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동 주택가에서 작은 슈퍼를 운영 중인 최씨. 한 달 전 바로 코앞에 대형 슈퍼가 문을 연 후 단 하루도 편하게 잠 든 날이 없다.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바로 맞은 편에 그의 가게보다 3배나 큰 슈퍼가 들어섰다. 롯데가 개발한 기업형슈퍼마켓(SSM)의 변종인 ‘롯데마켓 999’가 지난달 24일 문을 연 것이다.
아내와 둘이서 작은 슈퍼를 운영하는 최씨가 아침 7시부터 새벽 1시까지 하루 18시간 일하며 벌어들이는 돈은 시간당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퇴직 후 마땅한 일거리가 없어 3년 전 조용한 동네에 슈퍼를 열었다. 몸은 고되고 힘들었지만 ‘내 가게’에서 편하게 일할 수 있다는 마음에 만족하며 살아왔다. 그러던 중 ‘롯데마켓 999’의 등장은 그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건너편 슈퍼가 문을 연 후 하루 매출이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가게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여기 동네를 한 번 보세요. 상가가 있나 사무실이 있나. 그냥 주택들 밖에 없는 조용한 동네입니다. 이런 동네에서 저렇게 큰 슈퍼가 들어오는 것은 지금 있는 슈퍼를 죽이고 자기 혼자만 살겠다는 작정이다”고 최씨는 울분을 토했다.
최씨의 이야기를 들은 동네 주민들이 ‘골목상권 지키기’에 나섰다. 일동 통장협의회 (회장 장영수)를 중심으로 ‘골목상권 지키기 대책위원회’를 꾸려졌고 지난달 26일에는 규탄대회도 열었다.
장영수 회장은 “누가 봐도 이건 아니죠. 슈퍼를 운영하는 사람도 우리 동네 주민입니다. 서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대기업이 골목상권까지 빼앗아 이익을 챙기는 행위는 영세 상인을 죽이는 것과 같다”고 꼬집었다.
안산시의회 기획행정위원회도 지난 14일 ‘안산 골목상권 보호를 위한 정책토론회’를 열고 대책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김영철 시의원은 토론회에서 “대형마트와 중대형 SSM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대기업이 골목 내 중소형 슈퍼마켓까지 확장해 마을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다”며 “시에서 발빠르게 대처해 피해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행법으로서는 ‘롯데마켓 999’ 뿐만 아니라 대형 유통업체의 골목상권 진출을 막을 방법이 없다.
안산시 슈퍼마켓협동조합 송홍철 회장은 “3년 전 1200여개였던 동네 슈퍼가 지금은 850여개 밖에 남지 않았다. 슈퍼가 300개 줄었다면 슈퍼 운영자 뿐 아니라 슈퍼에 두부, 콩나물, 야채등을 납품하는 영세상인들도 줄줄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이야기다. 그 사람들이 벌어서 애들 키우고, 음식 사먹고 했을 돈이 다 대기업의 통장으로 빨려 들어간 거나 다름 없다”며 “중소상인 기본법을 만들어 대기업의 횡포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안산시는 지난 21일 중소유통공동도매 물류센터를 열고 중소상인들의 경쟁력 강화를 지원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힘이 부족해 보인다.
하혜경 리포터 ha-nul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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