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여는 책 | ‘화려한 군주’] 일왕, 정치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

지역내일 2012-11-30

허영섭/칼럼니스트

이산/다카시 후지타니 지음/한석정 옮김/ 1만6000원

일본의 우경화 움직임은 이미 궤도를 타고 있다. 현행 평화헌법을 개정하여 집단자위권 행사와 군대 보유를 명기하자는 주장이 대세를 이룬다. 한국과의 관계에서 독도 영유권을 내세우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고 위안부 동원에 대한 강제성을 부정하는 기류가 거세지는 것도 같은 움직임이다. 역사에 대한 반성이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이다.

중의원이 해산됨으로써 보름여 앞으로 예정되어 있는 총선이 그 분수령을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승리를 장담하고 있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재의 자민당이나 그동안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를 앞세워 집권해 왔던 민주당이나 방향은 비슷하다. 도쿄도 지사를 지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와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이 최근 합당을 선언한 일본유신회의 입장은 한걸음 더 나아간다.

이러한 우경화 움직임의 근저에는 덴노(天皇)가 자리잡고 있다. 즉, 일왕을 지금의 단순한 상징적 존재에서 실질적인 국가원수의 위치로 복원시켜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그런 때문이다. 욱일승천기를 내걸고 침략전쟁을 불사했던 군국주의 시절의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19세기 이전 명목상 존재였던 일왕

미국 샌디에이고 대학의 역사학과 교수인 다카시 후지타니는 '화려한 군주(원제 Splendid Monarchy)'를 통해 일본 내셔녈리즘의 기반을 이루는 일왕제를 조목조목 분석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일왕이라는 자리가 과거 2000년간 지속됐다고 하면서도 19세기 이전까지는 사실상 명목상의 존재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도쿠가와 시대만 해도 일왕에 대한 일반의 이미지는 희박했고 국가 정체성 자체가 아예 형성되지 못하고 있었다.

일왕이 본격적으로 신격화된 것은 1868년의 메이지(明治) 유신이 계기였다. 지방의 막부세력을 대체하여 권력을 장악하고 통치의 상징으로 부각된 역사가 150년 정도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이때 제국헌법이 선포됐고 왕실의 결혼식이나 장례식, 결혼기념일 같은 의례행사가 권위를 갖춰가게 되었다.

따라서 일왕 통치의 전통이 면면이 이어져 내려온 게 아니라 이때 비로소 처음으로 발명됐을 뿐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일왕은 주변 실력자들에 의해 폐위되어 쫓겨다니거나 심지어 방랑중에 살해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일본 국민들의 상당수가 일왕제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연속선 위에서 인식하려고 하는 것은 과연 어디에 이유가 있는 것일까. 정치 분야뿐만 아니라 모든 문화 현상이 일왕을 중심으로 이뤄졌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흔해졌다는 것이다.

도쿄대학 법학부 출신의 소설가인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가 일찍이 1970년 일왕의 복권을 주장하며 할복을 감행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저자는 이에 대해 당시의 사람들이 '기원의 기억상실(genesis amnesia)' 증세를 집단적으로 겪었을 것이라고 나름대로 진단을 내리고 있다.

역사가 끊임없이 망각을 야기함으로써 아주 최근에 만들어진 것까지도 부지불식간에 자연적이고 자명한 것처럼 꾸며내는 잠재의식의 영역으로 이끌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필요에 의해 고안된 국가의례

메이지 및 다이쇼(大正) 시기에 걸쳐 표준지침을 내려 신토(神道)를 국가 제례화하고 제1대인 진무(神武) 덴노의 등극을 기념하는 기원절 등을 국경일로 정한 것도 신화의 역사를 실제 역사인 것처럼 살려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처럼 일왕제를 둘러싼 일본의 근대적인 국가의례는 정치적인 필요에 의해 고안된 것이었다.

그 전에는 일왕의 쾌유를 빌기 위해 국민들이 몰려들었던 황거 앞 광장은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황거 자체가 황폐한 고성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현재 일본의 가장 강력한 국가적 상징의 하나로 굳어져 일본인들이 지방에서 버스를 몇 대씩 대절해 순례하는 나주바시(二重橋) 역시 그냥 오래된 다리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이러한 착시 현상은 비단 일본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영국의 왕실제도도 흠모할 만큼 오래된 전통이 아니라 빅토리아 여왕 시절이던 19세기 중반에 와서 확립된 제도임을 강조한다. 프랑스의 바스티유 기념일도 프랑스혁명 직후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축제가 아니라 도중에 만들어졌으며, 미국의 경우에 있어서도 매일 행해지는 국가의례가 이민자가 쏟아져 들어오던 1880년대에 이르러서야 관례로 굳어졌음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경우 일왕을 상징하는 기념 건축물들이 계속 봉헌되었고 왕위 계승의식이나 장례식 등의 의례가 성대하게 열림으로써 국민들의 의식을 사로잡았다. 국민 공동체라는 공유감을 불러일으키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언론 매체들의 역할도 결코 작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고 결과적으로 일왕의 상징적 의미가 크게 훼손됐지만 일본은 국가통합체의 상징으로 다시 일왕제를 부활시키는데 성공을 거두었다. 종전 이후에 제정된 새 헌법에서 일왕을 "주권을 가진 국민의 총의에 기초해서 지위를 확보하며 국가의 상징이자 국민통합의 상징"이라고 선언했던 것이다.

1946년 11월 메이지 덴노의 탄생일에 맞추어 황거에서 새 헌법이 선포될 당시 축하행사를 구경하려고 10만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인파가 몰려들었다는 사실도 기억할 만하다. 전쟁 막바지에 연합군의 공격으로 파괴됐던 황거도 1960년대 들어 완전히 재건되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일왕에 대한 인식은 전란 전이나 뒤나 달라진 게 거의 없었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2차 세계대전 후 부활한 일왕

다만, 전쟁 이후의 쇼와(昭和) 덴노는 신격이 부정된데다 역동적이며 남성화된 영웅적 통치자로서보다는 해양생물학이나 스포츠 관람에 취미가 있는 중절모 차림의 민간인으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인식의 변화는 대중 미디어의 발달로 왕실의 베일이 벗겨짐으로써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저자는 내다보고 있다. 지금도 일왕제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얼빠진 구닥다리 제도로 바라보는 시각도 염연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 정치권에서 일왕을 앞세워 경쟁적으로 우경화 바람을 일으키려는 의도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풍향계가 고장나지 않았다면 오는 선거에서 대강의 분위기나마 엿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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