등학교 시절 내내 그의 꿈은 화가. 패션디자이너였던 엄마의 영향이 컸다. 어릴 때부터 엄마는 철부지 손 붙잡고 미술 전시를 보러 다녔고 공원에서 함께 풍경화를 그렸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화가의 꿈은 자동차 디자이너로 발전한다.
‘융합’의 길 터준 귀인 만나다
중 3 때 친구 권유로 창의력올림피아드대회에 참가하면서 멘토를 만난다. “세상의 트렌드를 콕 집어주셨어요. 미대 진학을 염두에 둔 내게 그림 잘 그리고 손재주 좋은 디자이너가 아니라 기술, 컴퓨터, 인문학, 마케팅까지 두루 섭렵한 융합 인재가 되라는 말씀이 가슴에 꽂혔습니다.” ‘귀인’은 발명반 지도 교사 가운데 손꼽히는 전문가인 보성고 정호근 선생님.
고교 입학 후 곧바로 발명반에 들어간 뒤 예술과 공학을 접목시키며 새로운 지식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발명반 선후배들은 관심 분야가 다 달라요. 컴퓨터 회로, 전자, 디자인, 건축 등 한 분야의 마니아들이죠. 발명대회나 공모전을 준비할 때는 개개인이 지닌 장점들이 빛을 발하며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죠. 협업의 시너지는 놀라워요. 나도 컴퓨터, 기계에 조예가 깊은 선배들에게 많은 걸 배우며 부족한 공학 지식을 쌓았죠.”
이군은 전국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 은상?동상, 대한민국학생발명전시회 장려상 등 주요 대회에서 상을 휩쓸었다. 특히 올해 선보인 ‘플레잉 아트워크’는 대박이 났다. “어릴 때 동생과 선풍기 모터에 종이를 붙여 원을 그리며 놀았던 추억을 떠올리며 고안한 발명품이에요. 잉크, 스프레이 등 갖가지 재료로 모터가 회전하면서 종이 위에 다양한 무늬와 색깔을 만들어 내는 일종의 페인팅 머신입니다. 여기에는 회전원리, 원심력, 전향력 등 과학 원리가 활용되죠.” 이군의 발명품은 정부나 기업체에서 개최한 여러 전시회에 초청을 받는 등 호응이 높았다.
특히 과학, 예술의 융합에 관심 많은 그는 발명대회에 출품한 작품을 새롭게 보완해 디자인대회에도 들고 나갔다. 디자인 감각과 상품화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확인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검증을 거친 발명품은 아이디어 권리를 보호받기 위해 특허 출원까지 차근차근 진행했다.
고3 시절 새벽까지 공부, 발명 병행
고3 수험생으로 발명과 공부를 병행할 수 있었던 저력이 궁금했다. “한때 발명에 매달리는 순간순간이 짜릿해 공부를 소홀히 한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꼭 성적을 올려야 했기 때문에 마음을 다잡고 남들보다 1.5배 더 열심히 살기로 마음 먹었죠.”
매일 밤 12시까지 공부에 매진한 뒤 각종 공모전, 대회 준비는 새벽 3~4시까지 잠을 줄이고 했다. 목표가 뚜렷했기 때문에 강행군을 견딜 수 있었다. “경험과 공부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는 걸 입시를 치르면서 절감했어요. 발명대회에서는 심사위원 앞에서 요점만 추려 프레젠테이션을 잘해야 하기 때문에 3년 내내 PT 연습을 많이 해야 돼요. 이런 훈련 덕분에 대학 면접 볼 때 떨지 않고 면접관 의도를 꿰뚫은 답변을 할 수 있었어요.”
자기소개서 쓸 때도 공을 많이 들였다. “대학마다 요구하는 인재상이 뭔지를 정확히 알고 ‘전공적합성’에 맞게 써야 되요. 제한된 ‘1000자’로 나를 다 표현하기 위해서는 핵심만 추려야 하죠. 내가 쓴 소개서를 주변 어른들께 보여드리며 다양한 코멘트를 받아 수십 번 고쳐 썼어요.”
대학에 합격한 그에게 후배들은 요즘 입학사정관제 준비 노하우를 묻는 질문공세가 쏟아진다. 그의 블로그(blog.naver.com/aresjack2)에서도 입시 정보를 묻는 쪽지를 자주 받는다. “멋모르던 고1 시절에는 선배들이 두꺼운 포트폴리오를 부러워했어요. 내가 수험생이 되니까 많은 분량이 능사가 아니라 압축해 핵심을 보여주는 게 포인트라는 걸 깨달았어요. 중요한 건 본인 진로가 분명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나는 ‘융합’이 핵심 키워드였고 면접관들에게도 이 점을 어필했습니다.”
호원군은 디자인, 건축, 도시계획, 자동차 등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크리에이터를 꿈꾼다. 이를 위해 다방면의 넓고 깊은 지식은 필수. 입시 관문을 가뿐히 넘은 요즘엔 인문학, 시사로 관심 분야를 확장해 나가는 중이다. “나꼼수 등 시사 이슈를 관심 있게 살피고 짬짬이 고전과 영화를 봐요.” 자신이 그린 인생 지도에 맞춰 한걸음씩 전진중인 그에게는 자신감이 배어나왔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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